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다. - 니체 -
2장. '중앙아시아의 거인' 카자흐스탄을 만나다
- 눈치는 필수, 너도 손뼉 쳐!
- 우리는 심켄트 Shymkent로 간다
- '터프 Turf'한 도시 심켄트
- '발품'이 만드는 '명품'
- '다바이'가 절반?
구름이 적고 맑은 날이라 저 아래로 보이는 세상 풍경이 참 다이내믹했다. 얼마 전까지는 사막지대 상공을 비행했는데 어느새 장엄한 설산 산맥이 펼쳐졌다.
와, 저 산들 좀 봐! 정말 멋지다.
<천산(Tian Shan) 산맥>
* 천산은 ‘톈산- Tian shan ; the Mountains of Heaven’의 한글 표기
그 풍경은 담기엔 너무도 비좁은 비행기 창 너머로 웅장한, 그러나 사람에게 쉬이 그 품을 내줄 것 같지 않은 백발같이 눈 덮인 천산산맥이 마침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저 산맥이 휘감은 어느 자락에 우리의 목적지 카자흐스탄이 있을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 웅장한 산맥이 천산산맥 인지도 몰랐다. 세계지리에 무지했거니와 그곳의 풍경 따위에 관심을 가지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오로지 이민과 사업이라는 단어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내 머릿속에 둘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카자흐스탄에 도착해서 비행 중 보았던 웅장한 산맥에 대해 이야기하다 싸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천산' 이야기 만으로도 한 시간은 족히 나누었던 것 같다.
설산 풍경에 취해 있는 사이 도착 안내 기내 방송이 나왔다. 카자흐어와 러시아어로 안내되는 장황한 기내 방송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쏼라 쏼라~." 마지막에는 영어로도 안내해 주었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아주 짧고 간단했다. 곧 카자흐스탄 알마티 Almaty 국제공항에 착륙하니 자리에 앉아 벨트를 착용하라는 정도였다. 이것 만으로도 이곳에서 국제 언어 '영어'의 존재감은 극히 낮다는 걸 눈치채기기에 충분했다.
마치 '외계어' 같은 이 언어들 속에서 살아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마 한동안은 답답하고 힘들 것이다. 착륙 안내 방송은 어쩌면 이제 전혀 경험이 없던 새로운 땅에 발을 붙일 우리에게 주는 일종의 노란색 'Warning'과 같았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이제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고 살아가야 할 우리 험난한 운명의 복선 같은... 그러나 그때는 들뜬 마음에 그저 신기하고 마냥 즐겁기만 했던...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는데 ‘우~후’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급강하했다. 산악 지역이라 그런지 바람이 세게 불어 기체도 많이 흔들렸다. 직업병이랄까? 기상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기장이 착륙을 잘할 수 있을지 괜히 걱정됐다. 활주로에 바퀴가 닿기 직전까지 비행기 기수를 틀고 속도를 늦추지 않는 걸 보니 조종사가 진땀 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착륙 속도가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었는데 비행기는 거친 바람을 거스르며 그대로 착지했다. 모르면 몰라도 때로는 조금 아는 것이 더 불안하게 하는 법이다.
‘휴~. 다행이다.’
다행히 무사히 착륙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조금 전까지 아주 조용했던 승객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 휘슬을 크게 불기도 했는데, 순식간에 마치 축제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이건 뭐지?’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왠지 나도 같이 박수를 쳐야 할 것 같았다. 어색하게 남들을 따라 손뼉을 치며 주위를 둘러봐도 별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조종사에게 고생했다고 손뼉 쳐 주는 건가?’
아무래도 무사히 착륙했다는 것을 자축하는 일종의 관습 같아 보였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졌다. 항공기에 문제가 있어 비상착륙에 성공한 것도 아닌데 그저 안전하게 착륙했다고 박수를 치다니! 옆에 앉아있던 아내도 박수를 쳤는데 어리둥절해하면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한번 들썩거렸다. 이것이 우리가 처음 카자흐스탄 땅을 밟으면서 느꼈던 ‘다름’ 곧 문화 차이 또 약간의 문화충격이었다.
“아이들이 자고 있고, 짐이 많으니 마지막에 내리자.”
우리는 챙겨 온 짐이 많았다. 끝까지 아쉬움에 하나라도 더 챙겨가려고, 가방에 꾹꾹 눌러 넣은 옷들과 무거운 책들까지... 그런데 문제는 출발 전 짐을 쌀 때는 어린아이들을 업고, 안고 짐을 챙겨야 한다는 걸 간과했다. 양손에 가득한 짐과 장시간 비행에 장시간 비행에 지친 아이들을 둘러업으니,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도 땀이 흘렀다.
