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별을 따라가라 1부. 3장(5/6)

3장. 거인에게 묻다. 듣다

by 청연
1부. 성장통 - 카자흐스탄 편.
<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다. - 니체 - >

2장. 거인에게 묻다. 듣다. (5/6)


'세속적' 이슬람 국가?


생소한 이름 - 세속적 이슬람

카자흐스탄은 '세속적' 이슬람 국가다. 정치와 종교 분리 원칙에 따라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진 않았지만, 이슬람교 신봉자인 모슬렘이 다수인 세속 국가라는 뜻이다. 즉, 이슬람이 '문화의 중심'이다. 러시아 정교도 영향력은 있지만 이슬람에 견줄 바는 아니다. 다만 이슬람이 주류이긴 하지만 이들을 극우 이슬람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앞서 이들에게 누흐의 방주 설화를 언급했는데, 카자흐인들에게는 그들 고유의 창조주 '텡그리 Tengri'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극우 이슬람으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많은 학자들이 입을 모았다.


우리 조상들이 섬기던, 우리의 종교는 뭐였지?


제정 러시아와 구소련 피지배 시기를 거치면서 러시아 정교와 '무신론의 원칙-사회 공산주의 기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종교는 제한적이었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다. 1991년 독립 이후에야 잊어버린 원래 그들의 신앙을 찾아 회귀하려 노력했는데, 그것이 기원후 7세기경 즈음 이 땅에 흥행했던 이슬람이다. 또한 그것은 신앙의 정체성을 찾는 동시에 다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할 최선의 방책이었다.


지금은 인구의 약 70%가 수니파 이슬람, 뒤이어 러시아 정교회 약 25%, 그리고 소수의 개신교와 유대교가 공존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는 120여 종족(어떤 자료에는 140여 종족) 이상이 모여 사는데, 모든 종족이 '하나의 신 One God'을 신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다.


'세속'은 '타락한'의미로서의 세속이 아니다.


사실 나는 처음 '세속'이란 단어를 접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는데 조금 혼란이 있었다. 그 단어는 마치 ‘신자들의 신앙 수준이 낮다’라고 오해할 만한 어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뜻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더니, 본뜻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국가가 특정 종교를 국교로 지정하지 않고 중립을 유지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세속이란 단어를 신앙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생각한 것은 명백한 오류였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도 세속 국가다. 대한민국 역시 헌법 제20조에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니.


삼겹살 있다? 없다?

이슬람이 주류인 사회다 보니, 사회적인 식문화의 기준은 '할랄 Halal-허락된 것'과 '하람 Haram-허락되지 않은 것'을 따르고 있다. 무엇보다 한식당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겐 이들이 부정하게 생각하는 '하람'이 가장 관심사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돼지고기였다. 이슬람 경전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모슬렘은 하람인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돼지를 기르거나 만지는 것조차도 부정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 세계에 산다는 건 돼지고기는 포기하고 살아야 할 숙명이다. 돼지고기를 메인 요리 재료로 하는 우리에게는 가장 안타깝고 아쉬운 사실이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은 다른 이슬람 국가 같지 않고 좀 달랐다. 러시아인과 고려인같이 주로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인구의 1/4 가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할랄이 아닌 일반적인 식문화도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이 땅에 살며 또 한식당을 준비하는 우리에겐 아주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사실 러시아인도 한국인 못지않은 돼지고기 마니아다. 특히 그들이 국민 술 보드카와 함께 즐기는 ‘쌀라 Cало (숙성 돼지비계)’를 한 번 맛보면, 한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을 능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 덕에 카자흐스탄에서는 제법 쉽게 돼지고기를 구할 수 있는데, 단지 동네 마트나 작은 규모의 시장에서는 찾을 수 없다. 보통 규모가 큰 재래시장의 한구석에 꼭꼭 숨겨져 있다.

마치 보물처럼!


저기, 오늘 보물찾기 하러 갈까?




Сало(Salo) 쌀로 : 숙성 돼지 지방

Сало(Salo) 쌀로 / 사진 출처 : Juozas Rimas at English Wikipedia / Public domain

우크라이나 기원으로 알려진 이 고열량 소금(또는 훈연) 숙성 돼지 지방은 동유럽 및 러시아, 중앙아시아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평소에도 먹지만, 추운 영하의 날씨에 겨울철 비상식량으로 집집마다 비축하기도 한다.


조금 느끼해서 한국인의 식성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러시아나 중앙아시아를 방문하게 되면 문화 체험으로 한 번은 맛볼 만하다.






[생생 에피소드]


삼겹살? 그 엄청난 비주얼에 놀라지나 마!

아내와 둘이서 처음 삼겹살을 찾으러 재래시장에 갔을 때 이야기다. 아직 현지어라고는 인사밖에 할 줄 모를 때였지만, 대부분 눈으로 보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 말을 몰라도 시장을 보는 것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정육점 통로로 들어서니 말고기, 소고기, 양고기는 종류별로 즐비한데 역시 돼지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통로의 끝 모퉁이 다다르자 러시아인들이 고기를 팔고 있는, 반지르르하고 '미 홍색'이 감도는 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판매대에 올려진 고기의 종류는 살코기 또는 뼈가 붙어있는 살코기 딱 두 종류였는데, 고기의 이름도 부위 표시도 없었다. 부위별로 잘 정리, 표시되어있는 우리네 정육점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모양새로 봐서는 돼지고기인 것 같은데 혹시 다른 고기일지도 모르니 확인이 필요했다.


매대 앞에선 아내는 주저 없이 오른손 검지를 코에 대고선 위로 들어 올려 돼지코를 만들고 돼지 소리를 냈다.

"꿀! 꿀?"

그 모습을 본 러시아 상인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손뼉을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리곤 손으로 ‘오케이’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며 우리가 원하는 답을 주었다.

"다, 다! 에따 스비니나 (네, 네 돼지고기예요)!"

돼지고기 정육점을 제대로 찾긴 했는데, 문제는 우리가 찾는 삼겹살은 매대 위에 보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에겐 삼겹살이 꼭 필요했기에 그냥 돌아 설 수가 없었다.


"음... 삼겹살은 안 보이는데 어쩌지?"

"잠깐만 기다려봐요."

아내는 다시 상인에게 손가락으로 자기 배를 콕콕 찔러 보여줬다.

"삼겹살요. 아... 요기요, 요기!"

한국어를 알아들을 리 없는 상인은 잠깐 생각하더니, 오른손 검지를 치켜세우면서 잠깐만 기다리라는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는 매대 아래에서 삼겹살을 꺼내 올렸다.

"브류쉬나 брюшина свиная(삼겹살)?"

"오! Yes!"


아내의 재치 있는 보디랭귀지 덕에 삼겹살은 잘 찾았는데, 다만 그 삼겹살을 보니 절로 탄성이 나왔다.

가로세로 30cm, 50cm쯤 되어 보이는 생삼겹살 한 덩어리!

그야말로 원판이었다.

껍질 부분까지 붙어있는데, 심지어는 유두들 까지 이 열 종대로 질서 정연하게 붙어있었다....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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