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새 날, 새의 날 <2/2>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by 청연

청명한 봄!

희망이란 단어가 참 잘어 어울리는 날이었다. 봄 꽃들이 본격적으로 피어나기 시작했고 나비들이 날았다. 꿀을 모으는 벌들은 수확의 즐거움을 벌들을 맞이한 꽃들은 수분의 기쁨을 즐겼다. 사랑을 지저귀는 연인들의 노래가 숲 속에 가득했다. 연녹색 나뭇잎들 사이로 빛은 더 눈부시게 쏟아졌다. 오늘 인공 날개 이식 수술을 받으러 병원 가는 길의 풍경이다.


"존. 걱정할 것 없어. 잠시 깊은 잠에 든다고 생각하렴. 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정말 새로운 날이 열릴 거야. 꽤나 근사한 날개가 생길 테니. 물론 붕대를 감아 둬야겠지만 아마 너는 벌써 그 날개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좋은 생각만 하라고. 다 잘될 거니까!"


산티아고가 병원 문 앞까지 나와 나를 마중해 주었다.


"존. 이젠 너 혼자 들어가야 하는구나. 우리는 네가 깨어날 때까지 너의 곁에서 널 위해 기도하고 있을 거야."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제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는 꼭 안아 주셨다.


"걱정 마세요. 잘 될 거예요. 느낌이 좋아요. 그러니 마음 편히 계셔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항상 내 곁에 있어주셨다. 잠깐의 포옹을 마치고 돌아서서 수술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혼자 운명을 향해 걸어가야만 했다. 이젠 어른이니까... 수술실 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잠깐 돌아서 날개를 흔들어 보이고선 얼른 돌아서 들어갔다. 헤어짐의 순간은 짧을수록 좋다. 비록 짧은 이별일 지라도.


"존. 이제 곧 의식이 희미해질 겁니다. 마취가 시작 됐거든요. 마음을 편히 하세요."


수술대에 오른 내게 마취제가 투여되었고, 입과 코에는 마스크를 씌워 산소를 불어넣었다.


"네."


잘 들릴지 몰라 고개도 함께 끄덕였다. 나는 준비가 됐다. 여러 명의 의사들이 분주히 수술을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게 달라져 있겠지?'


그동안 나와 함께 해준 내 반쪽 날개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더니 스르르 잠이 들었다.


◇◇◇


"존? 존? 정신이 드니?"


깨기 싫은 잠을 깨는 것처럼 몸이 무거웠고 머리가 아팠다. 오른쪽 어깨 죽지는 욱신욱신했다. 할머니의 부름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아직 부리가 마음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그래 존. 할머니야. 할아버지도 여기 계시고. 드디어 깨어났구나. 아가야.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더구나. 축하해. 내 새끼!"


할머니의 얼굴에는 미소와 눈물이 뒤엉켰다.


"아!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울어! 수술이 잘 됐다는데. 청승맞게 서리! 그래 존, 몸은 좀 괜찮니? 고생했구나. 모든 게 다 잘 됐어."


"네. 감사해요. 다 두 분 기도 덕분인 것 같아요."


창 밖에서는 새들의 사랑 노래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릴 힘이 아직 없었지만 내게 저 작은 소리가 들려온다는 게 기뻤다. 살아 있다는 증거니까. 잠깐 의식이 돌아왔다 다시 잠이 들었다. 아무래도 마취가 아직 완전히 깨지 않은 탓이었다.


'황금 깃털...'


수술 동안 여러 가지 꿈을 꾼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황금 깃털 하나가 내 머리 위로 내려앉은 것이었다. 이번으로 두 번째다. 황금 깃털이 내 머리 위에 내려 않은 것은... 나는 황금 깃털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황금 깃털은 새로운 꿈속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


인공 날개 적응, 재활훈련 그리고 비행훈련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물론 나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짧아질 수도 있는 기간이었다. 정기적으로 이식한 인공 날개가 부작용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정밀 검사해야 했다. 이식한 날개는 내 뼈와 신경에 잘 연결시켜 두었지만 심한 염증이 생기거나 내 몸이 심한 거부반응을 나타낸다면... 최악의 경우 인공 날개를 떼내야 했다. 그것만은 아녔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그건 인공 날개뿐만 아니라 내 오른 날개 전체가 사라지는 거니까.