‘아... 다음에는 반드시 짐을 가볍게 싸리... 책은 빼 두고 올걸...’
그렇게 첫 번째 교훈을 얻었다. 짐은 가벼울수록 좋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함께하라면...
비행기를 거의 마지막으로 이탈해 겉으론 괜찮은 듯 속으론 낑낑거리며 종종걸음으로 입국 심사대로 향했다. 심사를 위해 입국 카드를 작성해야 했는데, 싸샤를 통해 미리 받아 크게 프린트해 온 러시아어로 된 현지 주소를 맞는 건지 틀린 건지도 모른 채 그림 그리듯 써서 칸을 채웠다. 아직 채 식지 않은 체온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5명분의 카드를 그리듯 작성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같은 비행기로 왔던 다른 승객들은 대부분 여권심사를 통과했고 몇 명만 마지막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미성년 자녀들은 부모 중 한 명과 함께 동반인으로 적으면 되는데 그걸 몰라서 개인별로 다 적었다가 다시 작성해야 했다.)
입국심사에서는 심사관의 영어 실력이 신통치 않아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에는 러시아어로 물어봤었는데, 우리가 전혀 못 알아듣자 서툰 영어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무엇보다 돌아갈 비행 편 항공권이 없다는 게 시빗거리가 되었다. 다행히 어린아이들이 품에 안기고 등에 업혀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고서는 더 묻지 않고 통과시켜줬다. 혹시나 불이익을 당할까 봐 바짝 졸아서 두근거렸던 마음을 쓸어내리면서 자리를 얼른 떠나 수화물을 찾으러 빠져나갔다. 역시나 수화물 컨베이어에는 우리 짐만 외로이 뱅뱅 돌고 있었다.
여권 심사관들이 왜 영어를 잘 못하지?
짐 가방을 찾으면서 생각해보니, 국제공항에서 영가가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게 좀 의아했다. 일전에 싸샤가 카자흐스탄도 구소련 연방국의 일원으로 긴 냉전 시대를 지나면서 미국이나 영국 같은 영어권 국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는 영어는 금기시했고 사실 쓸 필요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현지어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었는데 사실 그땐 그런가 보다 했었다. 하지만 현대의 국제공항에서조차 영어가 잘 통하지 않을 줄을 생각은 못 했다. 이제 공항을 벗어나 현지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일상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거대한 이민 가방을 끌고 우리가 도착하기만을 목 빼고 기다리고 있을 싸샤를 만나러 출구로 나섰다.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의 고려인, 싸샤가 우리의 도착을 열렬히 환영해 주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카자흐스탄의 옛 수도 알마티인데 여기는 우리 여정의 중간 목적지였다. 우리가 정착하고 사업을 시작할 곳은 ‘심켄트 Shymkent’였다. 심켄트는 카자흐스탄의 가장 남쪽 끝자락에 우즈베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인데 싸샤가 태어나 자란 곳이자 그의 사업 성공 배경이 된 도시였다. 그것이 우리가 잘 알려지지 않은 카자흐스탄의 지방 도시에서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였다.
우리는 알마티에서 현지 시장조사차 며칠 머무를 예정이다. 비록 첫 매장을 지방 도시에서 시작하지만 언젠가 사세를 확장해서 이곳 알마티까지 사업을 펼쳐보고자 하는 야심 찬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Қазақстан – Еуразияның жүрегі!
여기, 유라시아의 심장 - 카자흐스탄에서!
< 카자흐스탄 무비자 방문 비자 규정>
(2020.1.11. 기준)
*체류 가능 기간: 1회 - 30일 이내(매회), 이후
매 180일 내 최대 90일까지
*[중요] 무비자 방문 입국 사실 신고제도
- 기간 : 입국 기준 3일 이내
(2일 이내 경유 시 불필요)
- 방법 : 숙박시설 대리신고, 이민국 방문 서
면신고 등
*주의 : 무비자 방문 법률 개정이 잦은 편이므로 방문 전 반드시 외교부나 카자흐스탄 대사관을 통해 최신 규정을 확인해야 한다.
카자흐스탄은 '트리플 엑스 라지(XXX Large)' 사이즈!
알마티에서 심켄트까지는 기차로 이동했다. 국내선 항공편도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기차 여행을 택했다. 일단 들고 온 짐도 너무 많았고 빨리 목적지로 가는 것도 좋지만, 이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곳이니 기왕이면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은 것을 느껴보고 싶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을 관통하는, 초원과 황야를 달리는 기차!
