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다. - 니체 -
3장. 거인에게 묻다. 듣다.
- 거인에게 묻다
- 노매드의 본향, 초원 이야기
- 카자흐스탄에 노아의 방주가?
- 차가운 건 NO!, 뜨거운 건 YES!
- '세속적' 이슬람 국가?
- 애매한 치안, 각자 '안전' 도생하라
궁금한 여섯 가지 질문
Q.1. 거인?
카자흐스탄은 ‘중앙아시아의 거인’이라 불린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국토면적이 넓은 나라로 내륙 국가만 따지면 세계 1위다. 영토가 한반도의 무려 12배, 광대한 평원에는 초원과 사막이 많은데 초원지대만도 대한민국의 8배에 달한다.
인간의 시력으로 볼 수 있는 지평선까지 이어진 대평원과 초원은 '맛보기'
내륙 국가지만 영토 내 바다라 불리는 세계 최대 소금호수 중 하나인 아랄해의 절반을 품고 있고, 서쪽 국경으로는 또 다른 바다 카스피해의 약 1/4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거인’이라 불릴 만하다.
Q.2. 기후?
대륙성 기후의 카자흐스탄은 넓은 영토만큼 동서남북 기후 편차가 아주 극단적이다. 위치상 북쪽에 있는 수도 누르술탄 Nur-Sultan (옛 Astana)의 한 겨울 기온은 영하 30도 가까이 떨어지고 남쪽 끝인 심켄트는 한여름에 영상 50도까지 치솟는다. 한 국가의 남북 기온 연 편차가 80도라니! 직접 겪어 보기 전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한 여름 나는 수은 온도계를 수도 없이 의심해 보았다. 수은 온도계는 섭씨 50도가 끝 눈금인데... 한여름 심켄트의 미친 온도는 턱걸이해서 버티듯 50도를 웃돌았다. 그 느낌은 마치 강력한 헤어 드라이기로 뜨거운 열풍을 입과 코에 불어넣는 느낌이다.
Q.3. 국제관계?
카자흐스탄은 1991년 구소련에서 독립한 후 이듬해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했다. 그리고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러시아는 정치, 경제 그리고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카자흐스탄의 ‘큰 형님’ 역할을 지금도 자청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으로서도 러시아에 일부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국경을 접하고 있는 ‘필요하지만, 위험한 친구’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현지에서 알게 된 지식인들은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끈끈한 관계가 없었으면 벌써 중국에 나라를 몇 번이라도 빼앗겼을 거라고 뼈 있는 농담을 했다. 수 세기 동안 지배국이었던 러시아와의 동맹 관계는 마치 ‘적과의 동침’ 같다.
유라시아 대륙의 심장,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경제약소국 카자흐스탄의 운명은 쉽지 않다. 세계 초강대국에 둘러 쌓여있는 우리나라가 그렇듯 국익을 위해 누구와 손을 잡을 것인지 늘 고심해야 하는 나라다. 최근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과 긴밀히 협력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런 모습을 러시아가 고운 시선으로 보지는 않을 것은 당연하다.
Q.4. 언어?
제정 러시아 지배 시절부터 구소련 시절까지 러시아어로만 이루어진 교육을 강요받았다. 그래서 카자흐 사람에겐 모국어인 카자흐 어가 있지만 러시아어가 공용어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최근 들어 모든 공문서를 카자흐어로 구축하는 등 자국어를 되찾자는 운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지만, 지식층이나 해당분야 전문가들은 러시아어를 쉽게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아직 러시아의 영향력이 사회 전반에 크게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골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카자흐어와 러시아어 2개 국어에 능통하다. 최근에는 글로벌 언어 - 영어를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이런 지방 도시에서는 아직 희귀한 언어다. 여행자들의 자유여행이 쉽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Q.5. 지하자원 부국?
통계 자료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카자흐스탄은 세계 12~15위권의 원유 매장국이자 산유국이다. 천연가스 매장량도 세계에서 손꼽힌다. 더욱이 그 귀하다는 우라늄(원자력 에너지 원재료)도 세계 2위의 매장량을 자랑한다. 넓은 영토만큼이나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보물 - 광물자원은, 창조주의 ‘한나라 몰아주기’ 축복을 받았다.
멘델레예프의 광물 주기율표에 나오는 모든 광물이 있다.
