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거인에게 묻다. 듣다
1부. 성장통 - 카자흐스탄 편.
<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다. - 니체 - >
3장. 거인에게 묻다. 듣다. (2/6)
낭만을 치는 유목인
카자흐스탄의 원주민, 카자흐인들은 원래 유목민들이었다. 고대 튀르크어로 ‘Qaz’는 ‘방랑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그것이 지금 카자흐인과 카자흐스탄의 어원이 됐다고 추정한다. 카자흐인은 문자 그대로 ‘방랑하는 유목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카자흐 민족의 성격은 마치 길들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말과 같다.
이 곳 심켄트도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넓디넓은 푸른 초원에 양과 소를 치는 목동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초원 위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유르트 Yurt’ 또는 ’ 유르타 Yurta’라고 부르는 둥글게 천으로 둘러친 목동들의 거주지를 보면 왠지 자유로움과 여유가 느껴진다. 유르트는 ‘고향’이라는 뜻을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가시적 고향’은 이제 도시 밖으로 밀려났다. 한때는 말이 달리는 속도만큼 빠르게 이 초원을 정복했던 기마 유목민들의 기질은 이젠 잠재적 DNA로 만 존재한다.
한날 도시를 벗어나 교외를 달리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 그 풍경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달려가고 달려가도 그 끝을 보지 못할 대평원. 지평선 그 끝까지 닿은 초원에 외로이 서 있는 한 그루 나무. 그리고 곁을 맴도는 고삐도 없는 몇 마리의 말들... 눈도 마음도 시원해졌다. 청명한 하늘과 유유히 흐르는 구름 그리고 자유로이 나는 새들, 국기의 하늘색 바탕과 태양을 등지고 있는 하늘 수리 그 느낌 그대로의 나라다.
이런 자연을 늘 마주해서일까?
카자흐 사람 중에는 안경을 쓴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한국 사람들은 안경을 많이 쓰던데 혹시, 선천적으로 눈이 안 좋은가요?”
뜬금없는 질문했던 한 학생이 있었다. 드라마나 인터넷 영상으로 보았던 연예인이나, 한국인은 대부분 안경을 썼다고 의아해했었다. 그런데 그게 왠지 이지적으로 보여 조금 멋있기도 하다고... 조금은 웃기고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어떻게 또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질문이었다.
‘보쌈’이 웬 말?
에이 설마, 아직도 보쌈이 있다고요?
초원. 노매드. 이런 낭만적인 이미지들 뒤에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다. 고대 유목민들은 신부가 부족할 경우 다른 부족의 여자를 납치해 와서 결혼하는 풍습, ‘신부 보쌈’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보쌈을 이슬람 문화권의 특징적 관습이라고 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농경사회를 살아온 우리에겐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 그 일부였다. 당시에는 유목민들에게 초지의 확보가 곧 생존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쟁탈하기 위한 그야말로 피 튀기는 전쟁은 일상이었다.
잦은 전쟁으로 남성 전사들이 늘 부족했던 탓에 타 부족의 여자를 납치해서 그들을 통해서라도 후손, 특히 전사가 될 남자의 수를 늘리기 원했다. 그런 이유로 생긴 ‘신부 보쌈’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우리도 조선시대에 ‘과부 보쌈’이란 풍습이 있었는데, 여자를 업어 오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각각 배경과 목적이 다른 풍습이다.
그런데 그 유목민 후예들의 나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는 아직 보쌈 풍습이 남아 있다. 요즘은 아주 드물지만 다수의 남성이 여성을 납치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현대판 ‘신부 보쌈’이다. 보통 신랑, 신부 양가 부모들이나 결혼 당사자들이 결혼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보쌈 공모자’들의 ‘사전 합의’하에 이루어진다. 간혹 마음에 드는 여자를 무조건 납치하고 보는 문제의 ‘막무가내 보쌈’도 있다.
설마 그럴까 싶었는데, 실제로 우리 여직원이 매장까지 들어온 다수의 남성에 의해 눈앞에서 당하는 ‘대낮 보쌈’을 목격하고 나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보쌈의 문제점과 처벌을 강조했는데, 그것이 보쌈 풍습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방증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