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연 Jul 10. 2021

14장. 세가지 질문

#위대한 비행 <존-날지 못하는 새>

"아. 놔! 내 몸은 내가 잘 안다고요!"


또 시작됐다! 

치료를 해야 하는 간호사와 의사보다 더 의사 같은 고집쟁이 환자의 실랑이! 그 주인공은 바로 얼마 전 우리 병실에 들어온 괴짜 아저씨, 빌리였다. 그는 한쪽 다리가 없었다. 무슨 연고인지 조금 궁금했지만 아직 왜냐고 묻지는 않았다. 누구에게나 아픈 사연이 있는 거니까. 숨기고 싶은, 어쩌면 영원히 모른 체하며 살고 싶은 사연들 말이다. 다만 한쪽 다리 전체가 없는 걸로 봐선 보면 무슨 큰 사고가 있었던 게 분명했다. 언젠가 내가 편해지면 자연스레 이야기해 줄 거라 생각했다.      


"헤이 존, 몸은 좀 좋아지고 있니?"


"네. 그런 거 같아요. 날개가 조금씩 근질근질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래? 그건 잘 낫고 있다는 증거지!"


한편 아저씨는 내 사연을 잘 알고 있다. 사실 내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단지 얼마나 빨리 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는지만 다를 뿐. 빌리 아저씨는 좀 괵팍스럽긴해도 마음은 따뜻했다. 또 그는 아주, 아주 가끔 진지했고 대부분은 아주 엉뚱한, 재미있는 분이었다. 난 아저씨가 상상과 현실 사이 어디쯤에 계신 게 아닌가 생각하곤 했다. 병실 침상에 턱 걸터앉으면서 빌리 아저씨가 날 불렀다.


"존."


"네?"


"호박벌이 나는 걸 본 적이 있지?"


아저씨는 뜬금없이 벌 이야기를 꺼내셨다. 일방적인 아저씨의 이야기에 대꾸하는 게 가끔은 귀찮기도 했지만 오늘은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그럼요. 당연하죠."


나는 아주 싱거운 이야기 거나, '풉!'하고 웃게 하는 '3초짜리 농담' 일거라고 확신했다.   


"그럼, 호박벌의 작고 가벼운 날개론 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니?"


"네? 그럴 리가요. 그럼 어떻게 날아요. 날 수 있으니까 날죠."


"하하. 그래. 그렇지 호박벌은 날지. 날 수 없는데 나는 거야. 신기하지."


"에이, 아저씨 또 농담이죠?"


"으응. 아니."


아저씨는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말을 이어가셨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호박벌을 한 번 유심히 보렴. 호박벌의 날개는 몸집에 비해 너무 작아. 작아도 너무 작지. 그리고 너무 가벼워. 그 작고 가벼운 날개로는 비행은커녕 자기 몸통을 들어 올릴 수도 없지. 넌 눈썰미가 좋으니까 단번에 눈치 첼수 있을 거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사실 그런 사소한 것에 관심이 많은 새들도 많지 않다. 이 특이한 아저씨가 아니라면 누가 벌 따위에 대해 관심을 가질까? 그래도 나는 추임새를 맞추어 주었다. 기왕 듣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오! 진짜 신기하네요."


내가 반응을 보이자 아저씨는 본격적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렇지? 그런데 더 놀라운 건 말이야. 호박벌은 매일 500여 꽃을 방문해 꿀을 따 돌아온다는 거야. 대략 하루 평균 200km를 날아다니는 셈이지. 대단하지 않니? 한 번에 모은 꿀은 무려 자기 체중의 절반이나 된단다. 정말 불가능한 일이야."


"흠... 200km라면... 우리 마을 끝과 끝을 몇 번, 아니 수십 번은 왕복할 거리인데..."


아저씨의 소설 같은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터무니없게 들리는 아저씨의 이야기가 정말 사실일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표정과 어투에서 지금이 '아주 가끔 진지한 그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그런데 우리 새들 중 아직까지 그 누구도 호박벌의 비행 비밀을 알아내지 못했단다. 으흥?”


