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새 날, 새의 날 <1/2>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by 청연

"검사 결과가 썩 좋진 않습니다."


"아..."


인공 날개 이식 수술이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인공 날개 이식 수술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사전 검사에만도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리고 오늘, 종합 검사 결과를 받는 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희망적인 소식은 아니었다.


"먼저 여길 보시죠. 어릴 적 외상으로 부서진 뼈들이 삐죽 빼쭉하게 나와있죠? 이 뼈들은 인공 날개 이식을 위해 가지런히 정리되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문제는..."


"문제라면..."


"이쪽 사진을 보시면 날개를 지나는 수많은 신경줄기들이 보일 거예요. 물론 끝부분은 잘려있죠. 문제는 날개 끝뿐만 아니라 날개 중심부까지 죽은 신경세포들이 보인다는 겁니다. 여기, 그리고 여기... 아주 검게 변한 부분들이요."


"아...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의사 선생님은 몸을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보시며 차분히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안전한 인공 날개 이식을 위해서는... 지금 남아있는 절반의 날개도 잘라내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경 줄기들과 인공뼈들을 어깨에 접합시켜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만 성공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검토해 보았지만 이 방법이 가장 안전한 또 성공적으로 이식을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수술 범위가 생각보다 넓어지네요."


"완전 절제요? 아... 그건..."


오른쪽 날개를 완전히 자른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의 숨기지 못한 당황스러운 표정이 의사 선생님에게도 읽히는 듯했다.


"네. 어떤 심정일지 압니다. 힘든 결정이시겠지요. 다만 지금은 그게 최선이라는 것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결정은 선생님께서 하시는 것이지요..."


"만약에 말인데요. 혹시 수술이 잘 못 됐을 경우, 아니 수술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음... 일단 날개 전체를 절제하면 다시 봉합하여 수술 전 - 원래의 형태로 돌이키긴 불가능합니다. 아무래도 최악의 경우라면... 거부반응일 텐데. 그런 경우 오른쪽 날개 전체를 잃게 되는 거죠. 인공 날개도 떼어 내야 할 테니까 말이죠."


"그렇군요..."


검사 결과를 듣고 돌아 나오는 길. 만감이 교차했다. 정확한 이식 수술 날자는 곧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돌이킬 수는 없어.'


또 한 편에선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만 이건 너무 위험한 수술이야! 수술이 잘못되면 너는 그나마 있던 날개조차 잃어버리게 될 거라고!'


오른쪽 날개를 살짝 들어 보았다. 그나마 나와 함께 했던 내 신체의 일부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는 것에 중압감이 밀려왔다.


◇◇◇


'타고난 운명을 고칠 수 있을까?'


문득 운명을 따라 목숨을 건 비행을 매번 해야 하는 철새들이 생각났다. 운명의 여신과 그녀의 책! 정말 그런 게 있다면 뭐라고 기록되어 있을까? 나의 운명에 대해서. 그 책을 살짝이라도 볼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신 것이 하나 있단다."


할아버지가 지난번에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 덧붙여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으신 건 '미래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허락하신 건 뭐고요?"


"그건 용기란다.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마음 말이야."


"음... 전 미래를 그냥 알려주시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래. . 널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너처럼 젊었을 때는 내일을 알고 싶어 했지. 무척이나 말이야. 하지만 삶을 충분히 살아보니 오히려 내일을 모르는 게 훨씬 더 행복하단 걸 깨달았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일을 모르게 하셨다는 것도..."


"네? 어째서요?"


"음. 좀 설명하기 어렵긴 하지만...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자꾸나. 먼저 내일이 좋은 날인지 나쁜 날인지 넌 알고 있니? 행복인지 불행인지 말이야."


"아. 당연히 모르죠! 그건 내일을 지나 봐야 알 수 있잖아요."


"좋아. 그럼. 이번엔 네가 내일을 안다고 쳐보자꾸나. 그런데 내일은 아주 불행한 날이야. 그럼 넌 어떻게 할 수 있지?"


"음... 글세요. 내일이 불행하다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는데... 벌써부터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나쁜 상상만으로도 벌써 내일, 아니 오늘 조차 망했어요!"


"하하. 녀석. 그래. 네 말대로란다. 내일이 불행하단 걸 오늘 벌써 안다면 오늘조차도 제대로 살 수 없는 거야. 그래. 망한 거지! 똑같은 이유로 미래를 알게 된다면 어쩌면 현재가 허무하거나 무가치 해 질 수도 있지 않겠니? 존, 우리는 지나 보고서야 그것에 대해 좋다,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거란다. 그러니 행복도 불행도 아직 없는 거야. 우리가 직접 지나 본 후에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말이지. 그리고 그게 우리에게 그게 더 유리한 거지..."


