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약속 <1/2>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어떻게 사이즈를 이렇게 딱 맞출 수 있었을까?'
비행 슈트를 입고 캐비닛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신기하게도 비행 슈트가 내 몸에 꼭 맞았다. 순간 들었던 의문! 하지만 곧바로 답을 떠올려 냈다.
'아! 할머니!'
할머니였을 것이다. 이렇게 정확히 내 몸 치수를 아는 건 할머니 밖에 없으니까. 거울엔 다른 비행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한 새가 서있었다. 사실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비행학교 학생 시절에 가장 부러웠던 게 바로 이 비행 슈트였다. 그땐 관제사복을 벗고 비행 슈트만 입을 수 있어도 기뻐 뛸 거라고 생각했었다. 보통의 새가 되는 것 - 늘 그 평범함을 동경했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비행 슈트를 입어보니 생각보다 담담했다. 외려 마음이 더 차분해지고 평안해졌다.
'훗... 이젠 나도 나이가 좀 든 건가?'
조금은 헛헛한 웃음이 살짝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감동적인 이 순간을 좀 더 즐기고 싶어 한 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
"오늘은 첫날이니까 가볍게 훈련 환경에 적응하고 몸을 푸는 정도로만 할 겁니다. 준비되셨나요?"
나를 위해 특별히 배정된 베테랑 비행교관이 말했다.
"네. 준비됐습니다. 교관님!"
일부러 절도 있는 목소리로 힘차게 대답했다.
"네. 기합이 좋네요. 훈련 때는 지금처럼 항상 긴장을 유지하세요. 사고는 순간입니다. 잘 아시죠?"
"네. 알겠습니다!"
안전한 훈련을 위해 일부러 약간의 긴장감을 고조시킨 교관이 말했다.
"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시죠."
그렇게 첫 비행훈련의 문이 열렸다.
(사실 그 문은 천국의 문이라기보다 지옥의 문에 더 가까웠다.) 첫 시작은 착지 훈련이었다. 대략 1m 정도의 높이에서 뛰어내리면서 안전하게 착지는 훈련이었다. (비행은 날아오르는 것보다 안전하게 착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착지 훈련부터 했다.) 쉽게 보이지만 이식받은 날개를 아직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통제하기 힘든 내겐 은근히 부담되는 훈련이었다.
'1m가 이렇게 높았었나?'
막상 나무 기둥 위에 서서 뛰어내려 착지할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이 보다 훨씬 높이 있는 둥지를 오르내릴 땐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그러니 이 두려움은 아마도 이식한 날개를 잘 펼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탓일 터였다. 나도 모르게 발톱으로 나뭇가지를 아주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얼마나 힘을 주고 서있었는지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존, 준비됐나요?"
교관님이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물어 왔다.
"네. 준비됐습니다!"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좋아요. 그럼 제 구령에 맞추어서 '점프 - 착지'하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자, 다시 한번 설명할 테니까 저를 잘 보세요. 도약 높이가 낮기 때문에 점프와 동시에 날개를 활짝 펼쳐야 해요. 그리고 이렇게 날개를 몸 앞까지 오므려 바람을 두어 번 가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하게 착지할 수 있어요. 날개의 양력(들어 올리는 힘)이 적으면 충격으로 다리가 부러 질 수 도 있어요. 아시겠죠? 오로지 착지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첫 착지 훈련에 교관님도 걱정이 되는지 몇 번이나 착지하는 자세를 시연해 보이면서 주의점을 강조했다. 교관님의 말을 잘 알아 들었다는 싸인으로 활짝 편 날개로 바람을 가두는 시늉을 두어 번 해 보였다.
"좋아요. 절대 잊지 말아요!"
다시 고개를 들어 심호흡을 두어 번 했다. 사실 이 높이에서 떨어진다 해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마음 한 편에선 계속 나를 불안하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존, 아직 때가 아니야. 너의 새 날개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어! 이러다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다고! 그러니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어서 교관에게 말해...'
심장 박동에 맞추어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불안의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아니야! 난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할 수 있다'는 자기 체면뿐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고작 1m 높이에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지... 하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첫 비행훈련의 부담이 그만큼 진지하고 무겁게 다가왔었다.)
그때 교관님의 준비 명령이 내려졌다.
"점프 준비!"
"점프 준비!"
교관님의 지시에 맞추어 나뭇가지 끝에 섰다. '심리적 벼랑!' 훗날 나는 이 순간을 이렇게 불렀다. 마치 천 길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발을 떼고 짧은 비행으로 이 벼랑 아래에 안전하게 착지해야 했다.
"점프 - 착지!"
"점프!"
마침내 움켜쥐고 있던 나뭇가지에서 발을 떼고 몸을 땅바닥으로 떨어 뜨으렷다. 착지까지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마음으로는 이 시간들을 더 짧게 세분해서 몸을 움직여야 했다.
'날개를 피고, 날개를 앞으로 오므려 가두고... 그리고...'
'착지!'
'콩콩콩...'
