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광야에서 쓴 편지

#요르단 와디럼 광야에서 오랜 벗에게 쓰는 편지

by 청연

이른 새벽,

낮은 꽃 풀에 맺힌 한 방울 이슬이 얼마나 반가운지

밤새 독을 품었던 독사도 기쁨으로 이슬을 핥는구나

바위틈 터진 샘물은 어찌 은혜가 아니랴

셋째 날 마른땅에 첫 비가 내릴 때 그러했으리

은혜라 했으리 하늘로부터 복이라 했으리

여러 날 뙤약볕 수고로이 판 우물

저 깊은 바닥에 한 가닥 물이 스밀 때

지친 삽을 내려놓고 굳은살 두터이 백힌 두 손

하늘로 치 들었다네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외쳤다네


저 멀리 먼지 한 톨 일어나

이제 오랜 날 못 뵌 손님이 온다네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어찌 반갑지 아니한가

맨발로 뛰어 나가 맞이했다네

뜨거운 모래조차 즐거이 밟았다네

손님이 온다네

생명이 온다네

기쁨이 온다네


잠시 머물러 떠나는 나그네 허리춤에

떡 한 덩이 물 한 부대 채워주는

마음이 어찌나 아린지

잘 가시게 안녕히 잘 가시게

또 봄세만은 언제 될지 모르니

그때까지 그날까지 잘 가시게


밤 어귀 노을이 태워버린 모래언덕에

달 빛이 영글면 길잡이 별들이 빛을 보태면

무형無形의 아름다움이 가득하네

홀로이 모래언덕에 앉았으나 도무지 외롭지 않음은

참 위로가 아니던가

찬바람이 가슴을 데우는 역설이 아니던가


벗이여

오랜 벗이여

심령이 가난하라 하였네

심령이 가난하라 하였네

그리하여 천국을 소유하라 하였네

그 외침이 온 광야에 아직도 천둥처럼 울리네


벗이여

오랜 벗이여

오늘 텅 빈 광야에서 가득 채워진 천국을 보네

오! 이 무지無知의 곳에서 이 무용無用의 곳에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천국이

마침내 가난해진 심령에 천국이 임하네

한 없이 은혜롭고

형용할 길 없이 아름다운

천국이 말일세



옛 광야에 살 듯 오늘을 살아간다면

누림이 감사하고

내게 오가는 사람이 반갑고

삶의 구석구석, 모든 모퉁이에서 조차

감사가 터져 나는

좀 더 아름다운

나와 우리의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