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문 안에 열린 마음

엘리베이터 안의 작은 보물

by EveningDriver

배달지 아파트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문득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맞는 동으로 들어온건가?’
분명히 입구에서 동 번호를 확인하고 들어왔는데,
숫자를 제대로 봤던 건지 갑자기 다시 확인하고 싶어진다.

GPS는 엘리베이터 안에선 생각보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파트 외벽에는 동 번호가 보이지만,
막상 들어오고 나면 건물 내부에선 표시를 찾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처음엔 엘리베이터 내부 게시판이나
안내문 어딘가에 동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으면
조용히 당황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몇 번은 다시 1층으로 내려가
건물 출입구에 적힌 동 번호를 확인하고
다시 올라온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괜히 머쓱하고, 시간도 아깝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당황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나는 엘리베이터 안의
작은 스티커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손대지 마세요’, ‘기대면 추락 위험’ 같은 경고 스티커에
누군가 펜으로 적어둔 메모.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07동. 2호와 3호는 왼쪽, 1호와 4호는 오른쪽’.


누가 봐도 배달하시는 분이 적어놓은 흔적이다.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곧 이 스티커들이 엄청난 정보의 보물창고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층을 누르고 스티커부터 확인한다.
내가 이 동에 제대로 들어왔는지,
내려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물론 마음 한켠은 여전히 무겁다.
엄연히 말하면 주민들의 공간에
허락 없이 표시를 남긴 셈이니까.
배달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올 때쯤엔
그런 생각도 스르륵 사라지곤 하지만.

그런데 며칠 전, 그런 내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주는 단지를 만났다.

엘리베이터 안에 깔끔하게 정리된 안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손글씨도, 급하게 적은 흔적도 아니었다.
분명 아파트 관리 측에서 준비해준 안내였다.

오... 잠깐 멈춰 서서 그 스티커를 한참 바라봤다.
이건 분명 누군가의 고민과 배려의 결과일 것이다.


처음엔 배달하시는 분들 중 누군가가
어색하게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레 시작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다
관리소에 제안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는
그 고민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남겨놓은 작은 흔적이
이 공간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매일 무심코 지나쳤던,
잠시 머무는 이 작은 공간 안에도
누군가의 마음과 배려,
그리고 조용한 응원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 문이 순간,
내 마음엔 문 하나가 더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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