"존, 오늘은 기분이 어때요?"


수술을 담당해 주셨던 의사 선생님이 아침 회진을 시작했다.


"네. 괜찮은 편이에요. 오른 날갯죽지가 상당히 욱신거리고 통증이 있다는 걸 제외하면요."


"아무래도 한동안은 그럴 거예요. 그런 대수술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혹시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해지면 언제든 간호사를 부르세요. 진통제를 놓아줄 겁니다. 그렇지만 참을 수 있다면 버텨 보시는 게 좋아요. 약이란 적게 쓸수록 좋죠. 사실 진통제는 마약이나 마찬가지죠. 진통제가 잠시 고통은 잊게 해 주겠지만 결국에는 고통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과제와 같은 거니까요."


사실 어젯밤에는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있었다. 밤새 끙끙 앓은 나의 손을 꼭 잡은 할머니의 손이 없었다면 아마도 간호사를 찾아야 했을 것이다. 갑자기 치솟는 체열로 온몸에 땀이 흘렀다. 할머니는 땀으로 젖은 내 온몸을 닦아 주셨고 마침내 열도 고통도 조금씩 사그라 졌다. 그리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었다.


다행히 날개 이식 후 중간 건강검진 결과가 좋았다. 모든 건강 수치는 정상범위 내에 있었고 회복 속도도 빠르다고 했다. 아직 오른쪽 날개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어 이제 내 몸의 일부가 된 인공 날개를 보지는 못했다. 다만 기분 탓인지 가끔씩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이전 오른쪽 날개가 간지러울 때처럼! 병원에서 지내는 것은 좀 지루하긴 했지만 가끔씩 맛있는 걸 사들고 와주는 산티아고가 있어 조금 나았다.


"존, 어때 좀 살만하니?"


"응. 산티아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병원에 누워 있는 것만큼 죽을 것 같은 것도 없지. 하하. 많이 좋아졌어."


산티아고는 여전히 바빴다. 그에게도 이 인공 날개 이식 수술은 시작에 불과하니까. 그가 돌아가면 온 병실이 마치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아직까지 누군가를 위해 저런 정성과 관심을 써 본 적이 없었다. 난 항상 도움만 받아왔다. 부끄럽게도 그런 고마운 도움 조차 너무도 당연하게만 받아온 것 같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후... 철이 들어가는 건가?'


어제는 바텐더 팀이 꽃바구니를 들고 왔었다. 밖에는 야생화들이 한창이라고 했다.


"존. 어서 회복하고 퇴원해서 좋아하는 오솔길을 마음껏 걸을 수 있길 바라요. 아, 아니군요. 이젠 날 수 있을 테니! 그럼 바람에 흔들 흔드는 꽃들 속을 춤추듯 비행하길 바라요!"


'춤추듯 비행한다... 마치 나비처럼. 춤추듯...'


그런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병실 좁은 창 너머로는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내년 봄쯤에는 팀의 말대로 저 봄 속을 자유롭게 춤추듯 날 수 있다면 좋겠다.


◇◇◇


"존, 준비됐나요? 새로운 날개를 맞이 할?"


"네. 그럼요. 아시잖아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오늘은 오른쪽 날개를 칭칭 감아두었던 붕대를 푸는 날이다. 먼저는 새로 이식한 날개의 모양을 어서 보고 싶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정말 어느 때는 붕대 아래 날개가 너무도 간지러웠기 때문이다. 정말 한 번은 시원하게 부리로 긁고 싶었었다. 참 신기했다. 인공 날개도 생생하게 그런 느낌이 오다니.


