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을 만나다
1부. 성장통 - 카자흐스탄 편.
<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다. - 니체 - >
2장.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을 만나다(3/5)
TAXI는 택시가 아니라 '딱시' 입니다.
여독 탓일까? 어제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지는 수화물 가방들을 챙겨 기차에서 내리니, 호객하는 택시기사들이 제일 먼저 반겼다. "딱시! 딱시!"하며 달라붙었다. 확실히 발음이 '택시'는 아니었다.
딱시?
딱시(Такси)!
옛날 한국 드라마에서 들은 듯한, 왠지 영어 사투리 같기도 한 이 단어는 조금 웃기지만 표준 러시아어였다.
9월. 여름의 끝자락이라는데, 아직도 이글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아스팔트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싸샤는 올여름 최고 온도가 영상 50도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일반 수은 온도계는 보통 영상 50도까지 눈금 표시가 되어 있는데, 8월 내내 그 끝자락에 머물렀다고 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아래쪽에 있어서 마냥 추운 나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카자흐스탄의 가장 남쪽 끝 도시 심켄트의 기후는 마치 사막 같았다.
영상 50도라니! 감조차 못 잡겠다.
타임머신을 탈필요 없어. 어서 와 여긴 아직 30년 전이야.
읽을 수도 종잡을 수도 없는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로 된 간판들을 보니 정말 다른 세상에 와있다는 게 실감 났다. 영어는 안 쓴다더니 정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우리가 살게 될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한 30년은 거슬러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위태위태하게 도로를 따라 지상으로 노출된 노란색 구불구불한 가스관들, 시대착오적인 낡고 빛바랜 '앤티크'한 승용차들이 즐비하고, 학창 시절 감명 깊게 보았던 '카레이스키'라는 드라마에서 봤던 구소련제 하늘색 대형 트럭도 자주 눈에 띄었다. 오래된 버스와 차들이 품어 내는 검은 매연은 어찌나 대단한지 잠시 시야를 가릴 정도로 검은 구름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심켄트는 내 어릴 쩍 뛰어놀던 시골 풍경 같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시골의 향수 그 감성적인 향이 아직 풍기는 그런 곳이었다.
"지난번에는 상계동 버스를 봤어. 그거 타면 아마 서울 갈 거야. 집에 가고 싶으면 그 버스 타."
싸샤가 지나가는 낡은 버스를 보면서 농담을 던졌다. 한국에서 수입된 오래된 버스 얘기였다. 한국에서 운행할 때 붙여둔 행선지 표시조차 떼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고향이 그리울 때 한 번쯤은 무작정 타고 싶을 것 같기도 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신비한 세상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초승달'이 걸려있는 도심 속 회교사원들이었다. 이슬람교가 주된 종교인 나라. 한국에서 살 때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슬람 문화 그리고 모슬렘. 많이 낯설지만 하루빨리 적응해야 할 곳이다.
우리가 살 '땅집(단독주택을 일컫는 북한용어, 현지에서는 이렇게 불렀다.)'은 오래된 포도나무 넝쿨이 뒤덮은 앞마당이 넓은 단독주택이었는데, 큰 호두나무와 체리나무가 그늘을 주고 뒷마당에는 사과가 심어져 있어 마치 한국 시골집 같은 느낌이었다.
앞마당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모슬렘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시작됐다. 우리 집에서 불과 삼십 미터 거리에 있는 동네 모스크에서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정말 쩌렁쩌렁했다.
"아빠, 저 아저씨는 노래를 잘못하는데 왜 마이크에 대고 해요?"
아잔을 처음 들어본 큰딸의 질문이 너무 웃겼다.
"하하... 글쎄... 여기선 저렇게 부르는 게 잘 부르는 건가 보지!"
나나 아이들이나 모든 게 생소하고 처음이긴 마찬가지다.
여기선 같이 성장할 테니 어른이라고 우쭐댈 필요도 아는 척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모두 아직 어리바리한 '학생'이니까...
[자투리 에피소드] 문화충격, 가스는 새는 냄새가 나야 정상이지!
어느 날 가스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
해서 혹시, 가스레인지에서 가스가 새
는 건 아닌가 싶어 긴급 점검을 했다.
비눗방울로 이음새와 호스 부분을 모
두 꼼꼼히 점검했지만, 도무지 가스가
새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불이 날까 불안해 그냥 넘길 수 없어서, 대문 밖 도로변에서 우리 집과 연결된 메인 가스 파이프라인을 살펴보았는데, 바로 거기 이음새 부분에서 가스가 새고 있었다.
"오 마이 갓!"
동네를 연결하는 굵은 메인 가스관이 터지면 대형사고가 날 것 같아 얼른 싸샤에게 전화를 했다.
"큰일이에요. 집 밖 가스관에서 가스가 새고 있어요! 위험한 것 같은데 신고 좀 해줄래요?"
"걱정 마. 괜찮은 거야."
"네? 괜찮다고요?"
가스 냄새가 난다는 건, 가스가 아주 잘 들어오고 있다는 증거야!
"맙소사! 그런 거군요!"
안전 불감증의 극치 같았지만, 현지인들은 집 밖에서 가스가 새는 것 따윈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물론 우리도 아무렇지 않게 살았다. 그렇게 현지화되어 가는 거니까...
"오늘은 가스 냄새가 더 심하네! 가스가 너무 잘 들어오는 거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