왠지 낭만이 더해질 것 같은 기차여행이 기대됐다. 해박한 지식인 싸샤는 새로운 것을 접할 때마다 이런저런 설명을 많이 해주었는데, 이번에 우리가 타고 갈 기차가 달리는 길은 중국과 시베리아까지 잇는 옛 실크로드를 따라 이어지는 길이라며 여러 이야기를 보탰다. 사실 세계사 문외한이었던 나는 관련 지식도 별 관심도 없던 터라 모든 관심은 오직 눈 호강에 집중됐다.
"그런데, 알마티에서 심켄트까지 기차로 몇 시간 걸리죠?"
"아, 얼마 안 걸려. 한 14시간 정도."
"네?"
14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그의 말에 머리가 '띵'해졌다. 무려 14시간!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긴 했다. 현재 수도인 북쪽 끝 아스타나까지는 20시간 거리라니... 국토 면적이 작고 대중교통이 잘 발달한 대한민국을 누리고 사는 한국인에겐 참 익숙하지 않은 시간이다. 하기야 여기는 그야말로 ‘사이즈’가 다르다. 카자흐스탄은 남한보다 27배 넓은 면적의 세계 9위 영토 대국, 트리플 라지 사이즈다!
카자흐스탄에서 '얼마 안 걸려'라는 말은 '생각보다 더 걸려'라고 번역해서 들어야 한다.
때 밀어주는 기차역?
알마티 기차역에 도착하니 역시 주요 대중교통이라 그런지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차역 입구에는 'Казақстан темір жолы - 카자흐스탄 철도'라고 카자흐어로 크게 쓰여 있었다. '카자흐스탄 때미르 졸'이라고 읽는데 마치 '카자흐스탄 때 밀어줘!'처럼 들려 살짝 웃음이 났다.
심켄트행 빛바랜 하늘색 낡은 기차. 어디서 많이 본 색깔이다 싶었는데 카자흐스탄 국기 바탕색이랑 똑같았다. 구소련 시절부터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운행하고 있는 클래식한 기차였다.
"즈드라스트부이쩨Здравствуйте - 안녕하세요?"
항공 조종사 유니폼 비슷한 제복 차림을 한 우리 열차 칸 차장이 먼저 환영 인사를 건넸다. 몇 번을 들어도 어색한 영어와는 확연히 다르게 혀가 '똘똘' 굴러가는 느낌의 러시아어 인사다. 아직은 그 인사가 입에 익지 않아 어색해서 살짝 웃으며 화답하고 차장에게 기차표를 건넸다.
"여권도 주세요!"
여권? 기차표를 구매할 때 여권이 필요했는데 타는 대도 여권이 필요했다.
여권은 누구에게든 함부로 보여주거나 넘겨주지 않도록 해. 그게 경찰일지라도!
싸샤가 어느 누구에게든 함부로 여권을 보여주거나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기억이나 뒤 쪽에 서있는 싸샤를 쳐다보았다. 특별한 조언이 없는 걸로 봐선 괜찮다는 의미 같았다. 아무래도 육로로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신원 확인 절차가 까다로웠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고 기차표와 여권을 대조, 확인했는데 받침이 어려운 내 이름만 유독 이상하게 불렀다.
"수... 순기르 부?"
허... 전혀 다른 발음으로 이름을 부르는데 살짝 당황스러웠다. 옆에 서 있던 아내는 웃으면서 좀 전의 상황을 상기시키듯 "순기르 부!" 하고 차장을 따라 했다. (기차표를 예매할 때 영문 이름 외에도 러시아어로 표기된 이름이 필요했는데, 그때 'Woo'라는 내 성을 들은 매표소 직원이 러시아어로 'Воо'라고 표기한 탓이었다. 한국 '성'이 너무 짧은 탓에 두 번이나 물어보고선 당황스러운지 살짝 웃으면서 들리는 대로 그렇게 적었다.)
그 이후로도 'o - 이응' 받침이 들어간 내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주는 현지인이나 외국인은 아주 드물었다. 이제야 해외 교포들이나 일부 한국인들이 외국식 이름을 짓는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보수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탓에 그런 외국식 이름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조금의 좋지 않은 쪽으로 편견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역시 세상에는 직접 겪어봐야 이해되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처음으로 나도 국제적으로 쉽게 통용될 만한 이름을 따로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봤다. 기왕이면 아주 근사한 이름으로!
