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마지막 퍼즐 <2/2>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by 청연

바의 문을 열고 길을 나서니 조금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바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다. 물론 날 수 있다 면 채 1분도 걸리지 않겠지만. 늘 그렇듯 집으로 가는 오솔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런 시간을 꽤 즐기는 편이었다. 풀벌레 우는 소리와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내가 좋아하는 소리들을 들으면서 걷는 것 그게 바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이 아름다운 오솔길을 스치듯 날아다니는 새들을 절대 알지 못할 것들이었다.


'산티아고는 정말 좋은 친구야...'


산티아고가 나를 위해 그토록 오랫동안 꾸어온 꿈을 오늘에야 알게 됐다. 그가 의사가 된 것도 그 꿈과 전 혀 무관하지 않게 느껴졌다. 어려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좀 우습지만 인공 날개를 이식받고 하늘을 나는 생각도 해봤다. 좋을 것 같긴 했다. 꿈이 었으니까. 어릴 쩍 나무 중턱에서 날아 보겠다고 뛰어내렸던 기억이 났다.


'그땐 정말 날고 싶었지.'


마음 저편에선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존, 이젠 더 이상 짧은 날개로, 비행으로 상처 받지 말자. 지금도 충분히 좋잖아?'


생각이 많았던 탓일까? 어느새 둥지 아래에 도착했다.


"다녀왔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차를 나누고 계셨다. 늘 저렇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셨다.

할머니가 말했다.


"그래. 존. 잘 다녀왔니?"


"네. 오늘은 정말 조용한 하루였어요. 지루할 정도였죠."


"그래. 배는 고프지 않고?"


"네. 별로요."

나는 할머니 곁 작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차?"


"네. 좋죠. 은은한 차향기는 늘 기분을 맑게 해주는 것 같아요. 오늘 같은 날을 더더욱 차가 그립죠."

'쪼로로록.'


할머니가 낡은 찻잔에 따뜻한 차를 가득 채워 주셨다. 잔이 차자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존. 오늘 오후에 산티아고가 잠깐 들렀단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산티아고를 좋아하셨다. 비행학생 시절 산티아고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였다. 그는 할아버지께 깍듯이 인사를 드리고선 '비행학교 선배로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해서 단번에 높은 점수를 받았었다. 그 후로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왔었기 때문에 두분도 산티아고를 손자처럼 생각하셨다.


"산티아고가요?"


"그래. 오늘 저녁에 너를 만날 거라고 하더구나. 인공 날개를 완성했다던데? 그래서 너를 첫 인공 날개 이식 추천자로 올려 두었다더구나."


"네. 맞아요. 오늘 저녁에 산티아고가 말해주었어요."


"그래? 그런데 넌 왠지 기쁘지 않은 표정이구나. 새로운 날개를 가지고 싶지 않니?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는?"


"아. 물론 그렇긴 해요. 새로운 날개를 가진다면, 어쩌면 자유롭게 날 수도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전 이미 지금이 편해진걸요. 관제사로서 생활도 만족스럽고요. 비행은... 하고 싶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인공 날개를 이식받는다고 제가 날 수 있을지..."


할아버지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존. 우리는 네가 인공 날개를 이식받고 그토록 꿈꾸던 비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단다. 그것이 너의 꿈이자 우리의 꿈이지."


할아버지는 잠시 말씀을 멈추셨다 이어가셨다.


"사고로 찢긴 너의 날개를 보았을 때 마치 내 것이 잘려 나간 느낌이었지. 정말 그랬단다. 만약 네가 날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널 도울 준비가 되어있단다."


할머니는 내 두 날개를 꼭 잡으셨다.


"그래. 존. 너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꼭 잡았으면 좋겠구나. 날개 이식 수술을 한 후에도 네가 원한다면 관제사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니?"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다.


"후우... 그거야... 네. 맞아요. 생각해볼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오늘은 좀 피곤해서요. 먼저 올라가 쉴게요."


"그래. 그래. 편히 쉬거라. 긴 하루였을 테니."


"그럼 저 먼저 올라 갈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나는 마시던 찻잔을 내려두고 2층 내방으로 올라섰다.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워 조그만 창으로 은은히 새어드는 별 빛을 보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별들도 많이 보였다.


◇◇◇


'새들은 죽으면 영혼이 저 높은 하늘로 날아 올라 별이 된단다.'


할아버지께서 어릴 때 해주셨던 말씀이었다. 어릴 적 나는 반짝이는 별을 볼 때마다 생각했었다.


"나는 날지 못하지만, 내 영혼에는 날개가 있겠지? 그래야 하늘로 날아올라 별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던 때는 참 순수했었다.


"할아버지 제 영혼에도 날개가 없으면 어떡하죠? 그럼 별이 될 수 없잖아요!"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었다. 얼굴을 파묻고 우는 나에게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셨다.


"허허. 녀석 그랬구나. 그게 걱정이었구나. 존, 우리 몸은 날기 위해 날개가 필요하지만 영혼은 날개가 없단다. 그래서 어디든 날아갈 수 있는 거야. 저 별까지도!"


'훗. 그땐 정말 어렸지...'


