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폭풍의 계절

모든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다 - 니체 -

by 청연
5장. 폭풍의 계절
- 순풍, 그 폭풍전야
- 방심, 결정적 실수
- '솟아날 구멍'은 어디에?
- 키르기스스탄으로 가는 카레이스끼
- 비슈케크행 기차안에서


순풍, 그 폭풍전야


싸샤는 지금껏 만났던 어떤 사람보다 열정적이고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매장 내외부 공사와 부차적인 일들로 뛰어다녔다. 물론 중간중간 현장에서 함께 토의하고 나와 아내가 돕기도 했지만, 그의 강력한 추진력이 아니었으면 아직 절반도 오지 못했을 것이다.


개업 준비도 어느덧 두 달, 준비 중인 매장이 놀랍게 변해가고 있다.

과감히 창문을 넓게 트고 거리가 훤히 내다보이도록 시야를 확보했고, 한국에서 가져온 고급스러운 나무 재질의 블라인드로 분위기를 더했다. 어두웠던 공간을 밝고 예쁜 조명으로 환하게 밝혔고, 실내에 자작나무 인테리어까지 더하니 이전의 왠지 우울하고 칙칙한 모습은 전혀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구소련 시대의 잔재 같은 어둡고 답답할 만큼 폐쇄적인 분위기를 탈피한, 이 도시에 없었던 마치 '작은 혁명'과 같았다.


인테리어 공사가 막바지로 다가가고 있을 무렵부터는 공사 현장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창 안을 들여다보고 지나가곤 했다. 어떤 사람은 호기심에 아예 공사 중인 매장 내부까지 들어와 개업 날짜를 물어보기도 했다. 곧 개업하면, '이전에 없던 새로움'이라는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장소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두 번째 매장도 틈틈이 리모델링을 진행 중이다. 첫 번째 매장 준비 경험은 귀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 결정이 빨랐고, 그만큼 속도가 났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이 줄었다. 우리는 좋은 팀워크로 공동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달렸다.


그렇게 순풍에 돛 단 배처럼, 계획대로 순조롭게 항해하고 있었다.


바람이 우리 편이니, 가능한 더 높이 돛을 올렸다.




방심, 결정적 실수


거주권, 그 몸서리 쳐지는 여정의 시작

개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장기 체류할 수 있는 거주권을 빨리 받는 것이었다. 거주권 신청은 대리인을 통한 서류 준비 및 접수 대행으로 결정했다. 직접 신청하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절차가 아주 복잡했고, 우리의 현지어 능력도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카자흐스탄의 행정은 아직 투명하지 않았고 업무처리상 혼선도 많았다. 중요한 일인 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했는데, 다행히 우리보다 먼저 온 교민들의 거주권 발급을 대행해 주신 전문가를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분은 경험이 많고 신뢰할 만한 분이라 비용이 좀 들더라도 그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 판단했다.


모든 서류는 러시아어로 번역·공증하세요!


한국 외교부에서 아포스티유 받아온 서류들을 다시 현지 공증사무소에서 러시아어로 번역 및 공증을 받아야 했다. 그것만도 제법 시간이 오래 걸렸다. 비용은 두말할 것도 없다. 첨부해야 할 서류 중 한국 대사관에서 받아야 할 '국적 국가 동의서'라는 것도 있었는데, 카자흐스탄 시민권을 취득하는 것도 아닌데 개인 거주권 신청조차 본국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게 좀 의아했다.


우릴 못 믿는다는 거지?


거주권을 신청하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으니 대한민국 정부의 '개런티'를 요구하는 건가 싶었다. 우린 특별한 문제가 없으니 불편함은 있지만 불안함은 없었다.


'만나서 얘기합시다'의 의미

거주권 신청에 필요한 여러 서류도 다 준비가 되었고, 이제 현지 이민국에 접수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대행해 주시는 분은 아직 이전에 받아온 개인 초청비자 3개월 중 한 달 가까운 유효기간이 남아 있고, 정상적으로 접수되면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체류 가능 기간이 자동으로 연장된다고 했다. 그러니 이제 정상적으로 접수만 되면, 두어 달 내로 거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우리 잠깐 만나서 얘기해요.


며칠 뒤 거주권 신청 접수를 대행해주시는 분께 연락이 왔다. 그분은 고려인이라 한국어를 좀 하시지만 전화상으로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늘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었다. 만나자고 하시는 걸 보니 아마 또 다른 서류가 필요한가 싶었다. 지난번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우리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싸샤와 함께 차를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안 좋은 소식이에요.
정부에서 거주권 신청을 안 받고 있어요.