이 말은 카자흐스탄 지식인들이 외국인에게 자랑처럼 하는 말이다. 지하자원 빈민국인 우리에게는 얼마나 부러운 말인지. 다만 그렇게 지하자원을 축복받은 나라가 아직 연간 만 달러 정도의 개인소득 수준이라니, 처음에는 정말 이해 못 할 난센스였다.
카자흐스탄 인구가 1,70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그 많은 광물자원 팔아서 1/N으로 나누면 모두 부자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부정부패 지수가 높다는 것이 해답의 힌트가 될 것이다. 구 공산권 국가의 극단적인 빈부 격차는 이미 1991년 자유 독립 때부터 시작되었고 갈수록 그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더불어 지하자원 부국임에도 경제 발전이 더딘 이유는 이 광활한 영토에 거주하는 국민이 약 1,70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낮은 인구밀도. 경제 / 노동 인구, 소위 ‘맨 파워’의 절대 부족. 만약 우리나라처럼 5천만 인구만 되었어도 세계 역사는 다시 쓰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Q.6. 월드 클래스 - 밀 곡창지대?
귀한 광물이 널려있는 땅 위는 엄청난 밀과 곡물 대大 곡창지대다. 밀 원산지라 그런지 현지인들의 주식인 화덕에서 구워낸 빵은 맛이 정말 끝내준다. ‘탄투르Tandoor’라고 부르는 화덕에서 갓 구워낸 동그랗고 뜨거운 ‘리뾰시까 Лепёшка’ 하나와 우유 한잔이면 한 끼 식사가 넘친다. 거친 밀가루와 소금, 물이 재료 전부인데 그렇게 맛이 구수할 수가 없다. 많이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도 않아 이상했는데 방부제나 표백제 같은 첨가물이 들어 있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아이들도 너무 좋아해서 한동안 빵을 입에 물고 다녔다. 단, 너무 맛있어 자꾸 먹다 보면 살이 확! 찔 수 있다는 게 단점이다.
생각해 보면 영토는 부동의 세계 1위지만 대부분의 지역이 ‘동토’라 곡창지대가 절대 부족한 러시아가 이런 광대한 밀 곡창지역을 가진 카자흐스탄을 탐냈던 이유를 알만했다.
여기 밀의 품질과 그것으로 만든 빵 맛이 너무 좋기 때문이다.
게다다 땅을 파면 귀한 광물이 넘쳐나니 그저 먹고, 파면되기 때문이 아닐까?
카자흐스탄은 사유지일지라도 함부로 땅을 파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는데 뭐가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와 관련된 웃지 못할 실화를 들었는데 정말 기가 막혔다.
심켄트 도시 외곽 ‘싸이람 Sayram’이라는 지역에 한 사람이 집을 새로 짓기 위해 기초 공사 차 땅을 팠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굴착한 땅에서 지표 부근 금맥이 발견됐다.
"와! 금맥이라니. 완전 대박이네요!"
"아니. 완전 망했지."
"네? 아니... 왜?"
금맥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은 금방 퍼졌다. 즉시 정부에서 사실 조사단이 나왔고, 결국 그 토지는 얼마 안 되는 공시지가로 국유화되었다고 했다.(구 공산권 국가의 상호 감시체계는 강력했고, 지금도 의심스러우면 '상부에 보고'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결국 땅 주인은 오래 살았던 정든 집을 떠나 이사해야만 했다.
웃기고, 슬픈 이야기. 그야말로 카자흐스탄판 ‘새옹지마’다.
그러니 님아, 카자흐스탄에서는 땅을 함부로 파지 마오!
낭만을 치는 유목인
카자흐스탄의 원주민 카자흐인들은 원래 (기마)유목민들이었다. 고대 튀르크어로 ‘Qaz’는 ‘방랑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그것이 지금 카자흐인과 카자흐스탄의 어원이 됐다고 추정한다. 카자흐인은 문자 그대로 ‘방랑하는 유목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카자흐 민족의 성격은 마치 길들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말과 같다.
이 곳 심켄트도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넓디넓은 푸른 초원에 양과 소를 치는 목동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초원 위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유르트 Yurt’ 또는 ’ 유르타 Yurta’라고 부르는 둥글게 천으로 둘러친 목동들의 거주지를 보면 왠지 자유로움과 여유가 느껴진다. 유르트는 ‘고향’이라는 뜻을 어원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의 ‘가시적 고향’은 이제 도시 밖으로 밀려났다. 한때는 말이 달리는 속도만큼 빠르게 이 초원을 정복했던 기마 유목민들의 기질은 이젠 잠재적 DNA로 만 존재한다.
