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희망의 불씨 <1/2>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어이쿠!"
제니가 오늘 수술을 한다는 것, 또 어제의 약속. 그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비행훈련에 임한 탓일까? 오늘따라 실수가 잦았다. 자세가 흐트러지고 균형을 잡지 못했다.
"존, 제가 보기엔 훈련에 전혀 집중치 못하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나요?"
지난번과는 사뭇 다른 훈련 성과에 교관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죄송합니다. 별일 아니에요. 재활훈련을 조금 무리해서 그런가 봐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자칫하다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요. 온전히 집중해야 합니다. 아시겠죠?"
"네. 알겠습니다. 집중할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집중될 리 없었다. 훈련 내내, 아니 온종일 내 마음은 제니의 수술에 가있었다.
◇◇◇
두 번째 훈련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교관님은 다음 훈련 때까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두배로 하라고 말하며 뒤돌아 섰다. 그리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열성적으로 코치해주고 있는 교관님에겐 미안했지만 나도 내 마음을 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보통은 비행훈련 후에도 혼자 남아 부족한 훈련을 좀 더 하곤 했었는데 오늘은 훈련을 마치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돌아왔다. 내 조급한 두발은 서둘러 제니의 병실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수술 중인가?'
제니가 병실에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 수술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침 병실을 지나가던 담당 간호사가 눈에 띄었다.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서서 물었다.
"저... 혹시 제니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았나요?"
"아... 제니요? 수술은 벌써 끝났었요. 다만..."
"혹, 무슨 일이라도?"
"네... 사실 이번 수술은 처음부터 어려웠어요. 제니의 심장이 이젠 너무 약해져 버려서... 이번엔 의사 선생님도 손을 댈 수가 없었어요. 결국 수술을 포기하고 다시 회복실로 옮겼는데 아직 깨어나질 못하고 있네요. 마취는 진작 풀렸을 시간인데..."
나는 얼른 회복실로 뛰었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회복실 좁은 창문으로 다가가 제니를 보았다. 제니는 깊이 잠든 듯했다.
'제니...'
발을 뗄 수 없어, 눈을 뗄 수 없어 한동안 제니만 바라보고 있었다. 거칠게 한 숨 한숨 쉴 때마다 제니의 가슴이 힘겹게 오르내렸다.
'조금만 기다려줘. 아저씨가 약속 꼭 지킬게. 대신 너도 꼭 약속 지켜야 해. 어서 힘내서 일어나자. 우리 다시 만나기로 했잖아...'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아 그 자리에 굳어버린 인형처럼 서 있었다.
'내가 어떻게 이 아이의 아픔에 이렇게 깊숙이 들어가게 됐을까? 제니의 아픔이 왜 내 것이 되었을까?...'
답도 없는 생각들로 머리를 혼란스러웠다. 마음이 말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라고.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어서, 나만 꿈으로 희망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 같아서...
'저 어린아이가 무슨...'
나는 도무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 제니는 날 때부터 병을 가지고 태어나 하늘을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그건 제니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니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루만 더 걷고 싶다는, 학교에 가보고 싶다는 소박한 꿈. 그 대수롭지 않은 꿈으로 벌써 큰 수술을 몇 번이나 이겨냈다. 그렇지만 제니의 불은 꺼져만 가고 있다. 여태껏 아무것도 가져본 것이 없는 아이가 아닌가! 이건 너무 불공평한 처사가 아닌가? 불평치 않고 저렇게 웃고 있는데. 많은 새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는데! 왜 정작 저 아이는 점점 소멸되어 가야 하는지... 그녀의 소멸이 마치 나의 사라짐 인양 느껴졌다. 마음이 복잡했다. 운명이라 하기엔 너무 잔인하고 숙명이라 하기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내 것이 아니지만 마치 내 것 같은...
'신의 섭리! 도대체 그분의 뜻이란 무어란 말인가?'
"내 심장이 완전히 굳어버리기 전에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제니가 한 말이었다. 심장을 가시에 박아버린 나이팅게일의 어리석은 사랑을 이야기하며...
'제니, 넌 내게 희망을 주고 정작 너는 소멸해 가는구나... 마치 바보 같은 나이팅게일처럼...'
