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마지막 퍼즐 <1/2>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정원 산책을 마치고 관제실로 돌아왔다.
관제실에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내 집과 같은 느낌! 익숙한 책상, 지도 그리고 망원경. 그리고 오랫동안 손때 묻은 정든 것들 때문이다. 이렇게 조용한 날은 습관처럼 망원경을 닦았다. 특히 망원경은 궂은 날씨나 위급상황에 반드시 필요한 관제 장비였다. 그래서 항상 깨끗하게 준비해 두어야만 했다. 습관적으로 깨끗한 면포를 반으로 접어 망원경을 닦고 있을 때였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조용하던 관제실이 전화벨 소리로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네. 관제사 존입니다."
"존? 잘 지냈니? 나야 나 산티아고!"
"산티아고! 오랜만이야. 이게 얼마만이니? 잘 지내지? 그런데 이 시간에 웬일로 전화를 다했니?"
산티아고는 비행학교 동기였다. 그는 비행학교 수석 졸업자였다. 그런 그가 졸업식 날 졸업생 대표 연설에서 돌연 의사가 되겠다고 발표했다. 오우! 그때는 정말 대단했다. 그는 졸업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원래 의사가 꿈이었어요."
첫마디부터가 기절할 노릇이었다. 그는 웅성대는 관중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부모님의 권유에 못 이겨 비행학교에 입학했죠.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모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그리고 마침내 오늘 수석으로 졸업식을 맞이했죠. 이 모든 영광은 부모님께 바치고 싶어요. 그렇지만 이젠 진짜 제 꿈을 찾아갈 때인 것 같아요...”
그의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기절하셨고, 응급대기조가 출동하는 등 난리법석이었다. 산티아고는 정말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는, 장래가 밝은 파일럿이었다. 모든 이론과 실 비행 평가에서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더욱이 준수한 외모로 뭇 여심을 흔들었던 사나이 중 사나이! 그런 산티아고와 깊은 인연이 된 건 어쩌면 그런 외적인 모습보다 그의 진실된 마음 때문이었다. 산티아고는 내가 비행학교에 입학하던 날 제일 먼저 내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었다.
"안녕. 난 산티 아고라 고해. 넌 존? 맞지? 소문이 자자하더라. 만나서 반가워."
그는 오른 날개를 내밀어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나의 짧은 오른 날개를 아직 자신 있게 드러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오른 날개를 늘 뒤로 조금 감추는 게 내 습관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오른 날개를 끝내 거두지 않았고, 악수를 왜 하지 않느냐? 는 듯 얼굴을 찡긋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콤플렉스인 오른 날개를 내밀었다. 그게 내 오른 날개에 타인의 날개가 처음 닿은 날이었다.(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제외하고.)
"안녕. 산티아고. 잘 부탁해."
느낌이 조금 이상했다. 마치 내 수치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짧은 오른 날개를 맞잡은 산티아고는 특별할 게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리곤 내 날개를 자기 쪽으로 살짝 잡아당겼다.
"어!"
나는 갑작스러운 산티아고의 행동에 균형을 잃고 산티아고 쪽으로 살짝 끌려갔다.
"존, 비행을 할 때는 늘 긴장하는 편이 좋아. 바람이 언제 너의 날개를 낚아챌지 모르거든!"
"그래... 조언 고마워."
아마도 그는 내가 완전히 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어쨌거나 그날 이후 산티아고와는 급격히 친해졌다. 그의 쾌활한 성격은 늘 나를 즐겁게 해 주었고, 그는 늘 그의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해주곤 했다.
"인사해. 내 친구 존이야."
산티아고는 내 짧은 오른 날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나도 짧은 오른 날개로 악수를 자주 하게 되다 보니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그를 만나고 나서 내게 일어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였다.
아무튼 그의 의학계로 이적은 비 행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산티아고는 선배들의 전통 비행클럽에서 파문되었다. 그는 비행클럽에서 파문당한 날 그를 위로하던 내게 말했다.
"비행클럽? 존, 내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정말 중요한 건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사는 거지. 가슴이 뛰는 일을 하는 것 말이야! 절대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말이야! 난 의사가 된 지금이 너무 행복해. 지난번엔 사냥꾼에게 총상 입어 피투성이가 된 새를 살렸다고!"
늘 듬직한 그는 커다란 등치만큼이나 용기 있는 친구였다.