"그래도... 불행은 싫은 걸요... 마음 아픈 일들이 생기는 건..."


"존, 그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거란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하신 거니. 그걸 바로 '섭리'라고 한단다. 아직은 다 이해하기 어렵겠지. 그건 "때'와도 연관되어 있단다. 언젠가는 네게 한 번 얘기해 준 적 있긴 한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구나."


"네. 하셨어요. 비행학교 관제 수업 마치고 돌아온 날요."


"그래. 그래. 그날이었어."


"흠..."


할아버지가 갑자기 날개를 하늘로 치올리며 말했다.


"운명에 맞서는 용기! 그것만이 우리에게 허락된 '도구'이니 어쩌겠니. 용기를 잘 사용해야지."


할아버지에게 질 세라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음... 용기란 도구! 휫 휫! 이렇게요?"


나는 마치 '용기라는 도구'가 내 손안에 있는 것처럼 하늘로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칼처럼 휘휘 저었다.


"그래. 바로 그렇게 말이야. 옳지 잘한다 내 새끼!"


좀 어렵고 지루한 이야기라 일부러 그런 장난을 친 거지만 할아버지는 날개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다.


"후! 이젠 더 못하겠어요."


한 동안 허공에 날개를 정신없이 휘둘러 댔더니 이마에 땀이 날 정도였다.


"그래. 이리 와 좀 앉거라."


얼른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존, 꼭 기억해 두거라.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두려움이란 걸! 용기 있는 자만이 그 두려움을 꺾을 수 있지. 두려움이 밀려들 때면 용기를 꺼내거라. 방금처럼 말이야. 한 바탕 용기로 휘젓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 테니."


"네. 그럴게요. 뭐 아직은 두려운 게 별로 없어서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지만요. 언젠가 그런 날, 아니 '때'가 오면 꼭 용기를 쓸게요. 하하."


'때'란 말이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나왔다. 어려운 단어인데 할아버지께 자주 듣다 보니 나도 어느새 그 말을 자연스럽게 쓰게 됐다.

◇◇◇


할머니가 둥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무래도 나만큼이나 검사 결과가 궁금하셨을 터였다.


"할머니 저 다녀왔어요!"


"그래. 잘 다녀왔니? 검사 결과는 어떻게 되었니?"


"네. 아주 잘 나왔어요. 큰 문제없을 거래요. 이제 수술 날자만 기다리면 된데요!"


일부러 웃는 것이 티 나지 않게 할머니의 질문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오! 그래 너무 잘됐구나. 존. 너무 잘됐어!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단다."


할머니는 간절히 원하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기도가 통했나 봐요. 하하."


정말 그랬다. 두 분은 매일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조용한 밤이면 아래층에서 할머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었다. 마치 엄마의 자장가처럼.


"하나님. 우리 존이 건강하게 자라게 해 주세요. 그리고 언젠가 꼭 하늘을 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세요..."

외출을 하셨던 할아버지는 저녁시간에 맞추어 돌아오셨다.


"존, 그까짓 수술은 아무것도 아니야! 전쟁터에선 말이야 마취제도 없이 부상당한 날개와 몸을 수술한단다. 요즘은 의학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네가 더 잘 알잖니? 걱정 말거라. 문제없을 테니! 우리 존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본다면 할아비는 정말 여한이 없을 거야. 정말 축하한다. 존!"


저녁 식사 내내 할아버지는 흥분된 어조로 '잘됐다. 괜찮다. 걱정마라.' 반복하셨다. 할머니가 피곤할 테니 어서 올라가 쉬라고 하지 않으셨다면 아마 오늘은 밤을 홀딱 새우기까지 전쟁 무용담을 들려주셨을지도 모른다.


할머니 권유대로 저녁식사만 마치고 일찍 내 방으로 올라와 침대에 누웠다. 검사 결과를 받기까지 며칠 긴장했던 탓인지 몸이 늘어지듯 노곤했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니 지나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비록 날개에 장애는 가졌지만 그렇게 외롭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늘 날 기다려주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었고, 비행학교에 다니면서부터는 산티아고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가끔은 내 짧은 오른쪽 날개 때문에 긍정적인 관심을 많이 받기도 했었다.


'그래. 지나 보면 알게 되겠지...'


아직 인공 날개 이식 수술도, 그 인공 날개가 내게 어떤 삶의 변화를 가져다 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마치 씨앗이 비 온 뒤 굳은 흙땅을 밀어내고 힘차게 두 머리를 내밀듯 내 마음에도 희망이 그렇게 자라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희망으로 마음이 조금씩 앞서 걷기 시작했다. 수술과 회복 과정은 힘들겠지만 늘 그랬듯 그것 또한 지나갈 테니까...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은 마치 바람 같았다. 그 미세한 바람이 내 몸을 조금씩 떠올림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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