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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연 Jul 10. 2021

13장. 추락 <2/3>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자, 도약('점프'의 공직적인 용어) 준비!"

마침내 교관님으로부터 도약 지시가 떨어졌다. 나는 최대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정상적으로 착지한다면 내 쉬는 첫 숨은 저 아래 땅 위가 될 것이었다.


"도약!"


"도약!"


도약을 짧고 절도 있게 복창함과 동시에 몸을 공중에 던져 올렸다. 고요했다. 공중을 향했던 부리와 머리가 지면을 향해 자연스럽게 기울어졌다. 그리고 시작된 자유낙하. 나를 당기는 중력이 편안하게 다가왔다. 점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공기의 벽과 깃털 하나하나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바람의 흐름이 느껴졌다. 완벽했다. 어느 때 보다 공기의 흐름이 세심하고 깊게 느껴졌다.


"레벨(수평비행)!"


희미하게 교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가장 중요한 순간에 도달한 것이다.  


"레벨(수평비행)!


'서두르지 말고!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마음을 가다듬고 수평비행을 위해 두 날개를 펼치려 할 때였다. 오른쪽 어깨에 극심한 통증이 왔다.


'투둑. 투둑! 툭!'


귓속에 무언가 뜯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크게 잘 못된 것이 분명했다.


"아!"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른쪽 날개였다. 왼쪽 날개는 완전히 펼쳐졌지만 오른쪽 날개는 아직 반만 펼쳐진 상태였다. 아무리 오른쪽 날개를 펼치려 해도 펼쳐지지 않았다. 그사이 지면과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대로 추락할 경우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위험한 속도였다. 그때 활짝 편 왼쪽 날개가 받는 양력 때문에 나는 오른쪽으로 빙그르 돌기 시작했다.


"아! 안돼..."


순간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오른쪽으로 나선으로 회전하며 뒹굴었던 비행 연습이. 양력 불균형! 날개의 양력이 부족한 오른쪽으로 걷잡을 수 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끝내 오른쪽 날개는 펼쳐지지 않았다. 마치 한대 두들겨 맞은 팽이가 돌듯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며 추락했다.


'아... 끝이야!...'


이걸로 끝이었다. 순간 아직 마지막 인사도 못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떠올랐다. 마지막 순간, 어찌할 수 없어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안녕.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제니...'


순간 머리가 땅에 부딪히는 충격이 느껴졌다.      


     


나는 죽었다.

그게 옳았다.

빛과 어둠, 그 날카로운 경계.

이미 아름다운 것들과 공존할 수 없는 것들의 아름다운 조화...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단다!'

어릴 때 할아버지가 했던 말이 섬광처럼 스쳤다.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영혼을 느낀다는 건. 그것도 아주 생생히!

이곳은 별까지 날아오른 새들 조차 상상할 수 없는 영혼의 세계가 분명했다.  


모든 빛을 압도하는 빛 위의 빛!

그 찬란의 빛 가운데로 나는 급격히 빨려 들었다.

더 정확히는 그 빛의 중심까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들었다.

영혼은 날개가 없이도 날 수 있다니!

그 깨달음의 순간, 신비한 빛이 폭발했다.  


아! 자유!

내가 꿈꾼 비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어진 진공 같은 고요...


그리고 나를 항해 저 멀리서 다가오는 빛!

그 빛은 내게로 점점 가까이 왔고 나는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아!'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기이하고 놀라운 광채! 나는 즉시 왼쪽 날개로 눈을 가렸다. 내 눈은 점점 그 빛에 조응되어갔고 날개를 조금 내려 바라본 그 기이한 빛의 중심에는 어떤 한 분이 서있었다.


'아... 설마...'


순간 그가 누구인지 직감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마지막 인도하는 분! 그분이 분명했다. 그분은 내게 손을 내밀었고 나는 왼쪽 날개를 뻗쳐 그의 손을 잡았다.


우린 또 다른 어둠을 지났고 다시 빛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은하수처럼 펼쳐진 찬란하고 푸른 고요!

마침내 내가 있어야 할 곳 - 아마도 어느 별 - 에 도착한 듯했다.


"존, 그것으로 훌륭했다."


마침내 그분이 입을 열어 말했다. 그분의 음성은 너무도 부드러웠다. 따스한 위로의 말이었다. 눈물이 났다. 고개를 돌려 그나마 조금은 남아 있었던, 그러나 이젠 수술의 흔적밖에 남지 않은 오른쪽 어깨를 보았다. 마치 영혼의 빈터 같은 공허만 남은 자리! 하지만 이제 이 빈자리는 나완 아무런 상관없었다. 거기엔 어떤 고동도 아픔도 슬픔도 없었다.