신문에서 인공 날개를 개발한다는 첫 기사가 났을 때를 기억한다. '조류사에 한 획을 그을 획기적인 연구'라고 대문짝 만하게 쓴 글씨! 불의의 사고로 날개가 부러지거나 태어날 때부터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날개를 가진 장애새들의 기대가 대단했었다.


'산티아고?'


신문 아래 한편에 인공 날개 개발자 명단이 있었는데 거기에 익숙한 이름 '산티아고'가 보였다. 처음엔 긴가민가 했는데 조금은 흐릿한 사진이긴 했지만 그의 얼굴이 확실했다.


'산티아고, 넌 정말 대단하구나! 비행학교 수석에 인공 날개 개발자에...'


연구진으로 내 친구 산티아고가 참여한 사실은 더욱 기쁜 일이었다. 그때는 어쩌면 나도 인공 날개를 이식받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었다. 하지만 인공 날개 개발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또 나의 기억에서도 흐릿해져 갔다. 그사이 나는 메인 관제사가 되었고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비행을 두려워하고 있는 건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나이도 들었고, 몸도 많이 굳어있다. 고통스러웠던 날개 수술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이제와 인공 날개 이식 수술을 받는다는 것도, 인공 날개를 의지해 하늘을 나는 것도 모두 두려웠다. 그게 가장 솔직한 마음이었다.


'존, 전에는 그냥 날지 못하는 새였는데 이젠 '나이 든 - 날지 못하는 - 겁쟁이 새'가 되어버렸구만!'


머릿속을 나비가 헤집고 다니는 것처럼 복잡해졌다. 이렇게 마음이 복잡할 땐 빨리 잠이 드는 게 상책이었다. 빨리 잠이 오길 바라면서 눈을 감았다.


'존. 네가 날개 인공 날개 수술을 받았으면 해.'


'존. 당신이 하늘을 날 수 있기를 기도할게요.'


'존. 이건 너의 꿈이자 우리의 꿈이란다.'


고요한 마음속 어딘가에서 메아리 지듯 소리가 들려왔다. 산티아고도, 팀도 할머니 할아버지도 한 결 같이 나의 비행 - 나의 꿈을 응원해 주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이렇게들 날 응원해 주는가?...'


사랑해 주는 모두에게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아주 깊이 잠들었다.


◇◇◇


'아가야, 너의 아빠는 최고의 비행기술을 가진 새였단다. 너도 아빠를 꼭 닮았으니까 언젠가는 저 높은 하늘을 누구보다 잘 날 거란다. 아가야. 어서 자거라. 잘 자라. 우리 아가. 예쁜 꽃들도 잠이 든다네 노랑나비도 쉴 곳을 찾았다네... '


'엄마? 엄마예요?'


분명 엄마의 목소리였지만 그 모습은 희미했다. 아무래도 이젠 엄마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듯했다. 아주 오랜만에 들어 보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그러다 밝은 빛이 내게로 왔고 나를 따스하게 감쌌다. 이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 그리웠던 엄마의 품이 분명했다. 그러다 갑자기 빛이 사라지더니 하늘에서 하늘하늘 내려온 반짝이는 황금 깃털 하나가 내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곤 잠에서 깨었다.


◇◇◇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뚜르르. 뚜르르"


'산티아고. 받지 마 받지 마...'


나는 산티아고에게 전화를 걸면서도 한편으로는 받지 말라고 주문을 외고 있었다. (그가 전화를 받지 못한다 해도 나를 위해 노력해준 그에게 최소한의 성의는 보인 거니까.)


"안녕. 존?"


전화를 막 끊으려는 찰나 산티아고가 전화를 받았다.


"안녕. 산티아고. 혹시 자는 건 아니니?"


"아니. 잠은 무슨! 내일 제출할 마지막 리포트를 정리하고 있었어."


"그래? 정말 고생이 많구나."


"다 내가 좋아서 하늘 일인데 뭐. 참, 존. 마음은 정한 거니?"


"아... 어. 그래. 인공 날개 이식 수술 말이야... 좀 두렵긴 한데 괜찮겠지?"


늦은 새벽 피곤과 졸음에 절어 있던 산티아고의 목소리가 다시 본성을 되찾았다.


"그래? 그럼 물론이지. 아주 잘 결정했어! 존, 넌 정말 내가 정말 얼마나 이 순간을 기다려 왔는지 모를 거야! 걱정 마 모든 게 잘될 테니. 혹, 비행은 어렵다 하더라도 멋진 날개가 완성되는 것만으로도 좋잖아? 지금 바로 연구실에 전화 넣어 둘게. 내 친구 존의 '마지막 퍼즐'을 잘 준비해 달라고 말이야!"


"그래. 산티아고 고마워. 그럼 고생해."


"그래. 좋은 소식 전해줄게. 하늘을 멋지게 비행하는 꿈이나 꿔도. 이제 곧 그렇게 날게 될 거니까. 그럼 난 아직 제출할 리포트가 남아서 이만 끊을게."


"아 저기..."


"뚜뚜뚜..."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수화기를 내려놓자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는 심장소리가 마침내 귀에도 들렸다.


'쿵쾅! 쿵쾅!'


몸을 일으켜 달빛을 의지해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친 내 짧은 오른쪽 날개가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그래 밑져야 본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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