한날 도시를 벗어나 교외를 달리는데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 그 풍경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 달려가고 달려가도 그 끝을 보지 못할 대평원. 지평선 그 끝까지 닿은 초원에 외로이 서 있는 한 그루 나무. 그리고 곁을 맴도는 고삐도 없는 몇 마리의 말들... 눈도 마음도 시원해졌다. 청명한 하늘과 유유히 흐르는 구름 그리고 자유로이 나는 새들, 국기의 하늘색 바탕과 태양을 등지고 있는 하늘 수리 그 느낌 그대로의 나라다.
이런 자연을 늘 마주해서일까?
카자흐 사람 중에는 안경을 쓴 사람들이 거의 없다.
“한국 사람들은 안경을 많이 쓰던데 혹시, 선천적으로 눈이 안 좋은가요?”
뜬금없는 질문했던 한 학생이 있었다. 드라마나 인터넷 영상으로 보았던 연예인이나, 한국인은 대부분 안경을 썼다고 의아해했었다. 그런데 그게 왠지 이지적으로 보여 조금 멋있기도 하다고... 조금은 웃기고 엉뚱한 질문이었지만, 지금 우리가 어떻게 또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질문이었다.
‘보쌈’이 웬 말?
에이 설마, 아직도 보쌈이 있다고요?
초원. 노매드. 이런 낭만적인 이미지들 뒤에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도 있다. 고대 유목민들은 신부가 부족할 경우 다른 부족의 여자를 납치해 와서 결혼하는 풍습인 ‘신부 보쌈’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보쌈을 이슬람 문화권의 특징적 관습이라고 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농경사회를 살아온 우리에겐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지만 그것이 그들의 삶, 그 일부였다. 당시에는 유목민들에게 초지의 확보가 곧 생존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쟁탈하기 위한 그야말로 피 튀기는 전쟁은 일상이었다.
잦은 전쟁으로 남성 전사들이 늘 부족했던 탓에 타 부족의 여자를 납치해서 그들을 통해서라도 후손, 특히 전사가 될 남자의 수를 늘리기 원했다. 그런 이유로 생긴 ‘신부 보쌈’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어져왔다. 우리도 조선시대에 ‘과부 보쌈’이란 풍습이 있었는데 여자를 업어 오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각각 배경과 목적이 다른 풍습이다.
그런데 그 유목민 후예들의 나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는 아직 보쌈 풍습이 남아 있다. 요즘은 아주 드물지만 다수의 남성이 여성을 납치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현대판 ‘신부 보쌈’이다. 보통 신랑, 신부 양가 부모들이나 결혼 당사자들이 결혼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보쌈 공모자’들의 ‘사전 합의’하에 이루어진다. 간혹 마음에 드는 여자를 무조건 납치하고 보는 문제의 ‘막무가내 보쌈’도 있다.
설마 그럴까 싶었는데 실제로 우리 여직원이 매장 그것도 주방까지 들어온 다수의 남성에 의해 눈앞에서 당하는 ‘대낮 보쌈’을 목격하고 나니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근에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보쌈의 문제점과 처벌을 강조했는데, 그것이 보쌈 풍습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방증해 준다.
카지구르트 Kazygurt의 전설
전 지구를 뒤덮은 대홍수 발생 후 7개월, 7일, 7번째 시간.
선지자 ‘누흐 Nukh(기독교 선지자 노아의 이슬람식 발음)'의 방주는 카지구르트 산 Kazygurt(해발 1,768m / 카자흐스탄 심켄트 주 소재)으로 향하고 있었다. 선지자 누흐는 창조주 텡그리 Tengri에게 무방비 상태의 사람과 동물들을 구원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한편, 맹렬한 파도보다 높은 산들은 거만하게 누흐의 방주가 반드시 그들 중 하나에게 머물 것이라고 믿었는데 오직 카지구르트 산은 감히 그런 꿈을 꾸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다른 산들보다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겸손함을 본 창조주는 오로지 그 산의 정상만은 물에 잠기지 않도록 허락하였고 마침내 방주는 카지구르트 산에 머물렀다...
사람들은 먼저 대홍수로 새로워진 땅 가운데 살만한 땅(마른땅)을 확인하기 위해 몇몇 새들을 날려 보냈는데 그중 제비만 녹색 가지를 물고 돌아왔다. 그때부터 카자흐인에게 제비는 ‘선행’을 의미하는 특별한 새가 되었다.