우리는 '쿠페 Coupe'라고 부르는 별도의 객실 문이 달린 4명 정원의 이등석 칸을 예약했다. 기차에서 1박을 하게 되는 셈인데 다행히 침대칸이라 그리 불편할 것 같진 않았다. 일단 편히 발 뻗고 잠을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잠시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차장이 인원수에 맞게 베개, 침대보 그리고 담요를 가져다주고서는 내릴 때 반납하라고 했다. 제복 입은 사람이 가져다주니 마치 군에서 보급품을 지급받는 기분이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과 밤샘 기차 여행.
이제 이곳에서 마주치고 겪게 될 모든 일은 '생애 처음'이란 수식어가 붙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고 또 기대됐다.
우리의 낭만은 내일을 이야기하는 것
기차 출발 후 어수선한 분위기가 정리되자 우리와 편하게 대면해서 대화하기를 학수고대했던 싸샤와의 회의가 시작됐다. 그는 여러 일들을 보따리 풀듯 하나둘씩 풀어냈다. 그동안 사업 준비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발품을 팔고 돌아다녔는지 '현 상황 브리핑'받듯 일방적으로 듣는 데만도 삼십 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진행 중인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당장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확인하고 움직여야 할 동선을 그려가다 보니 새벽이 깊을 때까지 열띤 회의는 끝이 나지 않았다.
아, 왜 이렇게 졸리지?
카자흐스탄은 한국과 -3시간 시차, 시계를 보니 벌써 한국은 새벽 동이 틀지도 모를 시간이었다. 시차와 여독으로 잠이 쏟아지고 집중은 잘 안 되었지만 이 밤을 통째로 새 버릴 듯한 기세의 열정과 에너지 넘치는 싸샤의 모습에 안도감이 느껴졌다. 이제 우리는 하나. 우리 일이 곧 그의 일이고 그의 일이 곧 우리 일이니까.
"많이 늦었고,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테니까 이제 눈 좀 붙이고, 더 자세한 건 내일 얘기하자."
"그래요. 자세한 건 내일 계속..."
마침내 그의 입에서 나온 ‘내일’이란 단어는 마치 달달한 꿀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정말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잠이 들 것 같았다.
꿈을 꾼 듯했다.
기억하지 못했지만 잠이 깰 무렵 어렴풋한 꿈의 잔상이 느껴졌다.
다만 좋았던 것 같다.
눈부신 햇살이 머리맡 좁은 창으로 쏟아질 때
내 몸을 뉘었던 좁은 침대칸 하얀 침대보를 들치며 한 걸음 성큼 다가온 운명을 마주했다.
긴 여정이 될 것이다.
감히 그 끝을 짐작치 못하는 저 넓은 들판만큼 끝이 없는 그 긴 여정을 이제 시작한다.
여기, 심켄트에서.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도착하는지 안내 방송에 ‘심켄트’라는 단어가 자주 들렸다. 어제의 말끔한 모습은 어디 가고 부스스한 행색을 한 차장이 객실을 돌면서 어제 받았던 보급품을 반납하라고 독촉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습관처럼 침대보와 담요를 ‘각’이 나오게 개고 있는데 옆 칸에서 건너온 싸샤가 한마디 했다.
"그렇게까지 갤 필요는 없어. 그냥, 개수만 맞으면 돼."
"그래도..."
그때 처음 알았다. 몸에 익은 습관보다, 눈에 익은 습관이 더 강하다는 걸. 왠지 이렇게 모서리 ‘각’이 잡히지 않은 담요를 보는 건 용서가 안 되니...
에이, 모르겠다!
고이 접다 만 보급품들을 대충 둘둘 말아 반납하고, 객실로 돌아오는 길에 복도 칸에 서서 잠시 창밖 풍경을 보았다. 알마티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넓은 평원과 나지막한 언덕들 위에 듯 펼쳐진 낮은 집들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양 떼들...
9월 청명한 날, 마침내 우리의 홈그라운드에 도착했다.
<심켄트Шымкент(러), Shymkent(영)>
- '초원(잔디) 도시 Turf city'라는 뜻(광의로는 '거친(터프한) 도시')
- 카자흐스탄 제3의 도시로 무려 대한민국의 약 3.4배에 달하는 면적에 거주인구는 약 100만 명이다.
- AD 12c부터 인근 실크로드와 주요 카라반 사라이었으며, 주변 유목민들과 정착민들의 주요 무역 도시였다.
