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평소와 똑같이 출근했다. 여느 날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팀원이 차례로 사무실에 도착했고,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이내 곧 각자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업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입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사무실이 낯설게 느껴지고 낙동강 오리알이 된 기분이었다. 업무를 보다가 궁금한 것이 생겨도 선뜻 권 과장에게 질문하지 못했다. 벌써부터 다른 팀으로 발령으로 떠난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H팀에 발령 후의 기분 좋은 떨림,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조직 문화에 들떠서 사무실 사진을 찍어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설정했던 행복한 날들이 까마득히 먼 옛날 일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 뭐든지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자존심 강한 신입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느새 권 과장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일을 처리할 자신감과 용기가 이렇게나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3개월 전 회의시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다들 신입 교육은 잘 시키고 있는거야? 처음부터 수박 겉핥기식으로 일을 배우게 되면 나중에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선배들 욕하게 되는 거 명심해. 뭣 모를 때부터 혹독하게 일을 배워야 기초부터 탄탄하게 업무를 익힐 수 있다고. 가끔은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혼자 처리하기 버거운 일도 주면서 혹독하게 가르쳐야돼. 내가 보면 신입한테 다들 물렁한 선배들이야. 그런 태도는 신입을 위한게 아니라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으니 다들 교육 똑바로 시켜." 강 팀장의 따끔한 충고 이후에 신입에게 종종 힘든 업무가 던져졌다. 하지만 그것도 한 두번, 혼자 쩔쩔매며 헤매다가 신입이 도움을 요청하면 선배들은 외면하지 못하고 마무리 짓는 것까지 도와주었다.
당시에는 편하고 좋았다. 막내라는 이유로 철판 깔고 모든 일에 도움을 요청하면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고 해결 방법을 알려주었으니까. 하지만 6개월 동안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회사생활에 익숙해진 신입은 가장 믿고 따르던 권 과장이 떠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험난한 회사에 혼자가 된 것처럼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나도 정말 한심하다. 평생 권 과장님이 옆에서 업무를 알려줄 것도 아닌데. 내 능력으로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을 받을까, 그 궁리나 하고 있으니... 내가 당장 내일부터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 해도 불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야..."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회사에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근무시간만 채우고 꼬박꼬박 월급을 챙겨가는 빈대가 된 느낌이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자기암시가 서서히 신입을 갉아먹고 있었다.
1장. 적응기
자기소개
첫 출근
센스가 필요해
달콤한 행복
월요일
언니의 조언
닮고 싶은 그녀
정리의 힘
'아' 다르고 '어' 다르다
2장. 권태기
심상치 않은 기류
낙동강 오리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