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비행의 전설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낙엽 지는 늦가을 비행학교에 입학했다.
물론 비행이론 평가는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교장 선생님도 칭찬해 주셨다.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로구나!”
교장 선생님은 돌아서시면서 말씀하셨다.
"음... 그 옹고집은 닮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네?"
교장선생님은 당황하신 듯 급히 뒤 돌며 말씀하셨다.
"아니. 아니야. 권투를 빈다는 말이었다."
◇◇◇
비행학교 입학 후 많은 것이 변했다.
비행학교에서는 선례 없는 비-비행 학생의 입학으로 규정을 몇 가지 손 봐야 했다. 우선 첫 '특별' 관제 학생인 나를 위해 '특별히' 첫 관제사 제복을 '특별' 제작해 주었다. 관제사 제복은 비행 제복 못지않게 멋있었다. 다만 다른 학생들은 비행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눈에 튄다는 점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가끔 날지 못하는 나를 비웃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런 것쯤은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내겐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필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필살기! 희망을 보는 눈! 물론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가끔 힘들긴 했다. 그래도 철새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긍정적인 생각만큼 내게 힘을 주었던 건 '아는 것의 힘'이었다. 내 주변에는 항상 '실전 이론'에 목마른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존, 착륙하려는데 갑자기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한 학생이 내게 물었다.
“아, 그런 상황에서는 날개를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급히 비틀어 180도 회전하듯 빙그르 돌아서 착지하는 거야.”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학생이 물었다.
“그럼 날개가 실속에 걸리면...”
“그럴 땐 급강하 자세로 전환해서 즉시 속도를 내야 해. 그러려면 최소한 고도는 가지고 있어야겠지.”
어느새 나는 제법 인기 있는 학생이 되었다. 할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비행이론과 실전 전투 비행경험은 다른 학생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마법 - 비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비행이론은 정말 최고예요!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뻔했어요."
할아버지는 드시던 찻잔을 살짝 기울여 돌리시면서 말씀하셨다.
"존, 네가 꿈을 가지기 전에는 소용없는 것들이었잖니? 모든 것은 때가 있단다. 바로 지금이 그때인 거고."
조금씩 어른이 되어갈 때, 그 때야 비로소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때 - 타이밍'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때'에 맞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단연 최고였던 할아버지의 실전 비행이론 과외는 내가 꿈을 가지기 전엔 그저 '허상'과 '소음' 일 뿐이었다.
◇◇◇
낙엽 살랑 늦가을과 눈 소복 겨울은 배움의 계절이었다.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만큼 큰 행복도 없었다. 시간은 구름처럼 흘렀고 어느새 비행학교 졸업 날이 되었다.
"참석해 주신 귀빈 여러분, 오늘은 우리 비행학교 역사상 유례없이 특별한 졸업식이 되겠습니다."
마침내 교장 선생님의 축사로 기념비적인 졸업식 포문이 열렸다.
"우리는 학교 역사상 처음으로 날수 없는, 아니 날지 못해 더 특별한 졸업생을 맞이했죠. 제가 누구라고 호명하지 않아도 벌써 알고 계시겠죠? 존, 네 바로 존입니다."
모든 비행학교 졸업생 가운데, 유난히 도드라진 관제사복을 입은 내게 온 회중의 관심이 몰렸다. 조금 쑥스럽긴 했지만 뿌듯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번갈아 가며 졸업모를 씌워가며 기념사진을 찍을 때서야 비로소 졸업이 실감됐다.
'아. 드디어 졸업이구나!'
졸업모를 쓰고 비행학교 교정을 찬찬히 둘러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날은 학생으로선 마지막이 될, 사회인으로선 첫날이었다. 꽤 괜찮은 졸업 성적은 받은 나는 메인 관제탑 부관제사로 곧바로 임용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관 제사로 승급하게 됐다. 정말 모든 게 완벽한 계절 - 봄!이었다.
◇◇◇
비행훈련이 적어 관제탑이 조용한 이른 봄 오후였다.
우리 관제사들은 이런 조용한 날을 ‘파리 날리 - 파리만 나는 날’라고 농담하곤 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잠깐의 여유가 있어 관제탑 아래 정원을 거닐고 있는데 노란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 나비는 사뿐사뿐 날아 내 부리 끝에 살짝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팔랑 파랑 날갯짓했다. 작은 나비의 눈에 비친 내가 보였다. 보통 나비는 새들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다.(시력이 좋지 않은 나비나 죽기를 각오한 나비라면 몰라도) 나비는 다시 사뿐히 날아올라 땅 위를 낮게 아주 낮게 날았다.
'저공비행...'
조금씩 멀어져 가는 나비를 보고 있자니 문득 나를 무척 아끼셨던 비행학교 관제학 교관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존, 혹시 '날지 못하는 새가 비행의 전설'이 된 이야기 알고 있니?"
"네? 날지 못하는 새가 비행의 전설이 되었다고요?"
