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 sarà, che sarà, che sarà
Che sarà della mia vita chi lo sa?
So far tutto o forse niente
Da domani si vedrà
E sarà, sarà quel che sarà!
무엇이 될까? 무엇이 될까?
내 인생이 무엇이 될지 어찌 알겠는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겠지? 아님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곧 알게 되겠지
무엇이든 될 테니까! 무엇이든 말이야!
- Che Sarà / 칸초네 케 사라 가사 중 -
몇 년 전부터 늦가을만 되면 불쑥 가슴을 두드리는 노래가 있다.
'케 사라 Che Sarà'
짖은 선글라스를 쓰고 마음을 쏟아내듯 불러내는 호세 펠시아노의 노래.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까?
고향을 떠나고 말았던 나의 이야기가 묻어 있어서 그랬을까?
케 사라 첫 노래 말처럼 잠든 노인처럼 밀려온 허무함과 지루함이 정든 고향으로부터 떠나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왜 이민을 택했는가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답이 아니었나 싶다.
이민? 왜?라는 질문에 그간 '꿈'이 있었다고 말하곤 했었는데
허무함과 지루함!
이 두 단어만큼 힘들게 하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훌쩍 우린 떠났다.
계획대로 안돼도 무엇이든 되겠지!
무엇이 될진 모르지만, 무엇이든 될 거야! 그러니 걱정 말자!
우린 늘 그렇게 노래하듯 말했다.
첫 카자흐스탄 이민 때도, 두 번째 케냐로의 이민 때도
마침내 조지아로의 이민 때도!
우리는 늘 그렇게 노래하듯 말했다.
노래 전반에 케 사라! 케 사라! 하고 흐르는 가사처럼 말이다.
괜찮아! 괜찮아! 케 사라! 케 사라!
괜찮아! 괜찮아! 무엇이든! 무엇이든!
무엇이든 그 무엇이든 말이야.
새로운 그 무엇이든!
9년이 지나 다시 카자흐스탄!
그리고 다시 케 사라! 케 사라!
그리고 다시 괜찮아! 괜찮아! 무엇이든 될 테니!
이곳에선 가끔 기타를 켠다.
어느새 옛 고향이 어깨에 기대에 잠든다
어느새 굴뚝 냄새 온 동네 가득한 코흘리개로 돌아간다.
다시 부른다.
케 사라! 케 사라!
수 천 번을 불러도 아름다울
오늘 그리고 내일을!
José Feliciano - Che sarà
'칸초네 Canzone'는 한국말로 '노래'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샹송 Chanson'은 프랑스어로 '노래'라는 뜻이다.
그냥 노래.
어쩌면 그래서 더 아름답게 들렸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