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연 Jul 10. 2021

13장. 추락 <3/3>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마치 동화 같은 이상한 꿈이었다. 

한편으론 너무도 생생한 꿈이었다. 꿈을 깸과 동시에 어슴프레 눈을 떴다. 커튼이 반쯤 드리운 창으로 강렬한 빛이 들어왔다. 온몸이 마치 거대한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쑤셔왔다. 아직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해 그냥 이대로 잠시 있기로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며칠? 아님 몇 개월?'      


정확히는 알 수 없어도 꽤 오랫동안 잠든 것만은 분명했다.


"까딱."


왼쪽 날개 끝 깃털을 움직였다. 그 미세한 깃털의 떨림을 알아챈 기도 중이셨던 할머니, 꽃봉오리 진 화분을 창가에 내려놓고 계시던 할아버지 그리고 코를 자극하는 소독제 냄새와 익숙한 병실! 긴 여행 - 아마도 꿈일지 모르는 -을 마치고 돌아온 내가 처음 본 것 이들이었다. 그리고 황금 깃털. 황금 깃털이 생각났다.     


◇◇◇


"존!"


얼마 후 산티아고가 병실로 뛰어 들어왔다.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나는 그저 눈으로만 그를 바라볼 수 있었다.


"괜찮아 움직이지 않아도 돼. 지금은 움직이지 않는 게 좋아. 너의 온몸이 다 부서졌거든.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게 정말 기적이야."


"..."


산티아고에겐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런데 존. 너 왜 말하지... 아니야. 지금은 아무 생각 말자. 일단 한 동안은 이대로 푹 쉬면서 몸을 회복하도록 해. 가끔씩 얼굴 보러 올게. 아무튼 네가 다시 돌아와서 정말 기쁘다."


산티아고가 내게 무엇을 묻고자 했는지 알고 있었다. 오를 쪽 어깨에 통증이 왔을 때 왜 의료진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었을 거다. 무모하게 자유비행을 감행한 이유를. 잠시 후 안정을 취하라고 모두들 자리를 피해 주었다. 생각보다 덤덤하고 평안했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할아버지가 창가에 놓아둔 화분에 꽃을 보니 제니 생각이 났다. 아직 꽃 봉우 리진 곧 꽃 피울 것 같은 꽃.


'제니는 잘 있겠지?'


◇◇◇


마을에 큰 충격을 주었던  나의 추락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금방 잊혀 갔다. 군중들의 관심이란 그런 것이다. 쉽게 열광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것... 어쩌면 그래서 다행이었다.  


"존, 좀 살만하니?"


"응. 아주!"


한 날 산티아고가 신체 정밀 검사 결과를 들고 왔다. 사고 원인을 분석하기 위한 자료이기도 했다.


"오른쪽 어깨와 인공 날개를 연결하는 신경줄기 다발과 관련 근육이 완전히 터져버린 게 문제였어. 아마도 무리한 훈련과 피로 누적 때문이었겠지. 그래서 네가 오른 날개를 펼 수 없었던 거야. 그런데 담당의사 말로는 이미 신경다발이 절반 가까이 손상된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던데... 맙소사! 존, 어떻게 그 고통을 참아낸 거지?"


"비행을 꼭 해야 했거든."


"존, 넌 참...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내가 처음 내게 인공 날개 이식을 제안했을 땐 별 관심도 없더니. 이렇게 무모할 정도로 덤벼들 줄이야. 존. 정말 넌..."


"그러게 말이야. 그냥 미쳤다고 해두자. 비행학교 졸업식날의 너처럼 말이야! 하하."


"뭐? 하하. 그래 너나 나나 미치긴 단단히 미쳤지!"


그저 헛헛한 웃음으로 산티아고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산티아고에게 더욱 미안한 건 나의 추락으로 인공 날개 프로젝트가 잠정적으로 보류된 것이었다.)


"사고 직후 긴급 수술하면서 터져버린 신경다발과 근육을 다시 연결해 두었어. 회복하는데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래도 날개를 완전히 잃어버리진 않아 다행이야. 아. 다시 비행은.... 생각 좀 해보자. 네가 또 미친 듯이 달려들면 정말 곤란하니까."


"그래? 다행이네. 아직 날개가 내 몸에 붙어 있다는 건. 하하. 그건 그렇고 산티아고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나는 제니의 안부가 궁금했다.


"어린이 병동에 '제니'라는 아이가 있을 거야. 몸이 굳어가는 병을 가진 아이거든. 혹시 그 아이가 잘 있는지 좀 알려 줄래?"


"제니? 아. 알지. 그 아인 병원에서 유명해. 쪼그만 몸으로 어떻게 그렇게 버틴 건지... 그런데 걘 왜? 잘 아는 애니?"


"응. 조금. 생명의 은인이야."


"엥? 생명의 은인?"


"응. 그런 게 있어. 나중에 말해줄게. 지금은 좀 쉬고 싶어. 날씨가 너무 좋거든. 아무래도 곧 꽃이 필 거 같아. 빨간 꽃이..."


"별 싱거운... 그래. 좀 쉬어. 소식 알려 줄게."     


산티아고가 나가고도 한참 동안 꽃을 바라보았다. 저 빨간 꽃 봉오리는 제니를 닮았다.

한 번도 핀 적 없는, 그러나 이미 수없이 피고 진듯한 꽃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13장. 추락 <2/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