아저씨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이야기보따리 입구를 다시 쥐어 잡았다.  


"음. 그럼 아저씨는 그 비밀을 아세요? 왠지 그런 느낌인데요?"


아저씨 익살스럽게 눈을 반쯤 찌푸렸다가 반대쪽 눈썹을 추켜올렸다.


"오호. 존, 역시 넌 눈치가 빠르구나! 그렇지만 그게 맨입으로 되겠니?"


"아이참. 그러지 말고 얼른 말씀해 보세요. 그 비밀이 뭔지. 어서요! 안 그럼 알죠?"

어떨 때 보면 아저씨는 마치 어린아이 같다. 그것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마치 순수한 아이 같은 모습. 마치 아직 '설 익은' 푸른 자두 같았다.


"아! 그건 안되지! 하하하. 그만! 그만!"


나는 아저씨의 허락 얻는 비밀을 알고 있다. 그건 바로 간지럼이었다. 아저씨가 간지럼을 심하게 탄다는 걸 알고 나선 나는 항상 승자였다. 가끔 몰래 다가가 겨드랑이를 간질이곤 했는데 정말 그는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그만! 그만! 하고 소리쳤다.  


"휴... 녀석. 일단 숨 좀 쉬고 보자."


아저씨가 뜸을 들이셨다. 늘 그런 식이 었다. 진실과 농담의 경계선! 문득 애초에 비밀 따윈 없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정말 쓸데없는 농담 따위였다면 날개 아래 겨드랑이를 사정없이 간지러 줄 참이었다.


"너무 시간 끌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안 그럼 알죠? 다시 갑니다!"


아저씨는 웃으며 날개를 휘휘 저었다. 잠시 후 간신히 진정된 듯한 아저씨가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너무 쉽게 얘기해 주는 것 같은데. 그 비밀은 바로..."


"네. 비밀은...?"


"날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없단 거지!"


"에이. 그게 뭐예요!"


아저씨의 사뭇 진지한 표정 때문에 이번엔 정말 그의 농담에 내가 당하고 있는지 아닌지 헛갈렸다. 아저씨는 좀 더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으흠. 존. 그건 아주 중요한 비밀이야. 암, 그렇고 말고. 호박벌이 만약 자기의 조그맣고 가벼운 날개와 공기역학 따위에 집중했다면 분명 날기를 포기했을 거야. 그 날개론 그저 개미나 들어 올릴 정도니까. 벌들은 똑똑한 친구들이야. 너도 그건 잘 알잖니? 그런데 말이야. 호박벌은 '어떤 날개를 가졌는가?'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 오직 '얼마나 더 날갯짓할 것인가?'만 생각했단다. 주어진 걸 탓하기보다 주어진 것으로 무엇을 할 것 인지에 무게를 둔 거지. '꿈의 무게는 변명의 무게보다 무겁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니? 호박벌들이 가진 꿈의 무게가 조금 가늠이 되니?" 

  

"음. 그렇군요. 꿈의 무게라... 글세요. 그런 보이지 않은 것들의 무게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걸요..."


아저씨가 말했다.


"그래. 그럴 거야.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에도 무게는 있단다. 우리가 지저귀는 노랫소리에도 무게가 있고. 우리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존재하는 모든 것 에는 무게가 있는 법이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무게..."


"아이코. 너무 멀리 갔구나. 아무튼 다시 호박벌로 돌아와서 말이야. 날 수 없는 것이 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간절한 꿈을 추구하는 마음'이란다. 우리 몸은 마음이 하는 일을 한단다. 마음에 달린 거야. 오로지 마음먹기에."  


"음..."


아저씨는 어디서 도대체 저런 것들을 배웠을까? 마치 자연의 이치를 모두 꿰뚫고 계신 듯했다.


