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추락 <1/3>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풋!'
갑자기 풋 웃음이 터졌다. 문득 비행학교 시절 관제학 교관님께 들었던 '세상에서 가장 느린 새' 이야기가 생각났다. 날개 없이 날았던, 스스로 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어 버린 인간들 이야기! 그 바보 같은, 하지만 마침내 비행의 전설이 된 두 형제... 아마 그들처럼 운이 좋다면 나도 그들 만큼이나 짧은(공중에서 12초란 시간은 생각보다 시간이다.) 비행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망의 자유비행을 위해 비행학교로 출발하는 아침. 컨디션은 좋은 편이었다. 아직 완쾌되지 않은 오른쪽 어깨의 통증만 제외한다면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그날 이후 습관적으로 오른쪽 날개를 휘휘 저어보곤 했는데 찌릿찌릿한 느낌이 왔지만 그런대로 참을만했다.
"존..."
"할머니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의 비행 마크가 절 지켜 줄 거예요! 잘 마치고 올게요!"
할머니의 눈물샘이 또 터지기 전에 내가 재빨리 말했다. 할머니는 대견스럽다는 표정으로 내 양볼을 쓰러 내시곤 볼 키스로 응원해 주셨다.
"그래. 아무것도 걱정 말고. 그저 안전하게 잘 마치고 오렴."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내가 부담스러워지게 왜 쓸데없이 눈물을 보이냐고 잔소리했지만 사실 할아버지의 마음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두 분을 사랑하듯 두분도 나를 당신의 몸처럼 사랑하시니까.
병원을 출발해 비행학교로 가는 너무도 익숙한 길. 오늘따라 늘 오가던 이 길이 새롭게 다가왔다. 세상은 어제와 같았지만 모든 게 다르게 느껴졌다. 기대 반, 걱정 반! 저울에 올려 본 내 마음 상태였다. 오늘 걷는 이 길이 행복일지 불행일지는 지나 봐야 알겠지만 기왕이면 행복 쪽에 무게를 더 두기로 했다. 만에 하나 비행에 실패한다 해도 그렇게 슬프거나 절망적이진 않을 것 같았다. 지난번에 비행학교 교장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큰 힘이 됐다.
'새들에게 비행만이 중요한 건 아니지...'
정말 그랬다. 이 자유비행 전과 후의 삶은 분명 달라지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과 사랑하는 이들은 변할 게 없다.
다만 제니와의 약속은 꼭 지키고 싶었다. 어쩌면 오늘 자유비행을 꼭 성공해야만 하는 단 하나의 이유를 꼽으라면 다면 그건 바로 제니와의 약속이었다.
◇◇◇
사실 오늘 아침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었던 건 어제 할머니의 조언 덕분이었다.
지난번에 제니를 보고 와서 병실에 시무룩하게 앉아 있을 때였다.
"음... 나라면 기쁘게 도전하는 널 더 보고 싶어 했을 것 같구나. 무거운 의무감이 아니라. 제니였던가? 그 아이 말이야."
할머니가 언제 병실로 들어오셨는지 조차 몰랐는데 어느새 내 등 뒤에 서 계셨다. 내가 뒤로 돌아 할머니를 향하며 말했다.
"네. 제니요. 그런데 할머니가 어떻게 그 아이 이름을 아세요?"
"그래. 제니. 호호. 내게도 할아버지 같은 '특별한 마법'이 있단다."
"네?"
"뭘 그리 놀라니 존? 여자는 남자에겐 없는 '촉'이 있다고 하지 않던?"
"아. 하. 여자의 촉! 기억나요."
"지난번에 네가 훈련을 마치고 일찍 돌아왔던 날 말이야. 우연히 봤단다. 회복실 앞에 서있는 널 말이야. 널 부르려다 말았지. 너만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거든. 네가 자리를 뜨고 나서야 알게 됐단다. 네가 한 동안 감정의 기복이 심했던 이유를. 너답지 않게 말이야."
"네... 맞아요. 저도 정말 제 마음을 알 수 없었어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 않다곤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 요 며칠 너의 모습은 그동안 널 키우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어. 그렇게 심각한 표정도, 가끔 무언가에 무척 화가 난듯한 표정도 처음 본 것들이었지."