어제 이민국에 가서 접수 신청했는데 그렇게 말했어요.
2주 전까지만 해도 다른 한국 분을 접수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중단했어요.

혹시나 해서 알마티에 있는 이민국도 알아봤는데 거기도 똑같이 얘기해요.
그리고 언제 다시 신청받을지 아무도 모른대요...


"네? 왜요?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죠?"

"현재로선 다른 방법이 없네요."

뒤통수를 정말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 마른하늘 날벼락같은 소리는 마치 이렇게 들렸다.


너희들은 끝났어!


심켄트 이민국 거주권 접수 담당자는 무슨 이유인지도 알려주지 않고, 신청을 받지 않으니 돌아가라고 했단다. 정부에서 금지했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아, 이 야속한 것들! 그것밖에 더 할 말이 없다니!


하늘이 무너져도 이것보단 조금 나을 것 같았다. 거주권을 신청하고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카자흐스탄에서는 안 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되는 것도 없다’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었는데, 정말 이번에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분은 경험상 외국인 거주권 소지자 자가 큰 문제를 일으켜서 거주권 신청이 중단됐거나, 올해 거주권 쿼터(할당)가 마감되어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어쨌거나 미안하게 됐다면서, 두꺼운 서류 봉투와 대행 수임료를 다시 돌려주셨다.


그럼, 거주권 말고 다른 장기 체류 비자는 없나요? 급한 대로 몇 달만이라도...


거주권 외에 장기체류할 수 있는 대안은 ‘회사 설립 - 노동허가 - 노동 비자’를 받는 방법이라고 했다. 노동허가를 받으면 현재법으로는 6년을 머물 수 있는데, 그러려면 먼저 나나 아내 명의로 현지 법인 회사를 설립해야 했다. 문제는 회사 설립을 위해 준비할 서류도, 시간도 오래 걸릴 거라는 것이었다. 남아 있는 비자 유효기간은 채 한 달 남짓.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어딘가로 출국했다가 다시 입국해야 할 거라고 하셨다. 현재로선 대안이 없으니 일단 최대한 빨리 회사 설립이 가능하도록 부탁을 드리고 헤어졌다.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서류뭉치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고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슨 법이 어찌 이렇게 예고도 없이 단칼에 무 자르듯 시행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셋 모두 번갈아 가며 한숨만 거듭 내쉬었다. 어쩌면 거주권 하나만 믿고, 다른 방안을 준비하지 않은 우리가 치명적인 실수를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너무 방심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개업을 눈앞에 두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준비되고 있는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발목이 잡혀버렸다.


흥분된 마음을 억지로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현실을 봐야 했다.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첫 식당 개업. 회사 설립 후 노동 허가를 받기까지 어떻게 비자를 해결해야 할지 대안을 생각해 내야 했다. 그동안의 고생과 노력 그리고 희망을 단번에 날려버리지 않으려면...


날은 춥고 전해진 소식은 더 차가웠던 그 날, 엄청난 폭풍이 몰려오고 있다는 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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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y to blow a windmill without wind is to run toward.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


- 데일 카네기 -




‘솟아날 구멍’은 어디에?


사방이 꽉 막혔다

거주권 신청 불가 통보를 받고 멍하게 보내기를 며칠. 의욕도 없고 그저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앉아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 우리에게 구원처럼 열려있을 ‘솟아날 작은 구멍’을 반드시 찾아야 했다.


혹시 대학교에 입학하면, 유학 비자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쫓아 통역을 대동해서 심켄트 소재 대학교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나 아내가 유학 비자를 받을 수 있다면, 노동 허가를 받기까지 당분간은 체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대부분 대학교는 이미 학기 중이라 입학 상담조차 거부했고, 서른이 훌쩍 넘은 늦깎이 학생을 받아주려는 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정말 사방이 꽉 막혔다. 결국 다른 나라로 출국했다가 다시 관광비자라도 받아 들어오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나와 아내의 '동시 공백'이 생기게 되는데, 그건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다시 한국으로?
그건 절대 안 돼.


