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나이팅게일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재활치료와 훈련은 혹독했다.
재활 훈련의 주요 포인트는 이식한 인공 날개를 넓게 - 점진적으로 - 펼치는 것이었다. 그다음은 버티기. 그다음은 조금씩 날갯짓 하기. 그리고 무한 반복! 오른 날개를 펼 때마다 어깨가 끊어지는 듯했다.
"잠깐만요. 코치님!"
"그래요. 좀 쉬었다 다시 하죠. 처음엔 많이 힘들 겁니다. 차차 좋아질 거예요."
"휴... 제발 그랬으면 좋겠어요."
비행학교 시절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꿈으로 가는 지름길은 없다. 꿈은 반드시 그와 동등한 대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대가의 치름 없이 꿈을 이루길 바란다. 정확히는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꿈이 스스로 이어지길' 바라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정말 그랬다. 꿈은 그 크기만큼의 대가를 요구했다. 고통스러웠던 이식 수술, 지독한 재활 훈련 또 앞으로 다가올 비행훈련까지! 이 모든 게 꿈을 이루는 대가였다. 피해 갈 수 없는, 지름길도 없는 외길이었다.
힘들 때마다 재활 심리 치료를 담당하는 치료사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존, 훈련이 힘들 때는 잠시 멈추고 하늘을 보세요. 그리고 자유롭게 하늘을 비행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세요. 그럼 도움이 좀 될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의 생각을 뒤로 가지 않게 하는 거예요. 꿈은 뒤에 있지 않잖아요? 생각을 앞으로 가게 하세요. 꿈을 향해서요."
"생각을 앞으로 가게 한다고요?"
"네. 맞아요. 찾아오는 생각에 자신을 던져두지 않는 거예요. 그 생각은 이 모든 재활과 훈련과정을 '무의미'하다고 할 거예요. 예컨대 '넌 할 수 없어'같은! 절대 그런 생각에 자신을 던져두어선 안돼요. 존, 당신이 생각을 창조하고 컨트롤하세요. 그건 곧 더 밝은 면을 보는 것이죠. 더 자주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거예요. 당신의 꿈과 희망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요. 마치 바로 코 앞에 와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리고 하나 더, '난 할 수 있다!'라고 자주, 할 수 있다면 매 순간 스스로에게 말로 선포하세요. 말에는 힘이 있거든요. 대부분 그걸 잘 몰라요. 존, 신께서 온 우주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하셨다는 말은 들어 보셨죠?"
"네. 그럼요. 그런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어릴 때부터 제게 가르쳐 주신 거니까요."
"그래요. '말의 힘', '선포의 힘'을 믿으세요. 반드시 당신은 해 낼 거예요. 벌써 여기까지 왔잖아요. 존, 이건 정말 쉬운 일들이 아니에요. 스스로를 믿으세요."
"네. 그래 볼게요!"
눈을 감고 활짝 핀 꽃들 사이를 나무들 사이를 자유롭게 비행하는 상상을 자주 했다.
그것은 실제로 고통을 잊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몸과 마음에 전해지는 고통과 반복되는 지루한 훈련에 집중하면 괴로워질 뿐이었다. 기분 좋은 상상은 마치 고통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는 대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가끔 혼자서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중얼거리면 옆에 있던 새들이 조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조금 신경 쓰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시선 따윈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더 자주, 더 많이 '할 수 있다!'를 외쳤다.
◇◇◇
"안녕하세요. 아저씨?"
"안녕? 오늘은 컨디션이 어떠니?"
"음. 어제보다 좀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여전히 행복해요. 아직은 걸을 수 있으니까요. 비록 가이드 봉을 잡고서 걸어야 하지만."
제니는 재활 치료를 하면서 만난 꼬마 아이다.(제니는 나보다 먼저 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제니는 항상 밝고 씩씩했다. 더욱이 그 조그만 얼굴에서 셀 수 없이 다양한 표정이 나오는 아주 신기한 아이였다. 처음 먼저 인사를 건넨 것도 제니였다. 첫 재활센터에 훈련 때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던 내게 제니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하세요? 얼굴이 정말 우울해 보여요! 인상 좀 펴세요!"