[심켄트 에피소드]
심켄트 - 카자흐스탄의 텍사스! (Texas - 미국의 28번째 주 - 카우보이 문화와 각종 사건사고로 유명한)
그야말로 그 도시 이름 뜻처럼 ‘터프 Turf’한 이 도시를, 현지인들은 또 다른 의미로 ‘카자흐스탄의 텍사스’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런 조금은 불명예스러운 별명은 카자흐스탄 현지인들만 부르는 게 아니라는 걸 후에 알게 됐다. 한 번은 러시아에서 사업차 심켄트를 방문해서 한식이 그립다며 우리 카페를 수소문해서 일부로 찾아온 사업가가 있었다. 그분은 우리 부부에게 아주 반갑게 인사하시며 어떻게 이 알려지지 않은 도시까지 오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덧붙인 그분의 격려와 진심 어린 걱정...
"아니, 이렇게 위험한 도시에... 어떻게 여기서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심켄트가 구소련 시절부터 위험한 마피아
동네라고 소문나 있는 건 아시죠?... 총기, 총격사고가... 부디 무사히..."
"글쎄요... 우린 잘 모르겠는데요? 외려 우린 이 도시가 아주 안전한 것 같은데요?"
'카자흐스탄의 텍사스' 심켄트가 안방 같은 이방인은 아마도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았다.
TAXI는 택시가 아니라 '딱시'입니다.
여독 탓일까?
어제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지는 수화물 가방들을 챙겨 기차에서 내리니 호객하는 택시기사들이 제일 먼저 반겼다. "딱시! 딱시!" 하며 달라붙었다. 확실히 발음이 '택시'는 아니었다.
딱시?
딱시 Такси!
옛날 한국 드라마에서 들은 듯한 왠지 영어 사투리 같기도 한 이 단어는 조금 웃기지만 표준 러시아어였다.
9월. 여름의 끝자락이라는데 아직도 이글거리는 열기가 느껴졌다. 아스팔트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싸샤는 올여름 최고 온도가 영상 50도까지 올라갔다고 했다. 일반 수은 온도계는 보통 영상 50도까지 눈금 표시가 되어 있는데 8월 내내 그 끝자락에 머물렀다고 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 그것도 시베리아 아래쪽에 있어서 마냥 추운 나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카자흐스탄의 가장 남쪽 끝 도시 심켄트의 기후는 마치 사막 같았다.
맙소사! 영상 50도라니! 감조차 못 잡겠다.
타임머신을 탈필요 없어. 여긴 아직 30년 전이야.
읽을 수도 종잡을 수도 없는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로 된 간판들을 보니 정말 다른 세상에 와있다는 게 실감 났다. 영어는 안 쓴다더니 정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우리가 살게 될 집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풍경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한 30년은 거슬러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위태위태하게 도로를 따라 지상으로 노출된 노란색 구불구불한 가스관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대착오적인 낡고 빛바랜 '앤티크'한 승용차들이 즐비하고 학창 시절 감명 깊게 보았던 '카레이스키'라는 드라마에서 봤던 구소련제 하늘색 대형 트럭도 자주 눈에 띄었다. 오래된 버스와 차들이 품어 내는 검은 매연은 어찌나 대단한지 잠시 시야를 가릴 정도로 검은 구름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심켄트는 내 어릴 쩍 뛰어놀던 시골 풍경 같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시골의 향수 그 감성적인 향이 아직 풍기는 그런 곳이었다.
지난번에는 상계동 버스를 봤어. 그거 타면 아마 서울 갈 거야. 집에 가고 싶으면 그 버스 타.
싸샤가 지나가는 낡은 버스를 보면서 농담을 던졌다. 한국에서 수입된 오래된 버스 얘기였다. 한국에서 운행할 때 붙여둔 행선지 표시조차 떼지 않은 모양이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 고향이 그리울 때 한 번쯤은 무작정 타고 싶을 것 같기도 했다.
경험해보지 못한 신비한 세상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초승달'이 걸려있는 도심 속 회교사원들이었다. 이슬람교가 주된 종교인 나라. 한국에서 살 때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슬람 문화 그리고 모슬렘. 많이 낯설지만 하루빨리 적응해야 할 곳이다.
우리가 살 '땅집(단독주택을 일컫는 북한용어, 현지에서는 이렇게 불렀다.)'은 오래된 포도나무 넝쿨이 뒤덮은 앞마당이 넓은 단독주택이었는데, 큰 호두나무와 체리나무가 그늘을 주고 뒷마당에는 사과가 심어져 있어 마치 한국 시골집 같은 느낌이었다.
앞마당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모슬렘들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이 시작됐다. 우리 집에서 불과 삼십 미터 거리에 있는 동네 모스크에서 확성기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정말 쩌렁쩌렁했다.
