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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호랑이 Sep 24. 2016

심상치 않은 기류


사무실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신입도 예전과 다른 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12월이니까,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아 모두 마음이 뒤숭숭한 거라고 어림짐작할 뿐이었다.


월요일 아침, 팀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 강 팀장을 권 과장이 불러 세웠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멀뚱멀뚱 그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는 신입에게 권 과장이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신입은 먼저 나가봐."

자리에 돌아가 엑셀 파일을 열며 생각했다. 

'두 분만 회의하시는 걸 보니 회사에 큰일 생겼나 보네. 뭔진 잘 모르지만 앞으로 말조심, 행동 조심해야겠다.'


30분쯤 지나 강 팀장과 권 과장이 회의실 문을 열고 나왔다. 평소 같으면 자리에 수첩만 두고 같이 담배를 피우러 나갔을 텐데 어쩐 일인지 바로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의아하게 여긴 신입이 권 과장 얼굴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평소의 유쾌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권 과장 모습이 아니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인상을 쓰고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고, 강 대리가 던지는 농담에도 유난히 예민하게 받아쳤다. 생각해 보니 요즘은 전체 직원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팀원들과 앉지 않고 다른 팀에 가서 앉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 신입, 저녁에 약속 있어?

권 과장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 아뇨, 약속 없어요.

- 그래? 그럼 오늘 김 주임이랑 같이 저녁이나 먹자. 콜?

- 네엡, 콜!'


저녁 8시, 몇 주 전부터 가보자고 했던 닭 갈비탕 집에 도착했다. 권 과장과 김 주임이 평소보다 말이 없는 것을 보고 신입도 조용히 탕이 끓어가는 것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김 주임이 지나가는 종업원을 불렀다. 

"아주머니, 저희 깍두기 좀 많이 주세요." 

종업원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엄마야, 한국인이셨어요? 세 사람 다 외국인인 줄 알았네." 

세 명은 일순간 멍해 있다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야, 외국인이란다. 하하. 우리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앉아 있으니까 얼굴만 보고 한국인 아닌 줄 알았나 보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는 중국인, 과장님은 태국인처럼 보였나 봐요. 그럼 신입은 일본인처럼 보였나? 하하."

"중국인이랑 태국인! 그러고 보니 두 분 정말 중국이랑 태국에서 왔다고 해도 믿겠어요. 저도 일본인처럼 생겼다는 말 몇 번 들은 적은 있는데, 아 진짜 웃겨요."

그렇게 한동안 세 명은 정신없이 웃었다. 너무 많이 웃어 배가 당기고 눈물이 찔끔 났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을 때, 권 과장이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 사실, 오늘 팀장님께 다른 팀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김 주임한테는 진작에 얘기했었는데, 신입한테도 미리 말해줘야 할 것 같아서 자리 마련한 거야. 내가... H팀에 8년 정도 있으니 권태기가 왔는지 일이 예전처럼 재미있지도 않고 일하는 만큼 인정도 못 받는 것 같고..."

방금 전까지 포복절도하던 신입에게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식이었다. 웃다가 흘린 눈물이 쏙 들어갔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회오리가 요동치고 있었다. 

'권 과장님이 더 이상 우리 팀이 아니라니. 우리 팀이 싫어서 다른 팀에 가신다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서운한 게, 팀장님께 말씀드리니까 한 번 더 생각해보라고 붙잡지도 않으시더라고. 이번 기회에 허심탄회하게 얘기 나누면서 팀에 남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 자존심이 너무 강하셔. 내가 말을 꺼내자마자 '그래, 정 그렇다면 다른 팀 가야지. 어느 팀 가고 싶은데?'라며 바로 수락하시더군. 섭섭하지만 어쩌겠어."

신입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팀에 온 이후 가장 많이 의지하고 도움받은 분이 권 과장 아니었던가. 엑셀 함수 적용하는 것부터 재무제표 보는 방법까지, 때로는 따끔한 충고로 정신 차리게 해 주고 책상에 사탕 한 개 놓고 가는 따뜻한 위로까지, 권 과장의 도움을 받지 않은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신입사원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선배였다. 유일하게 의지하던 분이 다른 팀에 간다니. 자존심 때문에 팀의 대들보 같은 존재를 다른 팀에 보내는 팀장에게 가서 항의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점점 표정이 굳어가는 신입을 보더니 권 과장이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 뭐, 아직 확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다른 팀으로 안 가고 계속 H팀에 남을 수도 있지. 사실 내가 갑자기 빠지면 8년간 해온 업무를 대신해줄 사람도 없고...  외부에서 인력을 뽑아 놓은 것도 아니고 갑자기 옮기기도 쉽지는 않을 거야."

김 주임이 권 과장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과장님, 그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과장님이 다른 팀에 가시는 건 정말 섭섭하지만, 그동안 팀을 위해 정말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다른 팀에 가시더라도 저희 팀에 자주 놀러 오세요."

두 사람이 회포를 푸는 동안 신입은 옆에서 억지웃음을 지으며 닭 갈비탕을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었다. 권 과장이 없는 H팀이라. 생각만으로 허허벌판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마음이 서늘해졌다.






1장. 적응기

자기소개

첫 출근

센스가 필요해

달콤한 행복

월요일

언니의 조언

닮고 싶은 그녀 

정리의 힘

'아' 다르고 '어' 다르다


2장. 권태기 

심상치 않은 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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