당차고 당돌한 제니는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었다.
"어... 그래. 안녕? 내 표정이 그랬니? 하하."
제니는 태어났을 때부터 이상한 병을 가지고 있었다. 정확한 병명은 모르지만 몸이 조금씩 굳어가는 병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몸이 둔해지고 말도 어눌해지다 끝내는 심장이 굳어버려 죽음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병이었다. 이미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투쟁 중인 -그것도 저렇게 밝게- 제니의 투병기는 고통에 대해 투덜대는 것을 부끄럽게 했다. 저런 꼬마 아이도 잘 참고 견디고 있는데 말이다. 어른인 내가 불평을 해서야...
"너는 병이 완쾌되면 뭘 하고 싶니?"
"음. 저는 휠체어를 걷어차 버리고 혼자 걷고 싶어요."
"그다음엔?"
"음... 학교에 가고 싶어요. 친구들이랑 놀 수 있잖아요."
"그래. 그렇겠지. 그럼 그다음엔?"
"음. 하늘을 날아보고 싶어요. 새는 날아야 하잖아요. 날아야 새니까. 저는 새가 되고 싶어요."
'새가 되고 싶다'는 제니의 말이 이해가 안 됐다.
"음. 그런데 넌 벌써 새이잖니?"
"새이긴 하죠. 하지만 아직 날지 않았다면 아직 새가 아닌 거죠. 새는 날아야 하니까."
"그래... 생각해보니 네 말이 맞는구나."
"아저씨는 어때요? 많이 힘드세요?"
"아니. 별로...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단다."
이 아이 앞에선 '힘들다, 고통스럽다'는 말은 왠지 사치 같았았다.
"다행이네요. 힘내세요. 많이 힘들겠지만. 어쩌겠어요. 이게 운명인 거죠."
'운명?'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 같았고 제니는 벌써 나를 앞질러 간 듯했다.
‘아직 날지 않았다면 아직 새가 아니죠. 새는 날아야 하니까...’
제니의 말이 오후 내내 내 귓가에 맴돌았다.
◇◇◇
"존, 모든 면이 긍정인 결과를 보이고 있네요. 수술 후 건강상태도. 재활 훈련도 진전을 보이고 있고요. 아주 좋아요. 오른쪽 날개를 움직이는 건 어떠세요? 자유롭나요? 아님 여전히 많이 불편하신가요?"
"음. 아직은 좀 무겁달까? 아. 무엇보다 날개의 반응이 좀 느린 것 같긴 해요. 그러니까 복도 난간을 잡으려는데 한 번에 잘 잡히지 않는 것 같은 것이요."
의사 선생님은 그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그건 눈과 오른팔 협응력이 아직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걸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질 겁니다."
내 건강상태가 좋아지면 곧 비행훈련이 시작될 거라고 산티아고가 말해 주었다. 비행훈련이 마지막 재활 단계이면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그도 그럴 것이 이 모든 것이 '진짜 비행'을 위한 과정일 뿐이었다.
수술과 재활훈련. 어느 것 하나 쉽진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잘 버티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비행훈련을 곧 시작한다니까 조금 두려워졌다.
'정말 내가 날 수 있을까?'
보통의 새에겐 참 바보 같은 질문이다. 하지만 어른이 되기까지 한 번도 날아 본 적이 없는 나에겐 좀 다른 이야기다. 한 번이라도 날아본 새라면 그 감각을 되살리면 되겠지만 나는 날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몰랐다. 실제 비행에 관해선 처음 비행을 배우는 아이와 같았다.
"존, 이제 비행훈련까지 얼마 안 남았구나. 너는 누구보다 비행이론을 잘 알고 있으니 잘 날아오를 수 있을 거야."
얼마 전 할아버지가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다. 하지만 난 속으로 생각했다.
