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희망의 불씨 <2/2>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나의 비행에 대한 투지는 마치 마른 숲에 불이라도 낼 듯 타올랐다.
나는 모든 시간과 노력을 오로지 이미지 트레이닝과 실 비행 훈련에 쏟아부었다. 한 동안 제니를 찾아가지 않았는데 하루라도 빨리 약속을 지키겠다는 내 결연한 의지였다. 지난번 마지막 제니를 보러 갔을 때, 그때였다.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오로지 내가 해야 할 일만 선명하게 드러난 것은. 자유비행!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존. 강열한 의지는 좋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다 이로운 것만은 아니에요. 어깨와 날개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갔어요. 그러니 매끄러운 비행이 될 리 없죠."
"아. 저도 모르게 그만..."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비행은 공기의 흐름을 타는 거예요. 날개에 힘을 쓸 때는 오로지 착지할 때라고요! 아시겠죠?"
"네. 명심할게요."
제니의 말이 메아리치듯 귓가에 들렸다.
'아저씨. 잘하려 하지 말고, 그냥 하세요. 그냥요!'
"자, 준비되면 다시 한번 점프해 보죠."
"휴우..."
잠깐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장의 고동이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 심장의 소리가 작아지면서 고요해진 느낌마저 들었다.
"준비됐습니다."
"좋아요. 그럼 준비 - 점프!"
"점프!"
숨을 최대한 크게 들이마신 후 날개를 접어 가볍게 공중에 던지듯 몸을 날렸다. 잠시 후 머리가 땅으로 숙여지면서 자유 낙하하는 느낌이 온몸에 전해졌다. 귓가를 스치는 공기의 흐름으로 점점 낙하속도가 붙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레벨!(수평비행)"
깃털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을 느꼈다. 나는 꽃들이 봉우리를 터트려 꽃잎을 활짝 펼치듯 부드럽고 아주 재빠르게 날개를 펼쳤다.
"레벨(수평비행)!"
어느 때 보다 부드럽게 수평비행으로 전환되고 있었다.
"착지!"
'너무 애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바람을 가둔다...'
"착지!"
두 날개를 앞으로 모아 둥글게 더 둥글게 바람을 가두었다. 마치 아이를 품는다는 느낌으로. 그리곤 이제껏 어느 때 보다 가볍게 착지했다. 두발이 정확히 땅에 닿았고 작은 유동도 없었다. 내 느낌이 맞다면 교관님이 말씀했더 바로 그 착지였다. 완벽에 가까운!
"와우! 존. 이번엔 정말 잘했어요. 바로 그거예요!"
교관님의 칭찬이 들려왔다. 불안과 두려움 없는 평안함. 정말 그랬다. 여태껏 느낄 수 없었던 평안이 느껴졌다. 나는 이 '이루어진 느낌'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잠시 눈을 감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후우..."
마침내 꾹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핑 도는 듯 조금 어지러웠다. 점프할 때부터 참고 있던 숨이었다.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참아 보았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언젠가 할아버지가 '몸으로 익히는 지식'에 대해 말씀해 주신 적이 있었다.
"비행이론을 많이 안다고 꼭 실제 비행을 잘하는 건 아니란다. 그 많은 지식이 몸에 익을 때 비로소 그것을 소화해낸 거지. 소화해낸 다는 것은 무한한 연습을 말한단다. 지식이 완전해지는 데는 무한한 연습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단다. 언젠가 네가 이런 것들을 느낄 때가 오면 좋겠구나..."
훈련을 거듭할수록 할아버지의 말씀이 조금씩 이해됐다. 몸으로 익히는 지식... 비행은 정말 몸으로 익히는 지식이었다. 그 많은 지식이 몸에 익어갈 때쯤 훈련은 드디어 마지막 단계만 남겨 두고 있었다.
◇◇◇
"이제 마지막 테스트 비행만 남았네요. 긴장할 건 없어요. 지난번처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만 하시면 돼요. 그 감각을 기억하고 있죠?"
"네. 물론이죠. 문제없어요!"
마침내 자유비행 전 마지막 테스트 비행에 들어섰다. 지금까지의 비행 훈련은 정말 고됐다. (불안과 고통의 지옥이 있다면 나는 이 훈련을 통해 약간은 경험해 본 듯했다.) 그렇지만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성장했다. 그건 단지 비행만이 아니었다. 지독한 고통을 참아내는 것, 또 인내하고 인내하는 것. 포기하고 싶어도 다시 도약대에 서는 것. 넘어지고 꼬꾸라 져도 툴툴 털고 아무렇지 않게 일어서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훈련의 과정 동안 내 몸에 익은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새들이 어릴 쩍 겪는 비행 성장통을 뒤늦게라도 따라잡을 수 있어 좋았다. 마침내 나는 그들과 같은 선상에 설 수 있게 됐다.(물론 아직 훈련이 끝난 건 아니지만, 아주 곧 그렇게 될 거니까!)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잘 극복하게 할 수 있도록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가 되어준 제니가 고마웠다.