카자흐스탄의 고대사 기록에 따르면 누흐의 방주가 카지구르트 산에 머문 이유는 바로 이 산이 신성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카자흐스탄 대홍수 설화, 카지구르트 Kazygurt의 전설 중 / 작가 번역 -
카자흐스탄에 노아의 방주라니?
여기서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카자흐스탄에도 전 지구적 대홍수 설화가 있는데, 기독교 성경 속 노아의 방주 사건을 연상케 한다.
카지구르트 산의 전설 Legend about the mountain Kazygurt
이 재미있는 설화는 ‘카지구르트 누흐의 방주 The Noah’s Ark of Kazygurt’로도 알려져 있다. 노아 Noa는 중동 및 중앙아시아에서 이슬람식 발음으로 누흐 Nukh라고 한다. 그러니 누흐의 방주는 노아의 방주와 같다. 심켄트에서 약 40km 남쪽에 있는 카지구르트 산에는 이 누흐의 방주 모형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역민들이 신성하고 기념비적인 장소로 추앙하고 있다.
대홍수 속에서 유일하게 창조주의 선택을 받은 카지구르트 산을 가진 카자흐 사람들이 이곳이 바로 신인류의 시작점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우리는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가늠해 보기 위해 과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브 -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날이 너무 더운데 시원한 거 한 잔 마실 데 없어요?
늦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9월. 작열하는 태양에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같은 도로 위를 걷고 또 걷다 보니 옷은 땀으로 홀딱 젖었고 그저 식도를 얼려버릴 만큼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이 간절해졌다. 다른 카페들의 분위기도 엿볼 겸 심켄트에서 가장 명성 있는 카페를 방문했다. 마침 에어컨 앞자리가 비어있어 얼른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즐기며 점원을 기다렸다.
"커피, 아이스드 아메리카노 부탁해요."
"아, 커피요. 우유를 넣어 드릴까요?"
엥? 아이스드 아메리카노에 우유를?
혹시 점원이 ‘카페라테’와 착각을 한 건가 싶어 우유는 필요 없고 얼음 넣어 차갑게 한 커피 -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부탁한다고 다시 한번 설명했다. 점원은 알겠다고는 했는데,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며 조금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 보였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네...
그래도 가장 기본 중 기본인 아이스 아메리카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텐데...
쓸데없이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하며 부채질로 더위를 쫓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서빙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블랙커피에 얼음을 몇 개 띄워서 만든, 아직 커피 잔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였다!
'설마...!'
너무 이상해서 메뉴 리스트를 천천히 보니 정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었다. 사실 아메리카노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고 '따뜻한(뜨거운) 블랙커피 Черный кофе'만 있었다. 또 한 번의 문화충격!
2013년, 아직 이 도시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없다!!
아니 도대체 왜!?!? 없지?
더위로 불타는 도시에 더욱더 필요할 것 같은 아이스 메뉴가 없다는 건 실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찬 건 건강에 해로워!
카자흐스탄뿐만 아니라 구소련 국가 대부분의 사람이 ‘찬 것(음식, 음료)은 건강에 해롭다’라 의식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찬 것을 즐기는 문화가 없다시피 한 나라였다. 최근에는 젊은 층 위주로 찬 음료를 즐기는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지만, 여전히 기성세대는 차가운 것을 꺼리는 편이다. 카자흐스탄에 거주하는 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찾는 기성세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차가 없으면 일도 없다.
카자흐인을 쥐어짜면 차가 나온다.
카자흐인들은 주로 따뜻한 차를 즐긴다. 차 사랑에 관련된 재미있는 속담 '차가 없으면 일도 없다', '카자흐인을 쥐어짜면 차가 나온다'는 그들의 대단한 차 사랑을 한마디로 잘 정리해 준다.
현지인들은 차를 '차이 Чай'라고 하는데, 어디를 가나 어느 때나 차이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아마 카자흐인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 차이를 '웰컴 티'로 대접받을 가능성이 높다. 녹차보다 홍차를 많이 즐기는 편인데 현지인들이 차 한 잔에 얼마나 많은 설탕을 넣는지 보면 아마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설탕 없인 차이도 없다!