"아... 제가 그랬나요? 저는 아무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존. 마음은 반드시 얼굴에 드러난단다. 숨기기 어려운 거야. 간호사들이 말해 주더구나. 네가 제니와 아주 가까이 지냈다고. 마치 친동생처럼 대해 주었다고 말이야."
내가 말했다.
"사실 오히려 그 반대예요. 제가 그 조그만 아이에게서 더 많이 배웠거든요.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회복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 그랬구나. 서로에게 기댄 게로구나. "
할머니가 제니에 대해 이미 알고 계신다니 제니와의 약속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제니와 약속을 했거든요. 너는 낫고 나는 날자고. 그래서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정작 제니는 눈을 뜨지 못하고 있네요. 괜히 미안해요. 제니에겐..."
할머니가 내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존. 내 생각엔 제니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구나. 오히려 더 기뻐했을 거야. 소중한 이가 행복해지는 걸 질투할 이는 아무도 없단다. 어쩌면 제니가 저렇게 버틸 수 있는 것도 그 약속 때문이 아니겠니? 서로를 위한 약속 말이야."
"네. 그랬면 좋겠어요. 제가 자유비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을 때 제니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웃을 수 있다면... 그래서 제니가 잠든 동안 휙 지나가버린 이야기들을 다 들려줄 수 있다면요..."
"그래. 그래. 함께 기도하자꾸나."
그날 나는 오랜만에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의무감이 아니라 기쁨으로 약속을 지키라'는 할머니의 말씀이 늘 밝고 건강했던 본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었다. 생각해보니 제니와의 약속은 서로 깔깔 웃으며 맺은 '즐거운 약속'이었다.
◇◇◇
비행학교에는 생각보다 많은 새들이 모여있었다.
친구 산티아고를 포함해 나의 수술을 담당했던 의사, 재활치료를 담당했던 선생님들과 재활 심리사 상담사 - 생각을 앞으로 밀어내라 했던 - 비행학교 교장선생님과 비행 교관님들, 그리고 몇몇 기자들 까지... '조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모인 새들이었다.
"존, 축하해! 드디어 날게 되는구나! 아무 걱정 마 넌 잘할 수 있으니까!"
웅성웅성하는 군중들 사이에서 제일 먼저 나를 반긴 건 역시 산티아고였다. 산티아고는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산티아고에겐 어떻게 더 고맙다는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두 번 다시없을 소중한 기회를 물어다 준 은인이다. 산티아고와의 인사가 끝나자 내 주위로 새들이 모여들었다. 하나 같이 나를 응원하는 목소리였다.
"..."
비행학교 교장선생님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몇 번 끄덕여 주셨다. 그 몇 번의 고개 끄덕임에 순간 울컥했다.
비행훈련을 시작하던 날 교장선생님과 함께 교정을 같이 걸었었다. 그 후론 우연히 마주치는 경우를 제외하곤 교장선생님을 볼 수 없었다. 아마도 교장 선생님이 바빠서 그럴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교장선생님이 나의 모든 비행훈련과정을 지켜봐 오셨다는 걸.
"존. 오늘도 훈련을 열심히 했나 보구나. 아직도 얼굴에 땀이 흐르는 걸 보니."
비행학교 경비 아저씨였다. 비행훈련을 마치고 막 교정을 나설 때였다.
"네. 아저씨. 이제 시험비행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훈련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꾸 나쁜 생각이 들어서요. 하하."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존, 저기 교정 건너편 커다란 피나무가 보이니?"
경비아저씨가 빗자루 자루로 가리는 곳에는 잎이 아주 무성한 아름드리 피나무가 서있었다.
"네. 아 저기요? 보여요. 그러고 보니 저기 저렇게 큰 피나무가 있는지 잘 몰랐네요. 그렇게 자주 교정을 다녔는데도..."
"바로 거기란다."
비짜루를 지팡이 삼아 허리를 편 경비아저씨가 밑도 끝도 없이 '거기'라고 말했다.
"네?"
"교장선생님이 항상 서계신 곳이야. 네가 비행훈련을 시작하면 늘 그곳에 서계신단다. 아무도 모르지만 매일 교정을 청소하는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지. 후후."
"아..."
