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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참 기특하다
by 글쓰는 호랑이 Sep 21. 2016

정리의 힘


"우리 부서는 보안이 생명인 거 알아 몰라? 한 번만 더 서류 잃어버리고 오면 그땐 정말 혼나는 수가 있어."

신입은 아무 말도 못 한 채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서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서류 관리 똑바로 해!"


인천으로 외근 나갔다가 가져간 서류를 매장에 두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서류가 없어진 것을 알았지만,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탓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권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제가 검검 체크리스트를 매장에 두고 왔어요. 어떡하죠? 다시 돌아가서 가지고 올까요?"

"아냐 됐어. 서류 가지러 갔다 오면 두 시간 넘게 걸릴텐데, 그냥 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과 달리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강 팀장의 불호령이 떨어진 것이다. 기밀서류가 아니기에 망정이지, 외부에 유출되면 큰일 나는 서류였으면 서릿발 날리는 훈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이후 신입은 칠칠치 못하게 물건을 흘리고 다니는 사람으로 낙인찍힌 듯했다.

"이 펜 누구 거야? 물건 어디에 흘리고 다니지 말라고 했지?"

"이거 프린트 누가 했어? 프린트를 했으면 바로바로 가져가야 할 거 아니야."

"서류를 그렇게 투명 파일에 넣고 다니면 어떻게 해? 그러다 또 저번처럼 어디다 놓고 오려고 그래?"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사소한 것까지 지적하는 강 팀장의 간섭에 지친 신입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다.

'팀장님한테 흠 잡힐만한 건 모조리 없애 버려야겠다!'


모두 퇴근한 시간, 신입 혼자 사무실에 남아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서랍 안에는 3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출력한 서류가 고스란히 쌓여 있었고, 수명이 다한 건전지부터 이름 모를 사무용품까지 온갖 물건들이 뒤엉켜 있었다. 팀원들이 물려준 책, 행사 때 받은 책자, 어디서 받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서류가 무작위로 꽂혀 있는 책상 위는 카오스 그 자체였다.

'오 마이 갓. 내가 이런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단 말이야? 이 상태에서 일한 내가 신기하다 신기해.'


토요일 오전 9시, 신입은 대대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주말 출근을 감행했다. 핸드폰으로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기지개를 크게 켰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버리기. 서랍 안에 무더기로 쌓여 있는 서류를 모두 꺼내니 수백 장은 족히 되어 보였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필요한 서류와 필요 없는 서류를 분류했다. 산더미 같은 서류 중에 95%는 파쇄해도 되는, 진작에 파쇄했어야 하는 서류였다. 파쇄기가 고장 나지 않도록 다섯 장씩 차례로 넣으며 드르륵 드르륵 갈리는 소리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서류 파쇄만 했을 뿐인데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다음으로 처리 중인 서류를 항목별로 구분하여 파일함에 보관했다. 라벨을 붙여 1초 만에 필요한 서류를 찾을 수 있도록 보기 좋게 꽂아 놓으니 벌써부터 업무 효율이 몇 배는 오른 것 같았다. 필요 없는 물건은 과감히 버리고 필요한 서류는 가지런히 정리하자 처음 왔을 때처럼 깔끔히 정돈 되었다. 책상 정리가 끝나자 컴퓨터가 눈에 들어왔다.

'흠, 컴퓨터 바탕화면에 파일이 아무렇게나 저장 되어 있는데... 이참에 폴더도 정리해야겠다.'

이미 오전 11시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배고픈 줄도 모르고 검색창에 '컴퓨터 폴더 정리법'을 입력하고 있었다.

'흠, 우선 폴더를 연도별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업무를 카테고리로 나눠서 제목을 붙여야 하는구나. 내가 하는 업무를 크게 분류하면 어떤 것들이 있지?'

새 폴더를 카테고리별로 분류하며 자신이 맡은 업무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팀 내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업무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정리되었다.

'가장 많이 클릭해야 하는 경영진단 폴더를 제일 위에 두고, 보험처리 업무가 그 다음으로 많으니까 두 번째 폴더로 만들어야겠다.'

폴더를 정리하는 동안 앞으로 어떤 업무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지금 어떤 영역에서 업무처리 능력이 미흡한지 알 수 있었다. 서류 정리를 위해 시작했던 책상 정리는 다섯 시간이 지난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모두 끝났다.


월요일 아침, 신입 책상을 본 팀원들이 기웃거리며 한마디씩 했다.

"오, 책상 엄청 깨끗해졌네. 주말에 나와서 정리한 거야? 대단하네~"

업무 효율이 높아진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었다. 필요한 자료는 바로 찾아내어 서류 더미 속을 들쑤시는 시간이 사라졌고, 주변이 말끔히 정리되니 한 가지 업무에만 집중하여 업무완료 속도가 한 시간 이상 앞당겨졌다. 무엇보다 보안이 부실하다는 강 팀장의 잔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되었다.


"다들 신입 책상 정리한 거 봤지? 다른 사람들도 정리하도록. 우리 부서는 보안이 생명인 거 알지?"




1장.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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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스가 필요해

달콤한 행복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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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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