◇◇◇
"오늘은 훈련에 의욕이 넘치네요. 이런 페이스라면 곧 첫 시험 비행도 도전해 볼 수 있겠어요!"
"네. 어제부터... 어제부터에요. 단 하루라도 빨리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 그 꿈이 너무도 간절해졌어요."
이전에 없던 힘까지 짜내어 비행훈련에 임했다. 조금 화 - 정확한 대상도 없는, 막연한 것이었다. - 가 난 건지도 모른다. 마음으로 느껴지는 뜨거움! 제니의 꺼져가는 불이 내게로 옮겨오는 듯했다. 나는 다시 비행훈련에 완전히 몰입하며 조금씩, 더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게 옮겨온 이 알 수 없는 힘은 제니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끄으...'
반복되는 훈련에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도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이 순간 나는 오로지 날기 위해 존재하는 새였다. 내 의지가 높은 만큼 훈련의 진도도 성큼성큼 나아갔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짧은 시간에 최종 목표에 거의 도달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험 비행 전 마지막 훈련 단계에 접어들었다.
"오늘은 좀 느낌이 다를 수 있어요. 실제 자유비행 같은 느낌이 들 겁니다. 이 단계 통과하면 첫 자유비행에 도전하게 될 거예요."
비행훈련의 마지막 단계. 자유비행과 거의 같은 조건에서 훈련이었다. 다만 도약대의 높이가 조금 낮을 뿐이었다.
'거의 다 왔어!'
도약대에 올라서 저 아래 바닥을 보니 덩치 큰 교관님이 아주 작게 보였다. 이제부턴 한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작은 실수가 목숨조차 위협할 수 있는 높이였다. 제대로 날개를 펼치지 못하거나 안정적으로 착지하지 못하면 다시 병원신세를 오래 져야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휴우..."
크게 심호흡을 하고 교관님의 점프 지시를 기다렸다.
"비행 준비 - 점프!"
교관의 지시에 맞추어 점프했다. 중력에 실려 떨어지는 속도가 느껴졌다.
"수평비행 - 날개 펼쳐!"
지시에 따라 힘껏 날개를 펼쳤다.
'조금만 더. 조금만!'
바닥에 닫기 전에 반드시 날개를 펼쳐야만 했다. 다행히 날개는 끝까지 펼쳐졌고 지면에 닫기 직전 가까스로 수평비행으로 전환됐다.
'됐다!'
날개를 완전히 펼쳤을 때 양 날개가 급격히 양력을 받으며 떨어지던 나를 지면보다 조금 높은 수평으로 끌어올렸다. 그 짧은 전환의 순간엔 심장이 출렁했다. 그리고 짧디 짧은 수평비행이 이어졌다.
"착지!"
"착지!"
힘차게 착지 구호를 복창하고 두 날개를 앞으로 모아 힘껏 휘저으며 바람을 가두었다. 조금 매끄럽지 못한 착지자세로 두발을 앞으로 통통 튀기며 착지했다. 그래도 넘어지거나 꼬꾸라 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성공에 가까웠다. 잠시 후 등 뒤에서 교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했어요. 존! 아주 잘했어요!"
신기했다. 내가 비행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물론 아주 짧은 비행거리였지만 '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확실이 느낄 수 있었다.
"교관님! 제가 정말 날은 거죠?"
◇◇◇
짧았지만 강렬했던 첫 비행의 감격을 제니에게 제일 먼저 말해주고 싶었다. 비행훈련을 마치자마자 제니에게 달려갔다. 지난번보다 훨씬 가벼운 마음이었다. 전해 줄 좋은 소식이 있으니까!
"제니! 오늘 드디어 내가 날았어. 물론 아직 자유비행이라 하기엔 턱없이 짧은 거리였지만. 내가 확실히 날았다고! 이게 믿겨?"
여전히 제니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렇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분명 제니에게 들릴 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갈수록 제니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제니가 저렇게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아직 저렇게 어린데... 제니 말이야. 너무 안됐어. 이젠 정말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아."
"그러게 말이에요. 그동안 너무도 잘 버텨 왔는데. 참 밝은 아이였는데..."
제니의 병실 책임 간호사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였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파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