"아빠, 저 아저씨는 노래를 잘못하는데 왜 마이크에 대고 해요?"
아잔을 처음 들어본 큰딸의 질문이 너무 웃겼다.
"하하... 글쎄... 여기선 저렇게 부르는 게 잘 부르는 건가 보지!"
나나 아이들이나 모든 게 생소하고 처음이긴 마찬가지다.
여기선 같이 성장할 테니 어른이라고 우쭐댈 필요도 아는 척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모두 아직 어리바리한 '학생'이니까...
[자투리 에피소드]
어느 날 가스 냄새가 온 집안을 진동해서 혹시 가스레인지에서 가스가 새는 건 아닌가 싶어 긴급 점검을 했다. 가스 점검 상식에 따라 비눗방울로 이음새와 호스 부분을 모두 꼼꼼히 점검했지만 도무지 가스가 새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불이 날까 불안해 그냥 넘길 수 없어 대문 밖 도로변에서 우리 집과 연결된 메인 가스 파이프라인을 살펴보았는데 바로 거기 이음새 부분에서 가스가 새고 있었다.
"오 마이 갓! 가스가 엄청 새는데!"
동네를 연결하는 굵은 메인 가스관이 터지면 대형사고가 날 것 같아 얼른 싸샤에게 전화를 했다.
"큰일이에요. 집 밖 가스관에서 가스가 새고 있어요! 위험한 것 같은데 신고 좀 해줄래요?"
"걱정 마. 괜찮은 거야."
"네? 괜찮다고요?"
가스 냄새가 난다는 건, 가스가 아주 잘 들어오고 있다는 증거야!
"맙소사! 그런 거군요!"
안전 불감증의 극치 같았지만 현지인들은 집 밖에서 가스가 새는 것 따윈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물론 우리도 아무렇지 않게 살았다. 그렇게 현지화되어 가는 거니까...
"오늘은 가스 냄새가 더 심하네! 가스가 너무 잘 들어오는 거 아니야?"
겁 없는 하룻강아지의 꿈
심켄트에 총 3곳의 한국식 카페를 연다!
더 나아가 카자흐스탄 주요 도시와 인접 국가로 확장한다!
우리의 목표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것이었다. 그 꿈을 이루기까진 낭비되는 단 한시도 단 하루도 아까웠다. 사실 매장 하나를 준비하고 잘 운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이 원대한 목표는 마치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같은 우리의 꿈이었다.
아직 피로도 가시지 않은 도착 다음 날 싸샤와 함께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하루빨리 임대해둔 매장 내외부 공사를 시작해야 하고 주요 식자재와 부차적인 재료들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여러 재래시장을 돌면서 조사도 해야 했다. 계획대로 움직이려면 정말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할 터였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시간은 정말 금보다 귀했다. 개업이 늦어지는 만큼 투자비용이 더 많이 드는 셈이기 때문에 최대한 속도를 내야 했고 몸과 마음이 안락한 '쉼'은 나중으로 미뤄두어야 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카페를!
먼저 나와 아내는 싸샤가 보내준 사진으로만 봤던 매장 예정지 2곳을 들러 현장답사와 내외부 공사, 인테리어 방향을 잡기로 했다.
풍경이 그림 같네...
미리 임대해 둔 첫 번째 매장 예정지로 향하는 대로변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언덕 아래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파노라마 풍경이 눈을 시원하게 했다. 바로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땅집들로부터 저 멀리 병풍처럼 둘러친 산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거칠고 투박한 느낌 그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날씨가 청명해서 가시거리가 아주 좋았는데 가시거리가 얼마나 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몇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을까요? 내 생각에는 한 50km쯤?"
"아니, 그보단 훨씬 멀지. 대략 80~100Km 정도 될 거야."
"오, 헬기로 비행할 때 하늘에서 보던 가시거리네요!"
가까워 보이지만 실제 거리가 80km 이상인 산들이 선명하게 보이다니 상상 이상의 가시거리다. 심켄트의 뜻이 ‘초원 도시 Turf city’라고 했는데 문자 그대로 와 닿았다. 말로만 듣던 대평원은 이런 느낌이다. 우리가 지나는 여기도 사람들이 정착하기 전에는 거친 말을 모는 노매드들이 유목하던 대초원이었을 것이다. 왠지 이 길 달리고 달리다 보면 아직 그들의 그림자가 보일 것 만 같다는 낭만에 잠시 빠져 들었다.