◇◇◇
잠시 옛 추억에 빠져 있던 나를 산티아고가 다시 현실로 데리고 왔다.
"헤이? 존? 듣고 있니?"
"아. 미안해. 산티아고. 그런데 무슨 일 있어?"
산티아고는 더욱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수화기 너머 주변 사람에게 들릴 만큼 크게.
"드디어 때가 왔어!"
"무슨 때?"
산티아고의 난데없는 '때' 타령이었다.
"지난번에 내가 했던 말 기억나? 인공 날개에 관한 연구 말이야."
"응. 그럼. 기억나지. 최고의 과학자들과 의료진, 그리고 비행학교 교관들이 공동으로 개발한다는 그 인공 날개 프로젝트 말이지?"
"그래. 바로 그 거 말이야!"
"그런데 그게 왜? 개발에 성공한 거야?"
"그렇지. 바로 그거야! 드디어 첫 인공 날개 개발이 완성됐어! 드디어 인공 날개가 만들어졌다고! 존, 이건 조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이 될 거야!"
"오, 축하해. 산티아고! 생각보다 빨리 성공했구나. 아무튼 네가 기뻐하니 나도 좋아."
그때 누군가 산티아고를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존, 가봐야 할 것 같아.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거든!"
"난 좋아. 오늘이야 말로 정말 한 가한 날이거든."
"그래. 좋아. 그럼 늘 만나던 바에서 저녁 7시에 만나자. 알았지? 그럼 이따 봐!"
"그..."
"뚜뚜뚜..."
그는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하 고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래..."
"하, 산티아고! 전 정말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구나."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관제탑 너머 유난히 고요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
늘 우리가 만나던 바, 우리가 앉던 자리에 앉았다.
이곳은 비행학교 시절부터 우리가 아지트처럼 드나들던 곳이었다.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곳은 비행학교 학생들이 고된 비행훈련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신나는 음악과 가벼운 춤이면 어느새 스트레스는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직 산티아고는 보이질 않았다.
'아무래도 좀 늦을 모양이군.'
마침 바텐더 팀이 네게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팀, 잘 지냈죠? 늘 마시던 걸로 주세요."
팀이 말했다.
"존,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팀에게 대답했다.
"아, 산티아고는 오늘 길이에요. 오늘은 제가 좀 일찍 도착했어요."
바텐더인 팀은 여전히 에너제틱했다. 온몸에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그는 마치 '에너지 바이러스'라도 전염시키듯 손님들을 항상 기분 좋게 했다. 그는 종종 현란한 칵테일 메이킹 쇼를 보여주거나 알코올음료에 불을 붙여 용암처럼 잔을 흘러넘치는 불쇼를 보여주곤 했다. 그는 정말 그의 일을 즐기는 것 같았다. 팀이 만들어준 상큼한 칵테일을 한 모금 맛보는 찰나 산티아고가 바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헤이, 존!"
"헤이, 산티아고!"
우리는 우리들만의 특별한 인사를 나눴다. 오른 날개를 두 번, 오른쪽 어깨를 두 번 탁탁 부딪히곤 서로를 껴안았다.
"산티아고,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은데?"
"응. 요즘은 인공 날개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거든. 아니 잠을 이룰 수 없어. 정말 이건 너무 놀라운 발명이거든!"
아무래도 오늘은 산티아고가 밤새 무슨 이야기를 하든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하하. 그래. 그래. 알겠어. 일단 뭣좀 시원할 걸로 목 좀 추기고 얘기하지. 팀? 같은걸 로 한잔 더 부탁해요!"
산티아고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 앉히질 못했다. 마치 구름 위에 붕 떠있다고나 할까?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일에 대한 확신과 열정 넘치는 그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어떤 이들은 그를 '미쳤다'라고 했지만 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미친 산티아고의 모습이 좋았다. 가끔은 그런 그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산티아고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 공세를 다시 시작했다.
"존, 들어봐. 우리가 인공 날개를 개발했다고!"
"그래, 그래. 산티아고. 그런데 벌써 3번째 같은 얘길 반복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지?”
"흥분되지 않아?"
"음... 글세. 너의 연구에 성과가 있다는 점에선 너무도 잘됐지."
"넌 아직 이해를 못하는구나. 존, 이건 모두 너에 대한 이야기라고!"
"나? 음...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걸?"
산티아고가 양 날개를 앞으로 가지런히 모았다. 그건 그가 지금 중요한 얘길 할 거라는 그만의 신호였다.