[현지 문화 따라잡기]
현지인이 사랑하는, 감기에 좋은 ‘타슈켄트 Tashkent’ 스타일 차이
- 차이 빠 타슈켄스끼 (Чай по ташкентский)
* 일반적으로 홍차, 녹차, 레몬, 꿀, 민트를 함께 넣어 우린 새콤, 달콤, 향긋한 차이를 현지인(‘스탄’인)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 Tashkent' 스타일의 차이라고 부른다.
* 재료와 레시피가 간단하니 핸드메이드로 한 번 도전해 보자!
- 재 료 : 홍차 티백 2, 녹차 티백 2, 레몬 슬라이스 반 개, 꿀 20g, 민트 3~4 잎.
- 레시피 : 하나, 모든 재료를 주전자에 함께 넣고, 뜨거운 물 1리터를 붓는다.
둘, 기호에 따라 재료를 가감한다.(너무 쉽다는!)
생소한 이름 - 세속적 이슬람
카자흐스탄은 '세속적' 이슬람 국가다. 정치와 종교 분리 원칙에 따라 이슬람을 국교로 정하진 않았지만 이슬람교 신봉자인 모슬렘이 다수인 세속 국가라는 뜻이다. 즉, 이슬람이 '문화의 중심'이다. 러시아 정교도 영향력은 있지만 이슬람에 견줄 바는 아니다. 다만 이슬람이 주류이긴 하지만 이들을 극우 이슬람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다. 앞서 이들에게 누흐의 방주 설화를 언급했는데, 카자흐인들에게는 그들 고유의 창조주 '텡그리 Tengri'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극우 이슬람으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많은 학자들이 입을 모았다.
우리 조상들이 섬기던, 우리의 종교는 뭐였지?
제정 러시아와 구소련 피지배 시기를 거치면서 러시아 정교와 '무신론의 원칙-사회 공산주의 기조'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종교는 제한적이었고 사회적으로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다. 1991년 독립 이후에야 잊어버린 원래 그들의 신앙을 찾아 회귀하려 노력했는데 그것이 기원후 7세기경 즈음 이 땅에 흥행했던 이슬람이다. 또한 그것은 신앙의 정체성을 찾는 동시에 다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할 최선의 방책이었다.
지금은 인구의 약 70%가 수니파 이슬람, 뒤이어 러시아 정교회 약 25%, 그리고 소수의 개신교와 유대교가 공존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는 120여 종족(어떤 자료에는 140여 종족) 이상이 모여 사는데 모든 종족이 '하나의 신 One God'을 신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지 않나 싶다.
'세속'은 '타락한'의미로서의 세속이 아니다
사실 나는 처음 '세속'이란 단어를 접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는데 조금 혼란이 있었다. 그 단어는 마치 ‘신자들의 신앙 수준이 낮다’라고 오해할 만한 어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뜻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더니, 본뜻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국가가 특정 종교를 국교로 지정하지 않고 중립을 유지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세속이란 단어를 신앙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생각한 것은 명백한 오류였다. 그러고 보니 대한민국도 세속 국가다. 대한민국 역시 헌법 제20조에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니.
삼겹살 있다? 없다?
이슬람이 주류인 사회다 보니, 사회적인 식문화의 기준은 '할랄 Halal-허락된 것'과 '하람 Haram-허락되지 않은 것'을 따르고 있다. 무엇보다 한식당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겐 이들이 부정하게 생각하는 '하람'이 가장 관심사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돼지고기였다. 이슬람 경전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모슬렘은 하람인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돼지를 기르거나 만지는 것조차도 부정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슬람 세계에 산다는 건 돼지고기는 포기하고 살아야 할 숙명이다. 돼지고기를 메인 요리 재료로 하는 우리에게는 가장 안타깝고 아쉬운 사실이다.
그런데, 카자흐스탄은 다른 이슬람 국가 같지 않고 좀 달랐다. 러시아인과 고려인같이 주로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인구의 1/4 가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로 인해 할랄이 아닌 일반적인 식문화도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이 땅에 살며 또 한식당을 준비하는 우리에겐 아주 다행스러운 것이었다.
사실 러시아인도 한국인 못지않은 돼지고기 마니아다. 특히 그들이 국민 술 보드카와 함께 즐기는 ‘쌀라 Cало (숙성 돼지비계)’를 한 번 맛보면 한국인의 돼지고기 사랑을 능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 덕에 카자흐스탄에서는 제법 쉽게 돼지고기를 구할 수 있는데 단지 동네 마트나 작은 규모의 시장에서는 찾을 수 없다. 보통 규모가 큰 재래시장의 한구석에 꼭꼭 숨겨져 있다.