"응. 그래. 비행의 전설."
"그건 정말 상식적으로도 불가능한데요?"
"들어보렴."
교관님은 탁자에 툭 걸터앉으시면서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한 날지 못하는 새가 있었단다. 그 새는, 아니 그 새들은 바로 인간이었지."
"인간요? 인간은 아직 말로만 들어 봤어요. 언젠가 할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거든요. 독수리보다 훨씬 크지만 날지는 못하는 그런 종류라고요."
"그래. 넌 날지 못해 숲을 벗어나지 못하니 아직 인간을 본 적이 없겠구나."
관제학 교관님은 커다란 보드에 인간을 대충 그리셨다. 말 그대로 정말 대충 그리셨다. 인간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를 위한 세심한 배려? 였다. 그런데 교관님이 그린 인간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대충 이렇게 생긴 종류지."
"흠. 좀 우스꽝 스럽군요. 날개가 없는..."
"그래. 그렇지? 그런데 그들이 한 짓은 더 우스꽝스러웠지. 그들의 이름은 ‘라이트 형제’란다. 라이트 알지? 라이트?"
"네 그럼요. 알죠. 그런데 그들이 무슨 일을 했길래요?"
"날개가 없는 그들이 비행을 하려 한 거지!!!"
"어리석군요! 날개도 없이 비행을? 정말 멍청한 형제였나 봐요."
"아니, 사실은 그렇지 않단다."
"네? 그럼 날개도 없이 날았나요?"
"음.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도 할 수 있지?"
"네? 도무지 무슨 말씀이신지..."
"들어보렴. 그들은 날개가 없지. 그래서 날수가 없었어. 그런데 날고 싶어 했어. 우리 새들처럼 말이야. 그래서 그들은 늘 우리 새들이 나는 법을 몰래 훔쳤단다. 훔쳤다는 건... 그러니까... 아, 연구했단 말이지! 두 형제는 가끔 우리가 비행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어. 우리 새들은 그들을 보고 '바보'라고 놀려댔지. 물론 그들은 우리가 노래한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그런데요?"
"사실 그들 이전에도 하늘을 날아보겠다는 멍청이들은 많았거든. 하지만 그 라이트 형제는 달랐어. 그들은 날개가 없으니 그냥 날개를 만들어 버렸어. 그것도 스스로 날 수 있는 날개를!"
"정말요? 맙소사! 스스로 날개를 만들어요? 그래서 그들은 날았나요?"
"정확히 말해, 그들은 '스스로 만든, 스스로 날게하는 날개를 타고' 날았지. 뭐 그것도 일종의 비행이라 할 수 있지. 아무튼 그 날개를 단 비행체의 이름은 'Flyer'였단다. 말 그대로 ‘날개 하는 것’이었지. 비록 비행시간은 12초였지만 확실히 날았어."
"와. 정말 대단하네요. '날수 없는 것을 날개 하는 것’이라니!"
"그래 정말 그렇지? 잘 알려진 우리 속담에 '날개가 없으면 날개를 만든다.'라는 말은 거기서부터 나온 거란다."
그 말이 가슴에 깊이 와닿았다.
'날개가 없으면 날개를 만든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세상에서 가장 느린 새'라고 불렀지. 정말 느릿느릿 위 태위태 했거든."
"그랬겠네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새. 나는 그 말에 이상하게 끌렸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새... 세상에서 가장 느리면 어때? 비행을 할 수 만 있다면...'
교관님은 잠시 생각에 빠져든 나를 향해 손으로 '딱' 소리 내어 주의를 다시 환기시켰다.
"존, 그 형제의 다음은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글세요. 더 높이, 더 멀리 비행하지 않았을까요?"
"역시! 넌 나의 수제자야! 바로 그랬지. 다음 해에는 무려 15분이나 비행했단다. 그것도 우리 새들의 중급 고도인 400미터 상공을 말이지!"
"와우! 정말 보지 않고선 믿기 힘든 이야기네요."
"그래. 우리 모두 그랬단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믿을 수 있었겠니?"
"그럼 인간은 멍청한 게 아니었네요!"
"음... 그래. 뭐 다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교관님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 전설의 형제 중 동생이 죽기 직전에 그랬다는구나. '바람이 높다... 이제 날 수 있겠어!' 캬! 참 설레지 않니. 존? 바람이 높다... 이제 날 수 있겠어!"
교관님이 먼저 자리를 뜨시고 혼자 남은 나는 생각했다.
높은 바람. 이제. 비행... 바람. 비행...
내게서 사라지듯 멀어진 나비를 다시 바라보았다.
'저 나비는 날아오르기 위해 얼마만큼의 바람이 필요할까?'
햇살 좋은 고요한 날이었다. 바람의 존재를 느끼기도 어려운. 그런데 나비는 그 인기척도 없는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늘 보던 나비가 이렇게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첨이었다.
'도대체 바람이 어디서 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