"오. 존! 드디어 너의 새날개를 보게 되는구나!"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산티아고도 이 기념비 적인 날을 축하하기 위해 함께했다. 특히 산티아고는 내가 좋아하는 하얀 굼벵이들로 장식된 봄 딸기 케이크도 사들고 왔는데 케이크 위의 문구가 의미 심장했다.


'Happy New Birthday and New Birdday!'


산티아고는 늘 저런 센스 넘치는 장난을 쳤었다.


"해피 뉴 벌스데이 앤 뉴 버드 데이?"


"음. 그건 말이야. 두 가지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 첫 번째는 오늘이 너의 새로운 생일이 되는 거지. 날 수 있는 새로 다시 태어난 날!"


"으흥. 그리고 그다음은?"


"너의 인공 날개가 조류 역사의 새로운 기점이 될 거니까. 온 새들의 새로운 날이지! 브라부!"


"뭐야~. 산티아고 너의 썰렁한 개그는 여전하구나!"


산티아 아고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어설픈 개그 때문에 병실은 온통 웃음바다가 됐다.


"자, 이제 붕대를 풀어볼까요?"


"자... 잠만요. 의사 선생님!"


"네? 그러죠. 그런데 무슨 일..."

"......"


잠시 눈을 감았고 재빨리 마음으로 기도 했다.


"존, 왜 무슨 일 있어?"


산티아고가 걱정되는 듯 물었다.


"아. 아니야. 그냥 왠지 잠깐만 시간을 가지고 싶었어. 별거 아니야. 이제 준비됐어요. 선생님"


나뿐만 아니라 모두의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교차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꼭꼭 감아두었던 붕대는 날개 끝에서부터 한 올 한 올 벗겨졌다. 아무래도 어깨 쪽은 수술 자국이 크게 남아 있을 테니 내가 놀라지 않게 의사 선생님이 배려한 것 같았다.


'원래 내 날개의 끝이 저렇게 멀리 있었나?'


익숙하던 오른 날게 끝은 저보다 훨씬 가까웠기에 원래 길이의 날개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내 본래의 색보다는 조금 더 밝은 깃털이 날개 끝에서 부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통풍을 위해 열어둔 창틈으로 바람이 들었는지 깃털의 끝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다. 내 왼쪽 날개를 똑같이 본떠서 만든 오른쪽 날개가 점점 베일을 벗음에 따라 내 심장도 점점 더 뛰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깻죽지까지 모든 붕대가 풀어졌다. 어깨와 인공 날개가 맞닿는 부분에 수많은 봉합 실밥들이 보였다. 조금은 징그러웠다.


"아!..."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어깨 수술 자국을 제외하면 새로운 날개는 꽤 만족스러웠다.


"와! 보세요. 정말 멋진 날개 아닌가요? 정말 진짜 날개 같아요. 아, 물론 진짜긴 하지만요. 그것도 아주 새것이고요. 하하."


잠시의 침묵을 깨고 산티아고가 축하 분위기를 만들었다. 곁에 있던 새들은 환호와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다. 기쁨과 약간의 서운함이 뒤섞여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정의할 순 없었다. 하지만 슬픔은 거기에 없었다.


'정말 이 날개로 날 수 있을까?'


몇 번이나 아니 아주 오랫동안 새 날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직여 보았다. 날개는 내 의지보다 반박자 늦게 반응했다. 움직일 때마다 어깨 통증이 심했다. 하지만 진짜로! 움직여지는 이 신기함이란!


'마지막 퍼즐!'


산티아고의 말대로 나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마침내 온전한 두 날개를 가지게 된 것이다. 사고 이후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는, 꼭 한 번은 가져보고 싶었던 그것을 가지게 되었다. 정말 오늘은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산티아고가 말했듯 조류의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삶이 급격한 변곡점을 맞이한 건 분명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8장. 새 날, 새의 날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