'할아버지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잖아요! 저는 한번 도 날아 본 적이 없다고요!'
어쩌면 비행이론을 너무 많이 알아 - 끔찍한 사고가 나는 원인도 - 내가 겁 없이 비행에 도전하는 것을 조금 더 두렵게 했는지도 모른다.
'두려움을 꺾는 용기...'
바야흐로 그 행복의 도구를 꺼내야 될 때가 왔다.
◇◇◇
내가 재활 치료를 받는 사이 비행학교에는 나를 위한 비행훈련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비행학교에 비행훈련 공간이 마련된 것은 기초 비행훈련 시설들이 이미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 파이팅!"
"그래. 고마워. 제니도 파이팅!"
내가 첫 비행훈련을 위해 병원 나설 때 제니가 열렬히 응원해 주었다.
첫 비행훈련을 나가기 전날 오후 재활 훈련 센터에서 제니를 만났을 때였다.
"아저씨!"
"아. 제니구나. 왜?"
"아저씨. 내일부터 비행훈련 가신다면서요? 축하해요!"
"응. 맞아. 솔직히 조금 두렵고 겁나는구나. 내가 잘 날 수 있을까?"
"아저씨는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전 알아요."
"그래?"
제니의 영롱한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마치 ‘이건 거짓말이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아저씨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걸 진짜 원하잖아요."
"그래? 하하. 넌 완전 점쟁이로구나. 도대체 네 작은 몸 안에는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니까! 하하."
제니와 나는 잠깐 웃었다.
그러다 제니가 무언갈 발견한 듯 창가 옆으로 휠체어를 옮겼다.
"장미네요. 빨간 장미. 나이팅게일이 만든..."
"응?"
나는 그때까지 나이팅게일이 누군지 몰랐다.
"엄마가 '나이팅게일과 장미'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나이팅게일이 심장을 하얀 장미가시에 박아 붉게 피운 빨간 장미 이야기예요.
"오. 좀 섬뜩한걸!"
"하하. 저도 첨엔 그랬어요. 사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좀 슬프고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나이팅게일의 용기는 정말 대단했어요! 저도 제 심장이 그처럼 누군가를 위해 사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완전히 굳어버리기 전에 말이에요... 누군가에 희망을 주는 것! 그것이 진짜 사랑이잖아요..."
"음..."
갑자기 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나도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린 잠시 시간을 멈춘 채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후!"
그러다 큰 숨을 내쉰 제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저씨. 그런데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응?"
"너무 잘하려 하지 마시라고요! 저는 병원에 오래 있었고, 재활 센터에서 수없이 많은 새들을 봐왔어요. 하지만 잘 걸으려고 잘 일어서려고 한 새들은 여전히 이곳에 있죠."
그랬다. 제니는 나보다 병원에 오래 있었고 그동안 많은 새들을 이곳에서 보아 왔다.
"그렇구나. 재활센터 선배님의 말이니 잘 새겨들을게. 그런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부러 제니의 생각을 물어봤다. 저 조그만 부리에서 또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하세요."
"엥? 그냥 하라고?"
"네. 그냥 하세요. 꾸준히요. 그냥 매일매일 빼먹지 말고 하세요. 재활 과정을 말없이 묵묵히 통과해낸 새들은 모두 이곳을 벗어났어요. 보세요. 이미 아저씨도 이곳을 점점 벗어나고 있잖아요? 아저씨처럼 열심히 또 말없이 이곳을 매일매일 다녀간 새는 드물어요. 아저씨도 잘 몰랐죠?"
제니는 항상 나를 보고 있는 듯했다. 나도 그랬다. 재활 센터에 들어서면 오늘은 제니가 먼저 왔는지 센터를 한 바퀴 둘러보곤 했다.
창 틈으로 새어 든 바람에 제니의 날개깃이 살짝 날렸다.
순간 제니가 꽃으로 보였다. 제니는 정말 꽃 같았다. 아직 한 번도 핀 적 없는, 그러나 이미 수없이 피고 진 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