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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Mar 14. 2021

나 ; 본원적 유목민

#ft.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고미숙

나, 청연(靑燕) ; 책을 읽고, 책을 담고, 책을 쓰는 인간

   ★ 필명 청연(靑燕-  Blue Sky, Swallow) - 파란 하늘을 나는 제비


Heads up

책을 읽고 느낌을 담아 씁니다.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는 어수선할 수도 깔끔할 수도 있는 글입니다.

사유는 곧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돌아 돌아가는 길


길을 나선다

돌아가더라도 새로운 길을 택해본다

순간순간 마주치는 낯 섬과 설렘들

돌아 돌아가는 길

돌아 돌아 되돌아오는 길

같은 공간에 다름으로 존재하는 

가장 익숙한 

그러나 신선한 충격


- 청연 靑燕  - 






그럼 왜 길 위에 나서야 되냐. 

집을 떠나 새로운 시공간을 만나야만 

거기서 오는 낯섦, 설렘, 

그리고 충격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그런 마주침이 있어야 인간은 변용되고  성장하니까요.

그런데 유목민은 늘 이렇게 움직였기 때문에

그 유동성을 신체에 새긴 거죠.

그래서 정착을 못하는 거예요.

정작 하고 살면 너무너무 답답해.

안락한 게 너무 싫어요.

...

유목민들은 짐을 절대로 늘리지 않잖아요. 

알래스카 유목민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텐트를 옮겨요.

...

그래서 들뢰즈/기 타리는 유목민을 

사유, 즉 노마디즘을 미래적 대안으로 내세웠죠. 

인간은 본원적으로 유목민이다. 


- 고미숙,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중 -  




2013년 한국을 떠난 지 5년 만에  

거침과 마름, 곧 유목의 미학 중앙아시아 

천국과 지옥의 경계 아프리카를 거쳐 

마침내 유럽의 동쪽 끝자락 

하늘 아래 첫 번째 천국 조지아에 잠시(당시 생각) 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벌써 4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 Walter Mitty -


조지아에 짐을 푼 이듬해부터 

아르메니아, 이스라엘, 터키, 요르단... 많은 나라와 곳들을 유랑했습니다.

끝없는 푸른 초장 - 거대한 초원을 

삶을 돌아보게 만든 - 숨 조여 오는 거친 광야를 

길이 없는, 그러나 열려있는 길 - 사막을

해를 따라 별을 따라 걸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참 설레었습니다. 


새로운 장소, 풍경 

그리고 그곳을 

이방인으로 지독할 만큼 고독하게  

또 어느새 현지인처럼 유유히 살며 

감추어진 골목골목들을 탐닉하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과 감동들이 수 없이 잦았습니다.

어느 때 보다 자유로웠고 행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본래 유목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처마 밑 얼기설기 둥지에서 갓 부화해

주둥이가 제법 단단해지고 

날개가 나를 들어 올릴 만큼 

그저 삶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

아직 멀리 날기에는 부족한 연약한 날개로 무작정 날았습니다. 


매월마다 따박따박 지급되는 봉급이 있는 안락한 둥지!

그 편안하고 평안한 둥지를 

날아 날아 떠난 이유는 

세상의 끝, 그 경계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두려웠지만 

근질근질해진 날개를 도무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살짝 엿본 새로운 세상(2009년, 미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따스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제비였습니다.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지난날 

나는 늘 곧은길 - 큰길 만을 걷길 원했습니다. 

더 빨리 달려 달려가기만을 원했었습니다. 


어느 날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지난날을 돌아보니

지나온 길

생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했던

그러나 미처 시간을 주지 못해 다음으로 미룬

그러나 결코 다시 돌아가지 못할 때와 장소

놓쳐버린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내일은 

돌아 돌아가더라도

느릿느릿 가더라도

쉬어 쉬어 가더라도

훗날 미련 없을 날들을 

유랑(流浪 - 머무름 없는 물처럼, 정처 없는 바람처럼 흐르며)

유랑(惟浪 - 생각을 끝없는 파도같이 물결치며) 

걸을 것입니다. 


덧없는 꿈과 오늘의 생각을 

오래전 길과 새로운, 마침내 없었던 길조차

설렘과 충격으로 걸을 것입니다. 


나는 본래 유랑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본원적 삶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듬성듬성 나무다리에서 머뭇거리던 나의 손을 기꺼이 잡아준 현지인 / 케냐, 루이루

 

피부색이 다름에도 

강렬한 태양 아래 체온이 같다는 것 

그것이 내 생에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였다. 

- 청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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