'그것으로 훌륭했다...'


보통의 새들에 비하면 짧은 삶이었다. 모든 걸 잃었었지만 그 보다 더 많은 걸 얻었었'존 - 신의 선물'이란 이름으로 살았던 모든 날들이 그저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렇지만...'


나는 잠시 멈추어 섰다. 안내자도 멈추어 섰다. 그리곤 나를 바라보았다.  


"저, 꼭 한 번만 날아 보고 싶어요. 꼭 한 번만요!"


안내자는 무릎을 낮추곤 내 머리에 손을 얹어 쓸어내렸다.  


"비행? 아직, 포기 못한 거니?"


"네... 아직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어요."


눈부신 빛으로 표정을 읽을 순 없지만 따스한 느낌이 감도는 안내자가 말했다.  


"음. 그렇구나. 그렇지만 어떤 새도 이곳에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 경우는 없었단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말의 뜻은 확고했다. 돌아갈 수 없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의 무슨 말인지 이해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어떤 아이와 약속을 했어요. 아니 정확히는 스스로 한 약속이에요. 그 아이가 하늘에 별이 되기 전까지 반드시 하늘을 날아 보이겠다고 약속했어요. 그 약속을 꼭 지키고 싶어요. 그 약속만 지키면 바로 돌아올게요."


"그 약속이 그렇게 소중하니? 돌아가면 새들의 천국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도?"


문득 제니의 말이 떠올랐다.


"네. 괜찮아요. 그리고 저는 아직 새가 아니에요."


"어째서 그렇지?"


"새는 날아야 하잖아요. 저는 아직 온전히 날지 못했어요. 그러니 아직 새가 아닌 거죠."


당황스러운 듯 안내자가 말했다.


"그래. 그렇긴 하구나."   


그렇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잠시 후 안내자가 다시 말했다.  


"자, 이걸 받으렴."


안내자는 그의 작은 형상처럼 반짝이는 황금 깃털 하나를 내게 건넸다.  문득 지난번 꿈이 생각났다. 꿈에서 보았던 분명 그 황금 깃털이었다.  


"이건 '꿈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이루어낸 새'에게 주는 상이란다."


"아. 제가 이걸 받을 자격이 되나요? 전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난 네가 꿈을 이룰 걸 안단다. 꿈을 이루는 건 실력이 아니라 의지니까."


"아..."


반짝이는 황금 깃털을 건네받고선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이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깃털은 본 적이 없었다. '황홀'이라는 단어가 그나마 가장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비슷한 표현이었다. 그 무게는 어찌나 또 가벼운지 먼지 한 톨 보다도 가벼웠다. 그런 깃털의 존재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자, 이제 돌아가거라."  


"네? 정말이요? 정말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나요?"


"이 황금 깃털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능력이 있단다. 네가 그것을 쓴다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지금껏 그렇게 황금 깃털을 쓴 새는 없었단다. 대부분 천국에서 더 좋은 것들을 구했지. 예를 들어 '3번째 천국'으로 데려다 달라는 것들이었지. 가장 높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말이야. 다시 세상이라... 허허. 이제 네가 처음이 되겠구나. 후회하지 않겠니?"


"네. 저는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반드시 '날 수 있는 새'가 되어 돌아올 거예요. 반드시요!"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마치 아주 오랫동안 그 대답을 준비해온 새처럼!   


'아! 얼마나 어리석은 소원인가? 가장 아름다운 천국 대신 다시 세상 속으로 라니! 다시 장애 입은 새라니! 날지 못하는 새라니! 넌 반드시 후회할 거야!'


신기했다. '다시 세상으로!' 소원을 말하려는 순간 '미혹의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그랬다. 다시 부딪히고 깨지고 또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할 땅 위의 삶! 그 고통스럽고 피곤한 삶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최악의 결정이었다.  


'아니, 후회하지 않겠어!'


그렇지만 아직, 아직은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지켜야 할 약속 말이다. 잠시 황금 깃털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나를 감싸는 빛은 여전했지만 안내자는 보이지 않았다. 안내자가 없이도 나를 감싸고 있는 빛은 황금 깃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다시 세상으로!"


나는 황금 깃털을 놓칠세라 두 손으로 꽉 잡고 마치 마법의 주문을 외듯 크게 외쳤다. 그건 안내자가 어떻게 황금 깃털을 사용해야 하는지 정확히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극히 본능적이었다. 그리고 거짓 없는 단 하나의 소원이었다.


"스스스..."


그때였다. 어디선가 옅은 바람이 일더니 황금 깃털이 스스로 떠 올랐다. 그리곤 빙그르르 돌더니 나를 감쌌고 황금 깃털과 나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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