쉽게 생각하면 한국을 다시 다녀오면 될 것이지만 그것은 가장 피하고 싶은 방법이었다. 다섯 명의 왕복 항공권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그보다 불과 얼마 전에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떠나 왔는데 다시 들어갈 체면이 서지 않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부모님이나 가족들이 갑자기 돌아온 우릴 보면 아무리 잘 설명하더라도 놀라 걱정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최선이 아니라면 차선이라도 좋다

비교적 카자흐스탄에 가깝고, 무비자로 방문 가능한 다른 나라를 알아봐야 했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국경을 남쪽으로 접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은 비자를 받아야 입국할 수 있었고, 오른쪽 국경을 접하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은 한국인에게 관광목적으로는 무비자로 열려있었다. 암울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무비자 방문이라는 '특권'이 있는 키르기스스탄이 있어 다행이었다. 급한 대로 한 달 유효기간 단기 비자라도 받아오면, 파트너 개인 초청으로 다음번 비자 여행에서는 다시 3달을 받을 수 있도록 해보는 것이 우리가 가진 최선의 대안이었다. 그사이 회사 설립이 완료되고 노동 허가를 받을 수 있기만을 바라면서.


다행히 심켄트에서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로 며칠마다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기차와 매일 운행하는 버스 편이 있었다. 기차는 국경을 넘어 편도로 총 12시간, 버스로는 국경 심사 시간을 포함해서 대략 8~9시간 가까이 걸렸다. 기차로 왕복하면 이동 시간만 총 24시간이다. 기차로 이동하면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짐을 따로 내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기에는 더 나은 선택이었다.


키르기스스탄으로 비자 여행을 결정한 후 몇 번의 대책 회의를 통해 식당 개업 날을 12월 25일로 정했다. 크리스마스에 이은 연말, 연시 특수를 몽땅 놓치는 것은 가장 이상적인 개업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계획대로라면 12월 24일 오후 우리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출발해서 저녁에 국경을 넘고, 12월 25일 이른 새벽에 심켄트에 도착한다. 돌아오는 정기 기차 편이 그렇게밖에 운영되지 않았다. 장시간 기차 여행에 많이 피곤하겠지만, 심켄트로 돌아와서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면 어떻게든 개업은 가능할 것 같았다.


긴급한 상황. 미쳐야 산다

3주밖에 남지 않은 출국 일정에 맞추어 미리 개업 준비를 마쳐두려면 지나온 두 달보다 더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정말 미친 듯이 움직여야 했다. 무엇보다 음식을 만들어낼 주방이 급했다. 미리 선발해둔 7명의 직원 중 3명을 주방 직원으로 배치하고, 혹시 또 변수가 생겨 개업 날 돌아오지 못할 것에 대비해 우리 대신 얼마간이라도 주방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시가 아쉬운 상황이다 보니 주방에서는 매일매일 사투가 벌어졌다. 조급해진 나와 아내는 온종일 시장과 주방을 번갈아 가며 뛰어다녔다. 특히 주방일은 아직 언어가 부족해 러시아어나 카자흐어로 설명이 안 되니 오로지 행동으로 시범을 보여 줘야만 했다. 아내가 종일 하는 말이라곤 딱 한 마디였다.


봇 딱! 봇 딱! (Boт так -이렇게!) OK?


사실 한식을 경험조차 못 해본 사람들에게 이 짧은 시간에 완벽하게 한식을 준비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에게 요리를 가르치듯 인내가 필요했고, 수없이 실수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나서야 비슷한 맛과 모양의 음식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다급한 마음을 통감한 걸까? 직원들은 스스로 메모하고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열성적인 가르침을 따라와 주었고, 그런 그들이 너무도 고맙게 느껴졌다.


언니, 걱정하지 마세요!


직원들은 잘할 수 있으니 걱정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키고, 이 추운 날 먼 길 다녀와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냐며 위로하기도 했다. 그렇게 불과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우리는 급격히 한 팀이 되어 갔다.


나는 아내를 도와 튀김 실에서 주방 직원을 가르쳤는데, 정작 나부터 뜨거운 기름을 다루는 일이 손에 익지 않아서 매번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한 번은 물기 많은 재료를 고온의 기름에 투하해서 미친 듯이 사방으로 튀는 기름 때문에 곁에 있던 직원과 같이 대피하기도 했고, 또 한 번은 기름을 불에 올려두고 온도가 오를 때까지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불을 낼 뻔도 했다. 소소한 화상은 두말할 것도 없다. 조리 시범을 보일 때 곁에서 배우며 지켜보던 여직원은 내가 실수할 때마다 연신 풋! 풋! 하면서 얼굴을 가리고 웃어댔다. 그나마 이때가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웃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끝나지 않은 하루