마치 보물처럼!
저기, 오늘 보물찾기 하러 갈까?
Сало(Salo) 쌀로 : 숙성 돼지 지방
우크라이나 기원으로 알려진 이 고열량 소금(또는 훈연) 숙성 돼지 지방은 동유럽 및 러시아, 중앙아시아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평소에도 먹지만, 추운 영하의 날씨에 겨울철 비상식량으로 집집마다 비축하기도 한다.
조금 느끼해서 한국인의 식성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러시아나 중앙아시아를 방문하게 되면 문화 체험으로 한 번은 맛볼 만하다.
[생생 에피소드]
아내와 둘이서 처음 삼겹살을 찾으러 재래시장에 갔을 때 이야기다. 아직 현지어라고는 인사밖에 할 줄 모를 때였지만, 대부분 눈으로 보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 말을 몰라도 시장을 보는 것에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정육점 통로로 들어서니 말고기, 소고기, 양고기는 종류별로 즐비한데 역시 돼지고기는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통로의 끝 모퉁이 다다르자 러시아인들이 고기를 팔고 있는, 반지르르하고 '미 홍색'이 감도는 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판매대에 올려진 고기의 종류는 살코기 또는 뼈가 붙어있는 살코기 딱 두 종류였는데 고기의 이름도 부위 표시도 없었다. 부위별로 잘 정리, 표시되어있는 우리네 정육점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모양새로 봐서는 돼지고기인 것 같은데 혹시 다른 고기일지도 모르니 확인이 필요했다.
매대 앞에선 아내는 주저 없이 오른손 검지를 코에 대고선 위로 들어 올려 돼지코를 만들고 돼지 소리를 냈다.
"꿀! 꿀?"
그 모습을 본 러시아 상인 둘은 서로 마주 보고 손뼉을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리곤 손으로 ‘오케이’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며 우리가 원하는 답을 주었다.
"다, 다! 에따 스비니나 (네, 네 돼지고기예요)!"
돼지고기 정육점을 제대로 찾긴 했는데, 문제는 우리가 찾는 삼겹살은 매대 위에 보이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에겐 삼겹살이 꼭 필요했기에 그냥 돌아 설 수가 없었다.
"음... 삼겹살은 안 보이는데 어쩌지?"
"잠깐만 기다려봐요."
아내는 다시 상인에게 손가락으로 자기 배를 콕콕 찔러 보여줬다.
"삼겹살요. 아... 요기요, 요기!"
한국어를 알아들을 리 없는 상인은 잠깐 생각하더니, 오른손 검지를 치켜세우면서 잠깐만 기다리라는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는 매대 아래에서 삼겹살을 꺼내 올렸다.
"브류쉬나 брюшина свиная(삼겹살)?"
"오! Yes!"
아내의 재치 있는 보디랭귀지 덕에 삼겹살은 잘 찾았는데 다만 그 삼겹살을 보니 절로 탄성이 나왔다.
가로세로 30cm, 50cm쯤 되어 보이는 생삼겹살 한 덩어리!
그야말로 원판이었다.
껍질 부분까지 붙어있는데, 심지어는 유두들 까지 이 열 종대로 질서 정연하게 붙어있었다...
우리가 심켄트로 이민 왔을 때 이곳에 상주하는 한국 교민은 채 15가구 정도 되지 않았다. 주로 개인 사업가, 기업 주재원, 선교사 그리고 비정부기구 NGO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길게는 20년도 넘게 짧게는 우리보다 조금 떠 일찍 이주해 와서 살고 계신 분들에게는 전설 같은 사연이 참 많았다. 특히 치안 문제가 그랬다. 어떤 분은 강도를 당해 상해를 입기도 했다. 지금은 그들이 첫발을 디뎠을 때에 비하면 안전하고 발전한 카자흐스탄에 온 거라고 하셨다.
지금이 월등히 좋아진 여건이라면 그때는 어땠을까?