무엇을 하든 완벽한 'Condition조건'은 없다
이 대로의 끝자락에 우리 카페가 곧 열릴 것이다. 아주 이상적인 위치다. 무슨 사업을 하든 눈에 잘 띄는 ‘가시성’은 너무도 중요한데 그동안 싸샤가 열심히 발품을 판 덕에 좋은 위치에 우리 첫 번째 식당을 열 수 있게 되었다.
첫째도 Location! 둘째도 Location! 아무튼 Location!!!
싸샤는 줄 곧 '위치 Location!'을 외쳤었다. 매장은 위치가 가장 중요하다는 그의 사업철학은 어느새 우리의 것이 되었다. 로케이션만 좋다면 이미 절반은 한 것이다!
아! 여길 리모델링해야 하는구나!
막상 건물 밖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점할 건물을 바라보니 조금 걱정 섞인 탄성이 절로 나왔다. 큰 열쇠로 잠 구어 둔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쌓여 있던 먼지가 날려 올라왔다. 어지러이 널려있는 책상과 의자들 그리고 방치되어 있었던 듯한 내부 모습에 살짝 눈살이 찌푸려졌다. 얼마 전까지 PC방으로 운영되었던 곳이라는데 얼마나 담배를 피웠는지 찌든 담배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길가로 난 창들은 죄다 쇠창살로 답답하게 가려져 있었고 유리창에는 온통 온라인 게임 광고 스티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빛이 들지 않아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였다. 한국에 있을 때 싸샤가 후보지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긴 했었지만 실제 현장 분위기는 생각보다 심란했다.
자 마음껏 상상해봐.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그림은 백지에 그리는 게 쉽다. 이미 어지러이 낙서된 듯한 이곳을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봐야 할지 조금 막막해졌다. 그래도 탁월한 위치 하나로 사업 전망 날씨 예보는 '대체로 맑음'이다.
플라타너스 그늘이 좋은 도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초안을 스케치하듯 첫 번째 식당의 구상을 대략 마치고 곧장 두 번째 개업 후보지로 이동했다. 도시를 관통하면서 유심히 보니 아름드리 참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가로수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플라타너스 나무는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꽃가루가 날린다고 가로수로는 도태되고 있는 나무로 알고 있는데 여긴 개의치 않는가 보다.
여기선 빨리 자라고, 그늘을 많이 주는 나무가 최고지!
특히 구소련 시절에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고 한다. 플라타너스는 심켄트 환경에 딱 맞는 나무인데 내년 여름 섭씨 50도 땡볕 아래 서 있어 보면 이 나무가 얼마나 좋은지 금방 느낄 거라고 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다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그럼, 나무 아래에 두른 하얀색 페인트는?”
“석회야, 병충해 방지용. 밤에는 불빛 반사효과가 있기도 하고...”
아... 도대체 이 양반은 모르는 게 없다.
폐쇄적인 건물, 문화. 회색 그림자 도시
두 번째 매장 예정지는 첫 번째보다 넓고 깨끗한 편이었는데 심켄트 공항에서 도시로 들어오는 길목이라 위치도 아주 좋았다. 다만 여기도 건물은 조금 심란했다. 여기도 인도 쪽으로 난 창문들에 설치된 쇠창살이 흉물스러웠다. 생각해보니 여기뿐 만 아니라 주위 상점, 아파트, 단독 주택 할 것 없이 1층과 2층에 쇠창살을 단단히 설치해 두었는데, 전체적으로 폐쇄적이고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도둑이 많았나? 구소련은 공산주의 연방국가라 다들 똑같이 살았을 텐데...
짧은 내 배경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아마도 구소련이 붕괴될 때 또 독립 직후 사회가 극도로 불안정하고 혼란했던 시기에 강도나 절도 같은 여러 사건, 사고들이 많아서 그랬나 보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비용이 들더라도 창을 완전히 바꾸죠?
아내는 쇠창살을 모두 없애고 거리가 잘 내다보이도록 넓은 유리창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물론 적지 않은 비용이 추가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아직 이 도시에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개방적인 가게와 식당들이 없던 때였다. 우리는 인테리어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심미적 공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다행히 파트너도 이견 없이 그렇게 하자고 선뜻 따라 주었다. 한국에서 오래 살아본 사람이라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한국적인 느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궁둥이가 가벼운 사람들?
함께 또 같은 방향으로 노를 저으니 진행 속도가 빨랐다. 역시 동업은 '팀워크'가 생명이다. 한 번도 손발을 맞추어 본 적이 없었지만 몇 번은 어쩌면 오래 손발을 맞추어온 사람들처럼 우린 '꿍짝'이 잘 맞았다.
