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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May 30. 2019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다

길 위의 학교... 셋넷학교 이야기 (7)


학교를 시작하기 전 이야기를 소상하게 썼던 이유

셋넷이 경험한 대안교육은 시행착오와 과정적 배움이다. 그래서 나처럼 결점이 가득하고 전공이 아닌 사람도 감히 할 수 있었다. 내가 겪었던 어떤 사랑들과 뜻밖의 삶들도 우연히 내게로 왔고 그저 소중히 품었을 뿐이다. 혼자 의도하고 계획하고 독단적으로 만든 건 없었다. 그래서 선지적(先知的) 지도자가 어떤 기준을 세워 옳고 그름을 가르는 교육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적으로 건강한 교육과 건강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건강한 교육은 어떤 이유로도 수단일 수 없고 그 자체가 온전한 목적이어야 한다. 틀림을 바로잡아 올바름으로 탈바꿈시키는 교육 증거 수단으로 아이들을 대상화할 수 없다. 나쁜 인간을 훌륭한 사람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은,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이 존재한다고 믿고 개념화했던 계몽주의 시대나 군사정권 시절 남산 안기부 취조실에서 강제했던 차별적 폭력이지 교육이 아니다. 탈북 청소년을 불쌍한 존재로 여기고 교육을 통해 훌륭한 민주시민으로 만드는 그 어떤 의도나 시도를 셋넷은 거부한다.    

 

누구나 자신의 신성함과 거룩함을 품고 있지만 다만 가려져 있을 뿐이다. 건강한 교육은 개개인에 숨겨진 절대적 유일함과 잠재적 힘을 스스로 깨치게 돕는다. 가려져 있는 장애들을 거둬내는 작업을 ‘따로 또 같이’ 즐겁게 해 나가는 일상 과정에서 개인들은 맑고 착한 기운을 나누며 문득 건강해진다. 건강해진 개인들이 자기 일상의 생존조건에서 사람들의 그물망을 엮어나갈 때 보다 건강한 사회를 꿈꿀 수 있다. 건강함이 게으름과 타락으로 나빠질 수 있겠지만 스스로의 의지와 정성에 따라 언제라도 회복될 수 있다. 다만 회복되는 것이지, 전혀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되는 건 아니다.     

  

살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머리를 굴려 안전하고 무난한 n분의 1로 타협하거나, 생애 마지막 선택처럼 벅차게 끌어안을 것인지는 선택 앞에 선 사람 몫이다. 그 역시 혼자만의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셋넷을 세우는 과정을 통해 배웠다. 우린 모두 신비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향해 이어진 선들을 통해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셋넷학교가 세워지기까지 예비되었던 시간과 공간들은 개개인의 신성함과 거룩함을 교육의 온전한 목적으로 했다. 그 배움 속에는 시행착오와 수많은 우연들이 연결된 정답고 치열한 몸의 언어들로 가득하다.  


셋넷은 부자학교다. 세속의 부자는 집착과 탐욕으로 삶을 빈틈없이 채우지만, 행복한 부자는 배움과 사랑을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행복했다. 이 행복을 선사한 성스러운 우연들과 뜻밖의 사람들이 참 고맙다. 부자 친구들 덕분에 내 삶도 어느덧 부자가 되었다.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셋넷을 통해 깨닫는다.     


2007년 가을, 남북 청소년 53명이 함께한 네팔 국제봉사활동. 카트만두 교외 모노하라 학교 봉사 후 운동회.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날에 흘린 눈물

2004년 4월 똘배학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검정고시를 마치고 학교를 떠나기 전, 아이들과 서해안 바닷가로 놀러 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그마한 분교 운동장에서 옛날 운동회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밀가루를 얼굴에 덮어쓰고, 서로 다리를 묶고 절뚝거리며 달리는 내내 티 없는 웃음이 운동장을 바람처럼 떠다녔다. 숙소로 돌아와 시끄럽게 저녁을 해 먹고 올망졸망 둘러앉았다. “오늘 운동회 어땠니?” 재미있었다거나 즐거웠다는 대답을 기대하며 물었다. 그러자 홀로 탈북한 용택(가명)이가 태어나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며, 북에 두고 온 동생이 생각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내 기억 속 용택이는 키가 150센티가 될까 싶을 정도로 작았고, 고향에서 어릴 적 부모를 모두 잃었다. 부모 사랑을 받으며 어리광 피울 나이에 세상 속에 부대끼며 험한 일들을 많이도 당했지만 하나뿐인 동생을 챙기며 힘겹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용택이가 하는 일이란, 주로 곡식창고를 털거나 허름한 창고 고철들을 몰래 뜯어서 팔아넘기는 일이었다. 

동생을 챙길 겨를 없이 급하게 쫓기다 두만강을 건너야 했다. 용택이는 동생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남한에서의 풍요로운 삶 앞에서 방황하며 아픈 기억으로 뒤척이고 있었다. 평소 그런 내색 하지 않던 용택이 거친 몸속에서 작은 꽃 하나가 피어났고, 그 여린 향기에 취해 가슴이 먹먹해졌다.   