"자, 준비"
"준비!"
문득 스쳐간 많은 생각들을 뒤로하고 교관님의 준비 지시에 자신 있게 복창했다.
"점프!"
"점프!"
교관님의 지시에 지난번 기억, 아니 비행 감각이 몸을 자연스럽게 도약시켰다. 중력을 느끼며 자유 낙하하는 것도 귓가를 스치는 공기의 속도도 지난번처럼 생생히 느껴졌다.
"레벨!(수평비행)"
"레벨!(수평비행)"
접고 있던 양 날개를 힘차게 펼쳤다.
'툭!'
갑자기 '툭'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오른쪽 어깨를 긴 창으로 마구 찌르는 듯한 깊은 통증이 느껴졌다. 다행히 날개는 정상적으로 펼칠 수 있었어서 수평비행과 착지는 무사히 이루어졌다.
'뭐지?...'
"존.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이제 비행 테스트 결과를 올리면 공식적인 자유비행 날자가 잡힐 거예요. 그때까진 컨디션 관리 잘해야겠죠?"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준비할게요."
교관님께 날개를 펼칠 때 급격한 고통이 있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정밀검사 같은 문제로 마침내 눈앞으로 다가온 자유비행 날자를 연기시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동안 너무 무리한 탓일 거야. 좀 쉬면 괜찮아지겠지.'
◇◇◇
"존. 훈련은 잘 마치고 왔니?"
"네. 할아버지. 이젠 자유비행도 문제없을 것 같아요. 자신 있어요!"
"그래. 그래. 나도 네가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병실에 먼저와 나를 기다리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자, 이걸 받거라."
"이게 뭐죠?"
할아버지는 고급스러운 남색 케이스를 하나 건네주셨다.
"어서 열어보렴. 네 맘에 들었으면 좋겠구나."
마치 마술사가 비밀상자의 베일을 벗기듯 기대감과 약간의 긴장감으로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우와. 이건! 비행 마크잖아요."
"그래. 그건 우리 편대의 비행 마크였단다."
"할아버지 편대... 아. 그 히어로 두 분과 할아버지 말씀이시죠? 그런데 지금껏 한 번도 보여주신 적 없으셨잖아요."
"그래. 그래. 내가 잘 보관한다고 이 상자에 넣고 치워 두었었는데... 이 놈의 기억력이란! 도대체 어디에 둔질 몰라 잃어버린 줄 알았단다. 그런데 할미가 일전에 둥지를 대청소하면서 발견했어. 다행히 예전 그대로였지.”
"아하! 다시 찾게 되어 정말 다행이네요. 그런데 왜 이걸 제게?..."
"이젠 이걸 네게 줄 때가 된 것 같아. 이 비행 마크가 널 지켜 줄 거야. 독수리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듯이 말이야. 두려운 순간이 올 때마다 이 비행 마크에 손을 대어 보렴. 그럼 너도 모르게 힘이 솓을 테니."
"하지만. 이건 할아버지의 소중한..."
"존, 네겐 다 주어도 아깝지 않아. 그리고 나는 이 비행 마크가 없어도 전혀 문제없어. 내겐 누구보다 힘센 할머니가 있지 않니? 하하하."
"하하. 알겠어요."
"어디에 붙이는지는 알고 있지?"
"그럼요. 비행 슈트 왼쪽 가슴요!"
"그래. 왼쪽 가슴. 심장이 아주 가까운 곳에."
"아. 할아버지..."
나는 할아버지를 와락 끌어안았다.
◇◇◇
자유비행 전 마지막으로 제니의 병실을 찾았다. 제니의 상태는 여전했다.
"제니, 이건 할아버지가 내게 선물해 주신 비행 마크야. 이건 조종복 왼쪽 심장에 붙이는 건데 내가 비행하는 동안 날 지켜 줄 거래. 자유비행이 끝나면 이 비행 마크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 비행 마크를 네 왼쪽 심장에 붙여두면 네 심장을, 널 지켜 줄지도 모르니까.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약속 꼭 지킬게."
내 말이 잘 전달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창가에 날개를 대고 다시 한번 약속했다.
"약속, 도장, 복사, 스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