"나는 궁둥이가 가벼운 사람이야!"
"네?"
싸샤는 늘 자신을 가리켜 '궁둥이가 가벼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생각하고 결심하면 속히 실행에 옮기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 같이 궁둥이가 가벼워졌다. 매장을 열기까지 우리 궁둥이는 제대로 방바닥을 누려보지 못했다.
개업 준비를 위해 발품을 참 많이 팔았다.
재래시장, 건축 자재상, 가구점, 주방용품점... 심지어 유명한 카페 화장실까지 벤치마킹을 위해 돌아다녔다.
그만큼 빨리 시장을 이해할 수 있었고, 그들의 문화를 배울 수 있었고 또 다양한 현지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 모든 게 책에서 건질 수 없는 배움, 바로 '발로 배움'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땀에 젖고 고생스러운 ‘발품’이 둘도 없을 ‘명품’을 만들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심켄트의 해가 뜨고 지는 재래시장, 아이나 바자르 Aina Bazar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는 ‘없는 게 없다’라는 재래시장이다. 내일부터 우리 부부가 매일같이 출근하게 될 곳, 가장 빨리 익숙해지고 친근해져야 할 시장이었다. 다른 재래시장보다 전체적인 가격은 좀 비싸지만 시내 중심에 있어 접근성이 아주 좋았다.
이 재래시장의 이름은 아이나 바자르. 카자흐어로 '아이나 Айна'는 '거울'이란 뜻이다. 현지인들도 그 이름의 유래를 잘 몰랐다. 아마도 예전에 '거울'을 독점적으로 파는 시장이 아니었을까 추정해 볼 뿐이다. 심켄트가 실크로드 상 한 거점 도시였으니 그 옛날 거울이 귀했던 시절 분명 '고급 품목'이었을 테니까...
재래시장이 있는 언덕에 올라서니 진풍경이 펼쳐졌다. 오래된 승용차 위에 감자 가마니들을 잔뜩 실어 곧 펑크 날 것 같은 차들. 끝물이 다된 아주 크지만 제멋대로 생긴 수박과 노란색 탐스러운 듸냐(아주 크고 길쭉한 멜론)를 트럭 옆에 풀어놓고 파는 상인. 아직 낮에는 꽤 더운데 어마 어마한 크기의 생선을 냉장고도 아닌 노상 가판대에 올려두고 파는 상인. 사람과 차들이 뒤엉켜 차도와 인도의 구분도, 구분의 필요도 없는 곳. 정말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시장이었다.
마침내 '다바이'를 만나다
다바이! 다바이! 다바이!
우리 차가 주차장에 들어서니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던 주차요원이 여기에 주차하라는 듯 손짓하면서 ‘다바이’를 외쳤다.
"다바이? 다바이가 무슨 뜻이에요?"
"아... 다바이..."
싸샤는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생각하는 듯 잠깐 뜸을 들였다. 보통은 '즉문즉답'이었는데 이 단어는 간단히 설명하기에 뭔가 좀 복잡한가 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러시아어 '다바이'는 아주 쉬우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단어라고 했다.
'다바이Давай'는 그야말로 모든 상황에서 쓸 수 있는데...
- '건배'할 때도 다바이!
- 뭘 하자고 제안할 때도 다바이!
- 제안에 좋다고 승낙을 할 때도 다바이!
- 상대방 의견에 동의할 때도 다바이!
- 특별히 의견이 없을 때도 다바이!
- 헤어질 때도 작별 인사로 다바이!
- 전화를 끊을 때도 다바이!
- 재촉할 때도 다바이!
- 고요한 정적을 깰 때도 다바이!
- 복잡한 상황을 정리할 때도 다바이...
- 그리고 가끔 할 말이 없을 때도 다바이!
"전부 다 '다바이'야. 이해가 돼?"
"거참, 신통한 단어네요!"
정말 놀랍다. 그 모든 상황이 ‘다바이’ 한마디로 커버가 된다니!
앞으로 쓸 일이 많을 거라며 다바이만 잘 써도 러시아어 절반은 배운 거라고 했다. 우리말로 딱 떨어지는 번역은 어렵지만 대략 '자~, 그래 그러자. 알았어, 좋았어, 어서~, 잘 가!' 뭐 이 정도쯤 될 것 같다.
그야말로 만능 단어다.
“자, 이제 우리 내려서 한 번 둘러볼까?”
“다바이(그럽시다)!”
다바이라고 쓰고, 만능이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