  

서울에서 평양의 달을 찾는 아이들

2010년 무렵, 탈북 청소년들이 한국에 들어와 정착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대다수 탈북 청소년은 서울과 수도권에 산다. 하나원에서 전국 지역으로 거주지를 배당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당된 집을 비우고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 친척 지인들 집에 얹혀살면서 공부하고 돈을 번다.(탈북 청소년 학교들이 경쟁적으로 기숙사를 마련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결국 지역에 사는 탈북 청소년들을 서울로 끌어들이게 되는 강력한 유인 요소가 되고 말았다.)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들이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시간제 일자리를 구하거나 단순 돈벌이를 찾기도 훨씬 수월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의 목표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남한에 와서 보고 느낀 강렬한 인상이 뭐였냐고 물으면, 서울이고 대학생이라고 말한다. 북조선에서는 아무나 평양에 살 수 없기에 한이 맺혀 남조선 평양인 서울에서 살고자 한다. 꿈의 도시 서울에서 지켜본 남한 또래 친구들이 모두 대학 진학에 자의 반 타의 반 미쳐 있는 모습을 보고 이유도 모른 채 대학 진학을 삶의 목표로 정한다. 결국 남한사회 병든 모습이 이방인들에게 쉽고도 강력하게 전염되어 초기 적응과정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탈(脫) 서울 탈(脫) 대학을 결심하고 운영위원과 자원교사들의 우려와 만류를 뒤로 한 채 2011년 겨울, 7년 동안 셋넷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당산동 학교를 떠나, 아는 이 하나 없는 한반도 분단지역 강원도 원주로 학교를 옮겼다.       


2012년 셋 넷 창작극 5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 홍대 소극장공연. 어린시절 아름다웠던 기억들로 공연을 시작했다.      


원주로 옮긴 뒤 2014년 2월 셋넷학교 열 번째 졸업식이자 원주에서 첫 번째 졸업식을 감격 속에서 맞았다. 서울과 대학에 갇혀있는 탈북 청소년들 인식이 생각보다 견고했고, 원주로 함께 온 아이들도 주말에 서울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고 온 뒤엔 하나둘씩 말도 없이 사라져 학교 운영에 고전하고 있던 때라 감회가 깊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졸업식 주인공 순이(가명)가 생애 첫 졸업을 하면서 울먹였다. 

‘저는 고향에서 초등학교 졸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졸업식을 하는 날 아버지가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못 가고, 졸업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채 초등학교를 마쳐야만 했습니다. 가난 때문에 중도에서 포기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벌써 6년이 되었습니다. 엄마를 보지 못한 채 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미워하고 원망하던 부모를 보고 싶어서 혼자 몰래 소리 내어 울어도 보았습니다. 졸업식장 저 뒷좌석에서 내가 추는 춤과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엄마가 참 미안하다, 정말 장하구나,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이 부르시는 <라구요>라는 노래를 듣고는, 남자 친구 철이가 하늘나라로 간 아빠 생각이 난다며 울었습니다. 홀로 탈북한 철이는 남한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인 없는 남자 친구가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울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어쩌지 못하고 같이 울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웁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통일이 언제면 될까? 얼마나 기다려야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내 생에 가장 소중한 졸업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날이 와야 비로소 제 졸업식이 끝날 것입니다.’   

 

통일이 오는 그날까지 끝나지 않을 순이 졸업식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며 셋넷에서 우연히 만났던 수많은 순이들을 떠올렸다. 아이들 대부분은 풍족하고 안전한 남한사회에서 행복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을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개인의 선택과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북한지역을 탈출하여 배고픔과 공포에서 벗어난다 해도, 헤어날 수 없는 어떤 기억들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던 것이다. 결코 끊어낼 수 없는 어둡고 아픈 과거 때문에 지금 여기에 머물지 못한 채 기약도 없이 온몸으로 아파한다. 


2016년 1월 원주 셋넷 학교 11회 졸업식. 가운데 졸업가운을 입은 주인공 봄희와 7년간 헤어져 생사를 몰랐던 엄마.


셋넷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봄희는 2014년 초에 원주 셋넷학교에 왔다. 국정원과 하나원을 거치자마자 바로 왔으니까 셋넷이 봄희 남한 살이 첫사랑이다.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스물네 살 또래들처럼 옷치장과 얼굴 가꾸기를 외면한 채 모든 면에서 악착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향에서는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해 입학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기초학습능력을 보여주던 봄희가, 불과 3개월 만인 그해 4월 중학교 학력인정 검정고시(고검) 시험에 높은 점수로 합격해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지독한 집중력과 노력을 보여준 봄희는 대검에 합격한 뒤 다음 해 외국어대 중문과에 합격했다.   

 

모든 탈북자들이 그렇듯 봄희도 국정원에서 일정 기간 심사를 받았다. 자신이 순수한 탈북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왔던 모든 과정과 신상에 대해 낱낱이 자백해야만 하는 고단한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봄희는 국정원 심사관으로부터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된다.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엄마가 살아 있고 이 곳 남한에 먼저 와 있다는 거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났지만 불행하게도 중국 땅에서 엄마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 뒤 7년 동안 생사여부를 알지 못해 엄마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로지 생존에만 몰두해왔는데 극적으로 잃었던 엄마를 되찾게 되었다. 그런데...

봄희의 놀라운 삶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셋넷에 온 지 불과 1년 뒤쯤 국정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친오빠가 지금 국정원에 와 있다는 거다.     


“오빠? 정말 오빠라고요? 21년 전, 제가 4살 때 고향에서 헤어진 뒤 생사여부조차 전혀 몰랐던 오빠가 지금 남한에 와 있다는 겁니까?”     



* 제목 사진 - 2016년 셋넷 창작극 10 ‘철망 앞에서, 하나를 위한 이중주’. 베를린공연 떠나기 전 한국 여해문화공간 공연장면. 탈북 후 흩어지는 가족들이 질긴 끈으로 연결되어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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