다행히 이식받은 날개가 잘 펴졌다. 사실 고도의 집중을 한 탓에 이식한 날개를 의식조차 못했다. '날개를 펼친다!'라는 생각에 따라 자연스럽게-무의식적으로 양 날개가 펼쳐졌고 그다음이 이어졌다. 다만 마지막 착지 때 아직 날갯짓이 완전하지 않아 바람을 가두는 것이 불안정했다. 결국 지면에 발이 닿았을 때 날개가 여전히 반쯤 펼쳐진 상태로 양다리를 번갈아 가며 통통 튀듯 앞으로 밀려갔다. 앞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아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됐다. 그래도 완전히 엎어진 않았고 첫 착지 훈련은 성공적- 아주는 아니 더라도 -이었다.
"잘했어요, 존!"
무뚝뚝한 교관이 처음으로 얕은 미소를 살짝 보였던 순간이었다.
"네. 아.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됐네요! 하하."
"그럼 더 잘됐군요! 의식하지 않고 해냈다면 몸이 제대로 반응한 거니까요."
그리곤 몇 번의 착지 훈련이 더 이어졌다.
“점프 - 착지!”
교관님의 지시에 따라 착지 훈련을 반복했다. 꾸준히 재활 훈련을 해왔지만 아직 공중에서 안전하게 착지하기 위해 날갯짓으로 공기를 가두는 것(착지까지 양력 - 떠오르게 하는 힘 유지)은 쉽지 않았다. (이 훈련은 아주 중요했다. 만약 실제 비행을 하다가 착지 단계에서 바람을 잘 가두지 못하면 착지 때 내 몸무게가 실린 중력을 두 다리가 버티지 못해 산산이 부서지고 말 것이다.) 이어지는 몇 번은 착지 때 균형을 잡지 못해 기우뚱하거나 옆으로 넘어지거나 앞으로 꼬구라 지기도 했다.
"존,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세요! 잡생각을 비우고 착지에만 집중하세요!"
교관님은 내가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빈틈이 보이면 가차 없이 소리쳤다. 마치 번쩍거리는 칼날 같은 교관의 호통은 나를 온전히 훈련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훈련 횟수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이 생기는 만큼 1m란 높이는 점점 낮아져 갔다.
"존,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첫 훈련치 고는 아주 잘했어요. 그 느낌을 기억하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마침내 첫 비행 훈련이 종료되었다. 모든 삶에는 극적인 변곡점이 있기 마련이다. 내겐 첫 비행훈련이 그랬다. 그것은 내 인생을 'B.C'와 'A.D'로 나눈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아직은 완전하지 않지만 이미 뭔가 이룬 것 같은 느낌! 보통의 새들이 이미 오래전에 누렸을 가장 기초적인 행복에 나는 아직 흔들리는 날갯짓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마지막 착지 후 아직 거친 숨을 고르고 있는 내게 교관이 말했다.
"오늘부터는 틈날 때마다 '이미지 트레이닝(Image Training)'을 하세요."
"이미지 트레이닝이요?"
"네. '상상훈련'이요. 쉽게 말해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훈련과정을 아주 생생하게 상상하는 거예요."
"아. '상상으로 착지 훈련'을 하란 말씀이시군요."
"네. 바로 그거예요. 상상훈련은 실제 훈련만큼 효과가 있어요. 상상훈련은 비행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가장 효율적인 훈련방법 중 하나죠. '상상훈련'의 효과는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아주 과학적이죠."
"상상훈련이 과학적이라고요?"
여태껏 그런 상상훈련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비행 베테랑이신 할아버지에게서 조차도. 더욱이 상상훈련이 과학적이라는 교관님의 말이 의아했다.
"상상훈련은 실제 비행 동작에 필요한 신경과 근육들을 훈련시키는 효과가 있어요. 믿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게 과학적 사실이에요. 더욱이 지금처럼 절차 훈련이 필요한 경우에는 더욱 강력한 효과를 보이죠. 상상훈련을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의적으로 몸이 반응할 때가 옵니다. 그러니 실제 비행훈련만큼이나 효과적인 훈련이에요."
"네. 그렇군요. 신기하네요. 상상만으로도 근육과 신경이 발달된다는 게... 아무튼 교관님 말씀대로 열심히 상상 훈련할게요. 자유롭게 비행하는 나를 상상하는 것만큼 기분 좋은 것도 없으니까요!"
"네. 좋아요. 다만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상상보단 자유롭게 하늘을 날기 위한 중요한 절차들을 아주 꼼꼼히 상상해야 한다는 걸 꼭 기억하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교관님은 조금씩 점프 높이를 높여 착지 연습을 하게 될 거라고 했다. 훈련의 성과는 나의 비행에 대한 결연한 의지 - 반드시 날겠다는 - 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결연한 의지!'
나는 정확히 그런 마음이고, 또 해낼 수 있다고 대답했다. '결연한 의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제니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한 발이라도 걷겠다는 그래서 언젠가는 다시 날겠다는, 그래서 또 하루를 살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 나는 제니를 통해 결연한 의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