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약속 <2/2>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첫 훈련을 마치고 비행 슈트를 캐비닛에 걸 때였다.
아무도 없는 나 혼자만의 순간이지만 캐비닛에는 비친 내 얼굴과 나란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계셨다. 그리고 그 옆으론 산티아고와 제니가 또 그 옆으론 나를 응원해 주고 있는 이들이 미소 지으며 서있었다. 선명한 그들의 얼굴에 하나하나 고마움을 전했다. 어느새 미소 지은 얼굴 아래 가슴에선 부듯함이 치올랐다. 그동안 아니 살아온 모든 날 그저 동경하기만 했던 일을 마침내 시작하고 있는 지금, 마치 꿈속에 있는 듯 신기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즐기며 의자에 편히 걸터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직 깃털 하나하나의 옅은 바람의 기운이 남아있는 첫 훈련을 돌아봤다. 비행을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할 것, 어쩌면 그것은 물리적인 날갯짓이 아니었다. 비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그 두려움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사실 나의 도전은 그 막연한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다. 어린날 날개를 잃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딛고 새로운 날개에 대한 걱정을 떨쳐내고 날개를 펼치는 것이었다.
'휘이잇!'
교관님이 말씀하신 이미지 트레이닝! 눈을 감은 채로 상상 비행을 했다. 온몸을 눌러왔던 두려움을 바람에 날려버리고 자유롭게 오래오래 이곳저곳을 비행하는 상상. 마치 한 번의 비행훈련으로 모든 비행기술을 습득한 양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제니에게 이 비행 슈트 입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상상으로나마 멋지게 착륙하면서 생각했다. 아쉽지만 비행 슈트는 비행학교 내에서만 착용이 허용되었다.
◇◇◇
비행훈련은 격일로 진행됐다.
하루는 재활훈련을 하루는 비행훈련.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훈련을 위해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훈련하도록 프로그램되었다. 밤새 첫 비행훈련 훈련, 특히 내 이름이 달린 비행 슈트를 입은 느낌이 어땠는지 제니에게 얘기해 주고 싶어 혼났다. 아침이 밝고 나서 제일 먼저 한일은 거울을 본 것이었다.(원래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보지 않는다.) 어제 비행 슈트를 입은 내가 여전히 거울에 비치는 듯했다. 일찍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재활센터가 열리는 시간에 맞추어 병실을 나섰다. 오늘은 할 얘기가 너무 많으니까.
"헤이 제니! 굿 모닝!"
"아, 아저씨. 굿 모닝!"
"제니 어제 못 봤더니 오늘은 더 예뻐진 것 같은데?"
"웨엑! 아저씨. 아저씨에겐 그런 말 잘 안 어울리는 건 아시죠? 너무 느끼해요."
"그래. 그랬다면 미안."
우리의 첫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농담을 던지면 다시 농담으로 받아치거나 현기증이나 쓰러지는 연기를 하는 것 땅이었다.
"참. 첫 비행훈련은 어땠어요?"
"음. 아주 멋졌지!"
"오. 다행이네요! 사실 엄청 걱정했는데. 하지만 아저씨라면 잘 해낼 거라 믿었죠."
한마디 말에 걱정과 위로를 오가는 요 꼬마 녀석은 마치 칡넝쿨 그네 놀이처럼 항상 나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나는 얼른 밤새 말하고 싶어 부리가 근질근질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나, 내 이름이 달린 비행 슈트를 선물 받았어. 정말 멋진 비행 슈트야! 아... 네가 그걸 봤어야 하는데!"
"와 정말요? 비행 수트라. 음... 아저씨에게 좀 어울릴 것 같기도 하네요."
나를 위아래를 훑고선 고개를 까딱까딱거리면서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못 믿겠다는 듯한 제니의 태도에 내가 열을 올렸다.
"야야. 무슨 소리! 완.전. 어.울.렸.거.든!"
"아무튼 축하해요.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신걸."
"고마워. 제니. 너의 응원이 큰 힘이 됐어. 이건 진심이야."
농담이 아니란 걸 급히 바꾼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 그 눈빛... 아저씨. 음. 정말... 그런데 오늘은 비행훈련이 없어요?"
"응. 격일로 훈련하기로 했어. 너무 무리되지 않게."
"그렇군요. 늘 아저씨를 응원할게요. 기억하시죠. 너무 잘하려 하지 마세요."
제니의 귀여운 잔소리는 늘 반가웠다.
"그래. 그래.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할게. 묵묵히. 꾸준히!"
제니도 아까부터 내게 할 말이 있었는 듯했다. 제니는 진지한 얘기를 할 때면 먼저 창가로 가까이 다가가 푸른 하늘을 바라봤다. 제니의 그런 행동은 마치 '오늘,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것처럼 보였다. 항상 '마지막 순간'에 서 있는 제니의 모습은 어떤 어른보다 진지했고 어떤 이슬보다 순수했다.
"아저씨. 저 내일 수술해요. 아마 한동안은 재활센터에 오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 음... 좋은 소식인가?"
수술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더 좋아지기 위한 것. 그리고 너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한 것.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 하는 수술이래요.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 재활훈련이 될지도 몰라요. 걷지도 못하면 이제 병실에 누워만 있어야겠죠. 사실 의사 선생님과 엄마가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들었거든요. 엄마가 많이 울었어요. 하지만 전 괜찮아요. 아직은 걸을 수 있으니까요."
무어라 해줄 말이 없었다. 어떤 위로의 말도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걸 찾을 필요가 없었다. 제니는 여전히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기도할게. 꼭 여기서 우리 다시 볼 수 있게. 아저씨가 원래 기도를 잘 안 하는 데 그래서인지 가끔 기도하면 하나님이 잘 들어주시거든. 한동안 기도한 적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효과가 있을 거야!"
터무니없는 나의 '기도 빨' 이야기를 꺼내 애써 웃어주었다.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슬퍼지는 건 슬퍼진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음. 아저씨 그럼 나랑 약속해요."
"무슨?"
"아저씨는 열심히 훈련해서 꼭 하늘을 나세요. 그럼 저는 수술 잘 받고 힘내서 다시 이곳으로 나올 테니까요."
그것은 지금껏 내가 해본 어떤 약속보다 무거운 약속이었다.
"그래. 꼭 그러자. 나는 날고, 너는 낫고! 어때? 우리 약속할까?"
"좋아요. 아저씨는 날고, 나는 낫고!"
"자, 그럼. 약속, 도장, 싸인, 복사, 코팅!"
제니의 작고 따뜻한 손을 두 손으로 잡고 '코팅'하는데 나도 몰래 울컥했다. 하마터면 울뻔했다. 제니는 환하게 웃으며 돌아섰고 재활기구에 의지해 여느 때처럼 한걸음 한걸음 걸어 나갔다. 제니의 마지막 걸음이 될지도 모르는 오늘이 눈에 가득 찼다.
누군가를 위해 내 꿈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무게감!
내 어깨를 가볍게 누르는, 부리를 살짝 깨물게 하는, 또 나를 빙그레 미소 짓게 하는! 어쩌면 그 부담과 기대가 모두 행복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너무 늦지 않게 속도를 내야 했다.
'제니가 별이 되기 전에 반드시 하늘을 날아 보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