한번 당하면 또 당할 확률이 외려 높다
지금은 치안이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편이라는데 여전히 절도나 강도 사건이 종종 들려왔다. 어떤 교민은 외출을 다녀온 사이 빈집털이를 절도 사건을 당했는데 신고한다고 잡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냥 잃어버린 셈 치고 지나갔다고 하셨다. 다만 불안해서 집 열쇠를 가장 튼튼 걸로 바꾸고 창문에 쇠창살을 달았는데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도둑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는 가족들이 집 안에 있을 때라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면서 숨죽여 안전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랐다는데 다행히 튼튼하게 바꿔둔 열쇠를 열지 못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그냥 돌아갔다고 했다. 그때부터 마당에 큰 개를 키우기 시작하셨다고 했다. 단독주택에 사는 대부분의 교민과 현지인들은 무시무시한 대형견을 키웠다.
왠지 한번 손님(?)이 오면 또 오는 거 같아요!
그분은 안전을 위해 우리도 꼭 큰 개를 기르기를 권하셨다. 기왕이면 두 마리 키우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아주 무섭고, 귀여운 '아메리칸 핏 불 American pit bull'이란 녀석으로!
그대의 바퀴는 안녕하신지?
어떤 교민은 자가용을 집 앞 공터에 밤새 세워 두었었는데 아침에 출근하러 나와 차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절도범이 밤사이 앞뒤 바퀴 네 개를 몽땅 훔쳐 간 것이었다! 바퀴 대신에 힘겹게 자동차 네 축을 받치고 있는 벽돌들만 있었다고...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나중에 차를 사게 되면 반드시 안전한 집 안 마당 안에 세워 두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대의 번호판은 어디에?
어떤 분은 자동차 번호판을 절도당했는데 차 앞 유리에 번호판을 가져간 범인이 당당하게 메모지를 꽂아 두었다고 했다.
번호판을 되찾으려면, 이 번호로 연락하시오!
듣고 있자니 기가 막혀 실소가 터졌다. 차량 번호판 '인질극'인가?
"그래서, 다시 찾으셨나요?"
"너무 많은 돈을 요구해서 결국은 포기했습니다. 새로 번호를 받는 게 빠르겠더라고요..."
경찰이 돕긴 했지만 이방인에게 호의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바라는 것은 욕심인 듯했다.
다행히 지금은 그들이 지나온 시절보다 치안이 많이 좋아졌다. 카자흐스탄은 구소련(CIS) 국가들 중에서도 치안이 좋은 편이라고는 하지만 방문자나 여행객은 항상 각별히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어떤 이는 좋다고 또 어떤 이는 불안하다고 하는 치안상황이니 애매한 상황에서 각자의 안전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치안은 각자 '안전' 도생 하는걸로!
안전한 카자흐스탄 방문과 여행을 위한 조언
하나. 혼자보다 둘이 좋다.
* 항상 둘 이상 다니는 게 좋다. 실제 한국 교민이 납치된 사건이 있었다.
* 위급 시 도움을 청하는 러시아어 ‘빠마기쪠! (Помогите!-Help me!)’를 반드시 기억하자.
둘. 다수의 군중이 모인 곳은 피하라.
알 수 없는 이유로 군중이 모여 있는 곳, 데모 / 대규모 집회 등이 있는 곳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 특히 다민족 국가라 민족끼리 집단 패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 불법 총기 소지자들도 있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 간혹 총격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분노의 총구’는 그 방향을 가리지 않는다.)
셋. 여권(입국 시 작성한 입국 카드 포함)은 항상 소지하라.
* 경찰이나, 보안요원들이 언제든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즉시 신분이 확인되지 않으면 곤혹을 치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예기치 못한 여권 분실에 대비해 여권 사본을 따로 휴대하는 것이 좋다.
넷. 무단 포교자는 즉시 체포, 추방될 수 있으니 주의하라.
*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허가되지 않은 포교 활동은 금한다.
* 이슬람, 기독교 등 기타 어떤 종교를 불문하고 포교 활동은 적극 감시한다.
* 특히, 미성년자에 대한 무단 포교는 더욱 엄중히 단속, 처벌하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 주 카자흐스탄 대사관 긴급연락처 >
1 지역 : 누르술탄 및 카자흐스탄 동부 서부 북부 : +7-705-757-9922
2 지역 : 알마티, 잠블, 남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심켄트 : +7-777-705-6634
걸으면 걸을수록 세상은 온통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오늘을 가볍게 살려 노력한다.
가벼울수록 가볍게 떠날 수 있으니.
'가슴이 떨릴 때 떠나라!'
오늘 가슴이 떨리니 내일은 떠나야겠지?
아니, 오늘 훌쩍 떠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내일은 다리가 떨릴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