하루가 왜 그리도 짧은지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해는 저물어 갔고, 밤이 오면 어김없이 골방에 앉아 러시아어 책을 폈다. 곧 카자흐스탄 - 키르기스스탄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에 잠을 잘 수 없었다. 아무래도 국경을 잘 넘고 키르기스스탄을 무탈하게 다녀오려면 최소한 방문 목적, 기간, 머무는 곳 등 중요한 몇 마디라도 공부해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정말 하루가 25시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딱 한 시간만 더 있었으면 하고 수없이 마음이 일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아쉬워지는 밤은 더 빨리 지나갔다. 잠도 깨고 머리도 식히려고 커피 한 잔 들고 집 앞마당에 나가 하늘을 보면, 추울 겨울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얄미울 정도로 별들이 총총했다.


12월 중순, 겨울의 문턱.

여름 열기가 아직 식기 전에 이곳에 왔는데 지난 석 달 가까운 시간은 다 어디로 갔는지 벌써 입김이 났다.

모든 게 꿈만 같다.

여기에 온 것도.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도. 키르기스스탄에 비자를 받으러 가야 하는 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상황도...




키르기스스탄으로 가는 카레이스끼


키르기스스탄으로 떠나기 전날 저녁, 날이 흐리고 구름이 몰려오는 걸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푼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짐을 다시 주섬주섬 챙겨서 수화물 가방을 챙기고 있자니 어찌나 기가 막히는지... 몇 년은 이 가방에 짐을 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다. 내일 국경은 어떨지... 몰려오는 구름처럼 태산 같은 걱정이 밀려왔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아침이 되니 발목 위까지 쌓였다. 폭설같이 내리던 눈은 잦아들었지만 아직도 눈이 날리고 있다. 한여름에는 영상 50도까지 올라간다더니 겨울에는 이렇게 춥고 눈이 내린다. 그것도 폭설로!


큰딸은 아침부터 눈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더니 앞마당으로 뛰어나가 눈밭을 헤집고 다녔고, 아직 어린 둘째는 밖으로 못 나가게 한다고 울고 보챘다. 오늘은 쌓인 눈도 야속하다. 휴... 저 어린것들을 데리고 24시간 기차 여행을 하려니 한숨부터 나왔다.


출발 준비로 부산한 아침.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온통 하얗게 눈 덮인 도시를 가로질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하얀 눈만큼이나 머릿속도 하얀 느낌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창가만 바라봤다. 마치 정신 줄 놓은 사람같이...


아... 꿈이 아니겠지?
참, 여권은 잘 챙겼나?


애써 괜찮은 듯 기차에 오르며

잘 다녀오라고 인사하는 싸샤에게 잘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키고 기차에 올랐다. 객실에 개별 문이 없는 복도 개방형 3등급 열차 칸. 문이 없으니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마다 쳐다봐서 불편하겠지만, 그나마도 연말이라 표가 거의 매진되어 어렵게 구한 표였다. 아래쪽 침대칸에는 아내와 장모님이 각각 한 명씩 딸을 맡고 자리를 잡았다.


장모님은 여느 때와 같이 출발 전 기도를 시작하셨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죄송했다. 장모님은 지난 석 달 동안 개업 준비와 여러 문제로 분주한 우리 부부를 대신해 애들을 봐주시느라고 반 감옥생활을 하셨다. 한국에 계셨으면 다른 가족들과 편안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보내셨을 것이다. 그나마도 걱정하실까 봐 늘 잘되고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이렇게 같이 기차에 오르니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다.


경적을 울리며 천천히 출발하는 기차. 밤새 기차 위에 두껍게 쌓였던 눈이 녹아내리면서 골골이 흐르는 차창 너머로 벌써 익숙해진 도시가 조금씩 멀어져 갔다.


전역하기 전부터 미리 거주권을 준비했더라면...
투자에 올인하지 않고 예비비를 좀 더 남겨두었더라면...
그래서 이런 우발상황에 대처를...


여러 생각이 질서 없이 떠올랐다 지나갔다. 카자흐스탄으로 온 걸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런 우발상황과 또 그에 대처할 충분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게 아쉬웠다. 전체적인 방향은 잘 잡았는데, 적절한 방법과 순서를 잘 택하지 못한 것 같다. 비자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고 걱정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해외 생활 경험이 없다 보니 비자의 중요성을 너무 간과했다.