"존, 정말 중요한 이야기니까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봐."
"그래. 물론. 네가 양 날개를 모았으니까."
"곧 인공 날개 이식 테스트 지원자를 모집할 거야. 나는 네가 이번 테스트에 참여하면 좋겠어. 사실 이미 개발자 특별 추천 명단에 내가 너의 이름을 올려놨어. 네가 1순위야. 놀랍지? 아직 개발자들 중 누구도 추천 명단을 올리지 않았거든. 물론 아직 100%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아주 높아!"
산티아고는 애써 흥분을 가라 앉히고 최대한 차분하고 진지하게 설명했다.
"워워. 산티아고. 산티아고. 잠깐, 인공 날개 이식 실험에 벌써 나를 추천해 두었다고? 나를?"
"그래. 존. 오, 주여!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구나!"
"아... 산티아고 고맙긴 한데... 사실 난 잘 모르겠어..."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한 산티아고가 말했다.(그는 아마 내가 기뻐 뛰며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엥? 존, 무슨 소리야.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없을지도 몰라. 지금이 바로 하늘을 날 수 있는 기회라고!"
"그렇지만... 글세 좋은 기회긴 한데..."
산티아고는 바의 탁자를 가볍게 '탁' 내리 치며 말했다.
"사실 내가 인공 날개 개발에 참여하게 된 건 다 너 때문이었어. 어떻게든 네가 날 수 있도록 돕고 싶었거든. 늘 그 생각을 해왔어. 첨 너를 만났을 때, 우리가 첫 악수를 했을 때부터 말이야. 존, 이게 네 오른 날개의 마지막 퍼즐이야. 모르겠니? 널 날개 해줄 마지막 퍼즐이라고!"
괜히 미안하고 또 고마운 산티아고의 말이었다.
"그래, 산티아고. 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널 만나게 해 준 하나님께 감사해. 그렇지만 산티아고, 난 지금 나의 삶에 만족하고 있어. 관제사 말이야."
산티아고는 어떻게든 나를 설득하려 했다.
"존. 그렇지만 그건 너의 진짜 꿈은 아니잖아?"
"그래, 맞아. 진짜 꿈은 아니지. 하지만 지금이 충분히 좋은 걸. 그리고 이젠 어린아이도 아니잖아. 현실을 받아들여야지. 내 짧은 오른쪽 날개론 날 수 없다고. 그 사실로 지금껏 충분히 힘들었고. 더 이상은 아니고 싶어."
"그래. 존. 충분히 이해해. 너무도 당황스러워 결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온전한 날개를 갖는 것 - 그게 네가 그토록 원해왔던 '진짜 너의 꿈 - 하늘을 나는 것' 이잖아!"
"삐리리!"
그때 산티아고의 개인 전화벨이 울렸다.
"네. 네. 박사님. 아. 그래요? 아. 그럼 다시 들어갈게요."
"존, 미안해. 오랜만에 만났는데 바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인공 날개 완성에 관한 마지막 연구자료 제출로 연구실 호출이네."
"난 괜찮아. 산티아고. 어서 들어가 봐."
산티아고는 막 나온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곤 가져왔던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존, 마음을 결정하면 오늘 밤 아니 새벽에라도 꼭 전화 줘! 개발자 추천자가 없으면 곧 인공 날개 이식 수술 희망자 모집 공고가 뜰 거고 그럼 많은 지원자가 몰릴 거야. 어쩌면 그땐 늦을지도 몰라..."
"그래. 그래. 알았어. 어서 들어가 봐. 늦겠다."
산티아고는 급히 연구실로 돌아갔고, 나도 마시던 칵테일을 반쯤 남기고 일어섰다.
"팀, 여기 계산해 줄래요?"
"물론이죠. 그런데 존, 일부러 들은 건 아니지만 정말 잘된 것 같아요. 인공 날개라니!"
"아. 네. 그렇죠? 평범한 비행이 우리 같이 날개 장애를 가진 새들에겐 꿈같은 일이니..."
"존, 당신이 인공 날개를 이식받게 된다는 거죠? 아까 산티아고 씨의 말은?"
"아직. 잘 몰라요. 제가 받고 싶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요."
"아무튼 잘 됐으면 좋겠네요. 저도 응원할게요. 아, 칵테일이 더 필요하면 얼마든지 제가 쏠게요!"
"고마워요. 팀. 그리고 칵테일은 한 잔이면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