◇◇◇


"아, 아저씨 그런데 궁금한 게 하나 있어요."


문득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아직 확신할 수 없는 그 문제가 떠올랐다. 어쩌면 아저씨라면 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또 뭐가 그리 궁금할까?"


"예전에요. 나비가 제 부리에 날아 앉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날은 바람이 전혀 없었어요. 정말 무풍의 고요한 날이 었거든요. 그런데 나비는 잘 날았어요. 너무도 신기했죠."


"음. 예리한 질문이구나."


과연 아저씨가 이런 것에 대한 답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건 나비가 바람을 만들었기 때문이지. 스스로 바람을 만든 거야.”


"바람을 만든다고요?"


"그럼. 그럼. 그래서 바람이 전혀 없는 날에도 비행 가능한 거지. 바람을 만드니까."


문득 날개가 없어 날개를 만들어 버린 세상에서 가장 느린 새 - 인간 - 이야기가 생각났다.


'날개가 없으면, 날개를 만들고. 바람이 없으면 바람을 만든다...'


◇◇◇


“아저씨 하나만 더 물어봐도 되나요?”


“음. 오늘따라 질문이 많은 걸? 평소엔 듣기만 하던 네가 말이야!”


"그러게요. 하하. 조금 개인적인 건데 그래도 괜찮나요?"


"훗. 무서워지는 걸. 어디 해보렴"


"가끔 늦은 밤 몰래 병실을 나가시잖아요. 어딜 다녀오시는 거예요?"


"엥? 알고 있었니?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나간다고 했건만..."


"어떤 밤엔 잠이 잘 안 오거든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아저씨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내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음... 존, 그건 진짜 비밀인데.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말해주마."


"네. 그럴게요. 걱정 마세요. 원하시면 입에 붕대라도 다시 감겠어요. 하하."


"병실에만 있으니 답답해서 잠시 비행하러 나가는 거란다."


"비행이요? 그런데 아저씨는 한쪽 다리가..."


아저씨는 한쪽 다리가 완전히 없었다. 그런 아저씨가 비행을, 그것도 어두운 한 밤에 비행을 한다는 게 놀랍고 신기했다.


"놀랐니? 외다리가 비행을 한다니?"


"네. 조금... 조금은요."


"저쪽 언덕 너머에 절벽이 있는 건 알고 있니?"


"네. 그럼요.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절벽이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어요."


"비행을 하고플 땐 절벽에 선단다."


"절벽에요?"


"나처럼 나이 든 새가 한쪽 다리로 날아오르기 위해 땅 위에서 도약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야. 그래서 궁리 끝에 방법을 생각해냈지. 절벽에 서는 거야. 절벽에선 다리가 없어도 비행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비행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만 있으면 말이야."


"아! 제가 도약대에서 점프한 것과 같은 원리군요. 그럼 착지는요?"


"착지는 문제가 아니야. 튼튼한 두 날개로 바람을 가두면 되니까."


"와! 정말이지 절벽을 잘 생각해내셨네요!"


"자, 이제 보이니? 숨겨져 있던 놀라운 비밀들이! 길은 늘 있단다.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


어느새 창가로 노을이 고개를 드리웠다. 저 높이 한 무리의 새들이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봄이 찾아온 북쪽으로 날아가는 가는 새들이었다. 우리 같이 평생 한 마을에만 사는 새들에겐 참 신기한 일이다. 어떻게 수만리 남쪽을 찾아갈 수 있는지. 또 돌아올 그 길을 기억하는지. 그들도 불가능을 잊어버린 걸까...        


'꿈을 이루는 건 실력이 아니라 의지란다...'


그 꿈, 황금 깃털이 생각났다. 아저씨의 호박벌 이야기는 마치 '눈부신 광채를 뿜는' 안내자의 말을 듣는 듯했다. 생각해보니 안내자의 말투가 아저씨의 그것과 엇비슷했던 것 같기도 했다.   

작가의 이전글 13장. 추락 <3/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