그곳은 교장선생님과 날아가는 새떼를 보며 말씀을 나누었던 곳이었다. 그때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하느라 나무를 의식할 틈이 없었다. 날아가는 새들처럼 오로지 앞으로, 목표를 향해 날아가라 하신 말씀과 너무 애쓰지 말라는 말씀을 해주셨던 곳. 바로 그 자리였다. 교장선생님이 날 응원하며 늘 서계셨다는 자리가.
"..."
나도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답했다. 그것은 교장선생님의 응원과 기대에 꼭 부응하겠다는 대답이었다.
◇◇◇
자유비행 전 약간의 연습.
마지막 비행 감각을 되살리고 몸과 날개를 푸는 차원이었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어떤 비행훈련을 해 왔는지 공개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제일 처음 했던 1m 높이에서의 착지 연습부터 시작했다. 중간 높이에서 몇 번의 점프와 아주 짧은 수평비행 - 착지 연습도 이어졌다. 이제 이런 훈련비행은 정말 눈감고도 할 정도로 익숙한 터였다. 다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조금씩 더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 몇 번은 애써 참으며 표정 관리했지만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통증이 증가했다. 조금씩 높이를 더할수록 군중들은 더 큰 기대의 박수를 보냈다. 그들의 기대가 조금 부담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문제없을 거야.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최면을 걸듯 중얼거리면서 지난번 마지막 비행훈련 높이에서의 연습비행을 마쳤다. 다행히 군중들과는 거리가 있어서 통증을 느끼는 세세한 내 표정이 들키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자유비행을 위해 이전의 도약대 보다 더 높은 나무 꼭대기 높이에 올라섰다.
"휴우... 휴우..."
심호흡을 몇 번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도약대의 높이가 아찔했다.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새들이 마치 콩알처럼 보였다. 자칫 실수라도 하면 다시 병원신세가 아니라 즉시 천국행이 될지도 모를 높이였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과 불안감이 몸과 마음을 조여왔다. 나는 그것이 내 몸과 날개를 짓누르지 않도록 잘 통제해야 했다. 눈을 감고 생각을 앞으로 밀어 내고 또 밀어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존. 오늘부터 넌 자유롭게 비행하게 될 거야. 다만 그걸 확인하는 순간일 뿐이야!'
나는 자유롭게 저 하늘 높이 편대 비행하는 철새들을 떠올렸다. 정말 '자유 비행'란 그런 느낌일 것이다. 바람을 타고 흐르듯 날아가는 것. 그리곤 다시 마음을 여기 비행훈련장으로 가져왔다. 지금껏 해왔던 모든 훈련 절차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마지막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떨어지는 순간부터 마지막 착지 순간까지 세세하게 그림을 그리듯 상상훈련을 했다. 이 높이에서 떨어지는 속도감만이 아직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과정은 이미 '몸에 익은 지식'이었다. 끝으로 가볍게 착지하는 나를 그려보곤 눈을 떴다.
"존. 준비되셨나요? 서두르지 마시고 준비가 되면 말씀해 주세요!"
나무 아래에서 도약대에 한 동안 서있는 나를 향해 교관님이 외쳤다.
"네. 잠시만요!"
아주 짧은, 그러나 너무도 중요한 이 순간을 위한 의식! 비행 전 내가 하려 했던 의식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우욱!"
비행 슈트 왼쪽 윗주머니에서 할아버지가 주신 비행 마크를 꺼냈다. 그리곤 방향과 위치를 잘 맞추어 왼쪽 가슴에 붙였다. 전설적인 히어로의 비행 마크가 내 심장 위에 올려지는 순간 나는 - 마치 그와 동일한 능력을 가진듯한 - 신비한 힘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이 비행 마크가 비행 동안 나를 지켜 줄거라 했었다. 나는 그런 미신을 믿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치 할아버지와 함께 있는 듯한 느낌! 바로 그 느낌이었다.
"준비됐습니다!"
마침내 준비 완료 사인을 보냈다. 그 순간 모든 새들이 숨을 죽였다.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른 듯. 시간이 멈춘 듯, 세상이 멈춘 듯 정적이 마저 감돌았다. 이제 여기엔 운명의 심판대에 오른 오직 한 새만 존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