이제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다. 눈밭이든 진흙탕이든 어떻게든 지나가야만 한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길이다. 어떻게든 헤치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항상 선두에 서야 한다. 내가 포기하면, 그 순간 이 모든 것은 거기서 끝이다.


이번에 고생하고 잘 지나가면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다이아몬드 셋 - 대위 계급장이 당당하게 달려 있었던 넓은 어깨에 어느새 내려앉은 고단한 운명, 그 중한 무게를 희망에 기대어 애써 떨쳐내려 했다.


아침까지 조금이라도 더 준비해놓고 떠나려고 부산하게 움직였던 아내는, 막내를 끌어안고 어느새 객실 벽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장모님 품에 안긴 첫째는 눈을 보니 이승과 천국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덜컹거리는 기차 바퀴 소리를 자장가 삼아.


어쨌거나 석 달 만에 휴식이구나. 별로 반갑진 않지만...


몸이 피곤하고 마음은 불안하지만,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워 국경까지 공부라도 하면서 가려고 러시아어 회화책을 꺼내 들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말처럼, 몸의 피곤함에 의지는 힘을 내지 못했다. 마치 온 세상이 눈꺼풀 위에 앉은 느낌이었다. 잠을 깨려 시선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끝도 안 보이는 한동안 낭만 넘쳤던 광활한 들판에 다시 눈이 거칠게 날리기 시작했다.


아무 문제없겠지?


문득 이런 겨울에 기차에 실려 강제 이주됐던 고려인 이야기가 떠올랐다. 카레이스끼... 그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당장 앞일을 모르는 내게도 오만가지 걱정이 쏟아졌다. 폭설이라도 기차는 갈 수 있겠지? 국경은 무사히 넘을 수 있겠지? 비슈케크에서 숙소까지는...? 비자는...? 답도 없이 늘어지는 걱정들. 그러다 객실 안으로 들어오는 온풍과 난방 열기에 얼었던 몸이 녹더니 잠이 들어버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비슈케크행 기차 안에서


느리게 가는 세상

기차가 참 느렸다. 몇 시간은 잠이 든 것 같은데, 눈 덮인 들판을 지나는 창밖 풍경은 변한 게 없었다. 국경은 아직 먼 것 같았다. 자정이나 되어야 국경에 도착할 테니까. 몇 시나 됐는지 보려고 휴대폰을 꺼냈는데 통신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오랜만에 본 안테나 X 표시. 여긴 통신 불가지역이다. 군 초년 시절 야외 산악훈련 때 말고는 참 오랜만이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래층을 내려다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뒤엉켜 아직 잠들어 있는데, 그 행색이 딱 난민이었다. 아내는 좀처럼 낮잠을 자는 사람이 아닌데 저렇게 곯아떨어진 걸 보니 얼마나 피곤했을까 싶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지금은 그저 함께라는 것만이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일 뿐이었다.


꼬르륵...


어이구... 참 웃긴 게 이런 상황에서도 배는 고프다. 단잠을 자고 있는 아내를 깨울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아내가 눈을 떴다.


완전히 기절하듯 자더니 좀 개운해요?


몸을 일으켜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눈이 잘 떠지지 않는지 잠시 벽에 기대어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코를 너무 골아서 잠을 못 이루다가 좀 전에 잠들었다고 했다. 의도적이지 않았지만 괜히 미안했다.


집에서 싸 온 온 김밥 몇 줄과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추억의 도시락 라면을 챙겨 간단한 저녁을 준비했다. 기차 칸마다 온수통이 있어서 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으러 복도로 나가니, 차장이 뭐라고 하는데 알아듣지 못했다. 느낌에 라면 국물을 잘 처리하라는 것 같아서 알겠다고 하고선 돌아서는데 술 냄새가 살짝 스쳤다. 차장이 그사이 술을 한잔 한 모양이었다. 러시아계 혈통으로 보였는데, 실제 현지에 사는 러시아인 중에는 알코올 의존증인 사람들이 꽤 많았다.


기차는 그냥 가지 않는다

기차 객실 내 좁은 식탁에 모여 앉아 간단히 챙겨 온 저녁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경찰 두 명이 우리 객실 문을 열었다.

"빠스뽀르트!(여권!)"

여권 검사한다고 좀 퉁명스럽게 여권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

"까레야? 시 베르나야?(Северная Корея - 북한)"

5명분의 여권을 받아 들고선 첫 장을 펴더니 북한 사람이냐고 물었다.

"니에트! 유즤나야!(Нет, южная-아니요, 대한민국이요.)"


여권 표지에 분명 'Republic of Korea'라고 대문짝만 하게 적혀있는데, 시비를 거는 건지 농담을 하는 건지 진의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는 이어서 한마디 더 했다. 발음도 아주 정확하게!


김정은?


어찌 된 게 우리나라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김정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아무래도 농담인 것 같아 김정은은 북한 사람이고, 북한 대통령이라고 하니 경찰이 피식 웃었다. 왠지 비꼬는 듯한 어투와 태도에 조금 기분이 상했다.


여권 확인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관이 칸 앞에 섰다.


"다들 밖으로 나와 주시오."


우리 칸 앞에서 차장과 얘기를 나누더니, 복도로 나가 있으라고 했다. 애들을 안고 복도로 나가니, 아래 칸 침상 아래쪽에 있는 짐칸부터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수화물 가방을 꺼내 수화물 가방을 꺼내 열어보라고 했다.


"옷 들뿐입니다만..."

"그래도, 여세요."


수화물 가방을 뒤져도 수상한 것을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이번에는 객실 천정의 형광등을 뜯어 분리했다. 그 위쪽 어두운 공간까지 플래시를 비추 고선 긴 막대를 넣어 이리저리 쑤셔댔다. 뭐 하나라도 걸리라는 심보 같았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니 다시 닿고 나갔는데, 복도에 서서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대로 다음 열차 칸으로 넘어갔다. 이 칸에서는 우리 객실만 자세하게 검사하고 간 것이었다.


아, 씨... 외국인이라고 ‘특별대우’하는 건가?


국경, 드디어 올게 왔다

일련의 썩 달갑지 않은 점검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는 카자흐스탄 국경에 도착했다. 차장이 객실을 돌아다니며 "국경입니다. 여권 준비하세요!" 라며 깊이 잠든 사람들을 깨웠다.


"아, 당신들은 카자흐스탄 거주권이 있습니까?"


없다고 하니 밖에 있는 국경 사무실로 가서 출국심사를 받고 오라고 했다. 다행히 일행 대표인 나만 여권을 다 모아 가도 된다고 해서 여권을 챙겨 나섰다. 기차 밖을 나오니 눈 덮인 기차역 위로 살을 에는 바람이 몰아쳤다. 으흐흐... 옷 사이를 파고드는 추위에 절로 신음이 났다. 앞서 국경 사무실로 가는 사람들을 따라 낡고 허름한 국경 사무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국경 사무실에 들어서니 먼저 온 외국인들이 있어 그 뒤로 줄을 섰다. 오래된 석유난로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몸을 녹이고 있었는데, 나도 팔을 뻗어 손을 좀 녹이면서 출국심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눈치를 살폈다. 처음이라 절차를 잘 모르니 이렇게 뒤쪽에 서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앞선 사람들을 보면서 준비하면 되니까. 대부분 별문제 없이 출국 심사를 마치고 하나둘씩 기차로 돌아갔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다섯 명의 여권을 제출하니 여권을 차례로 살펴보더니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지 물었다. 정말 모르기도 하거니와, 괜히 조금이라고 안다고 했다가 이것저것 물으면 더 곤란해질 것 같아, 잘 모른다고 하니 초보 수준의 영어로 냉랭한 어투로 질문했다.


"키르기스스탄으로 가는 목적이 뭡니까?"

"비슈케크로 가족 여행 갑니다."


비자를 갱신하러 간다고 하면 왠지 꼬투리를 잡을 것 같아 관광목적으로 대답했다. 담당자는 뭔가를 찾는 듯 여권을 반복해서 앞뒤로 넘겨보았다.


"비자는?"

"한국인은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습니다."


육로로 국경을 넘는 한국 사람이 많이 없어서 그런지 무비자 방문 규정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출국 도장을 찍어 줄 생각은 않고 기다리라고 하더니 무전기로 누군가를 불렀다. 왜지? 왠지 초조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계급장 크기만 봐도 알 수 있는 더 높은 직급의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왔고, 우리 여권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여권을 한 장씩 넘기면서 직원들끼리 카자흐어로 계속 얘기를 나눴고, 그사이 다른 외국인들은 출국심사를 모두 마치고 기차로 돌아갔다. 이제 나만 외로이 남았다.


그사이 기차에 올라 출국 심사했던 다른 국경 직원들도 하나둘씩 돌아왔고, 좁은 사무실이 일곱 명 가까이 되는 국경 직원들도 가득 찼다. 덩치 큰 군인들 사이에 나만 홀로 있으니 왠지 위압감이 들었다.


"유즈나야 까레아? (Южная Корея- 대한민국)"


좀 전에 들어온 높은 직급의 직원이 키르기스스탄 방문 목적과 비슈케크에서는 무엇을 할 건지 다시 물어봤다. 분명 좀 전에 다 설명했는데 똑같은 질문으로 마치 ‘거짓말 탐지기’처럼 나를 심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짜증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지만 표현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불리하니, 꾹 참고 말을 줄이는 편이 낫기 때문이었다.


"출국 도장을 받으려면 돈을 내시오."

"네? 돈이요?"


출국 도장받는데 돈을 내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법규를 위반한 것도 없고, 왜 돈을 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원래 돈이 드는 거요. 몰랐소?"

'아... 카자흐스탄!'


당신들 사람 잘못 본거야

너무도 태연하고 뻔뻔하게 원래 도장받는 데 돈이 든다고 했다. 그제 서야 다른 외국인들이 다 나갈 때까지 시간을 끌면서 일부러 나만 남겨 뒀다는 게 직감됐다. 한 사람당 카자흐스탄 화폐로 500 텡게씩 총 2,500 텡게를 요구했는데, 한화로 대충 환산해 보니 이만 원 정도 되는 돈이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니 그냥 줘버리고 빨리 끝낼까 싶기도 했는데, 대놓고 돈을 요구하니 괘씸해서라도 선뜻 주기가 꺼려졌다. 그때 다른 직원이 곧 기차가 출발할 거라며 빨리 돈 내고 가라고 바람을 잡았다. 그것도 기분 아주 나쁘게 웃으면서.

정말 이건 아니다.


출국심사에 비용이 든다는 법이나 규정 서류를 보여 주시오.
거기에 돈을 내야 한다고 쓰여있다면 돈을 내겠소. 그렇지 않으면 못 내겠소!


원래 이렇게 까지 용감할 의도는 없었는데 흥분한 나는 이미 용감해져 버렸고 "그냥 가시오"라는 그들의 대답을 바라고 있는데, 옆에 있던 군인들이 격앙된 톤으로 항의하는 나를 쳐다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아! 진짜 이 인간들!


왠지 오기가 생겨서 끝까지 버티고 서있으니, 끝내는 카자흐스탄으로 다시 돌아올 거냐고 물으면서 그때 또 보자는 표정으로 도장을 찍었다. 싸샤가 출국 도장받으면 출국 날짜가 제대로 찍혔는지 꼭 확인하라고 했는데, 그거 확인한다고 서 있으면 또 어떤 꼬투리 잡을지 모르니 얼른 여권을 챙겨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늦었다 싶어 급히 열차 칸으로 뛰어오르니 차장이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며 은근히 불평했다. 정말 이곳에 내 편은 아무도 없다. 단 한 명도 없다.


가장 늦게 기차에 오른 나에게 아내가 걱정 어린 눈빛과 어투로 말을 건넸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다른 외국인들은 벌써 올라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문제? 아... 많지. 돈을 요구하더라고. 안 주긴 했지만."

"그래서? 그냥 왔어요?"

"아니! Thank you!라고 말해주고 왔지."


그나저나 사흘 뒤엔 다시 국경을 다시 넘어와야 되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저 친구들은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노트에 흘려 쓴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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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설움.

때론 불의도 참아야 한다. 자존심도 잠시 묻어 두어야 한다.

자랑스러운 대한국인이지만 여기선 그저 이방인일 뿐 특별한 대우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다.

어쩌면 제일 먼저 버려야 할 건 이곳에선 통하지 않을 ‘무용한’ 자존심이다.


특히 현지인이나 경찰들과는 마찰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뭐라도 꼬투리 잡히면 손해다.

최악의 경우 즉시 추방당할 수도 있다.

그럼 정말 돌이킬 수 없다.

'해외 생활 드림'은 참 좋았는데 막상 살아보니 현실은 참 녹록지 않다.


Pride comes before a fall.

큰 실수(실패) 앞에는 자존심이 있다.

- 스페인 속담 -


자존심은 조금 줄이고, 자신감과 자존감은 사수하라!

- D. 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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