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박상영 Jun 13. 2019

제 친구들과 인사하실래요?Ⅰ

길 위의 학교... 셋넷학교 이야기 (8)


박,망채

셋넷 친구들은 서로 망채란 표현을 쓴다. 아이들 모두 이해하는 건 아니고, 정확한 연원은 모르겠지만 함경도 연안지역 사투리나 속어가 아닐까 싶다. 조선조 말 경상도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썼던 (보리) 문둥이가 낯선 사람에게 쓰이면 모욕적이지만 자신들 사이에서는 매우 친밀하고 격 없는 사이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는데, 망채란 표현도 문둥이란 말이 가진 이중적 뜻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호남지역 바닷가에 망둥어가 있는데 아이들이 묘사하는 망채 설명을 들어보면 망둥어와 매우 흡사하다. 툭 튀어나온 눈과 짧은 다리에 작은 꼬리를 지니고 바다와 육지 모두에서 적응한 끈질긴 생명체다. 셋넷에서 학생과 교사들이 자연스레 부르는 내 별명이 박망채다. 초창기 함께했던 아이들이 붙여준 것인데, 나를 자신들 세계에 받아준 것이라 더없이 영광스럽고 소중하다.    

  

한 없이 외로웠던 시절

북한에 사는 아이들보다 남한에 살게 된 탈북 아이들이 훨씬 더 행복할 거라는 당연한 예상을 하고 아이들을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 외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주어진 삶과 선택하는 삶의 경계에서 헤매며 외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장군님과 당이 직장과 결혼과 집을 해결해 주는 나라로부터, 아무런 준비 없이 스스로 선택해야만 살아남는 사회로의 급격한 이주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비빌 언덕이 없다. 선택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와 사람의 그물망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는 정보화 사회다. 정보화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 찾아낸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인적·물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선택을 해야만 살 수 있는 남한이라는 낯선 사회에서 선택의 어려움을 어디서도 해소할 수 없고, 누구와 상의할 수 없어서 한없이 왜소해지는 풍요로운 남한 사회에서 탈북 청소년들은 외로워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곧잘 듣던 말이 있다. ‘니가 돈을 벌어 오느라 스트레스를 받니, 먹을 것을 마련하느라 근심을 하니, 살 집을 장만하느라 전전긍긍하니,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하라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니?’ 한없이 외로웠던 시절이었다.     


유미(가명)의 반쪽짜리 생일파티

열아홉 살 유미는 2003년 똘배학교를 시작할 때 인연을 맺었던 아이다. 중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고검)를 준비 중이었는데, 입국초기 탈북 아이들과 달리 말이 어눌하지 않았고 남 눈치 신경 쓰지 않은 채 스스럼없이 자기표현을 해서 눈에 띄었다. 

스무 살이 되던 날 생일파티에 20여 명 또래 친구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초대받았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어갈 무렵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초대받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남한에 온 지 2년이나 넘었고, 활달한 성격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지녔던 유미 생일파티에 남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이 아이의 남한 적응 생활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지나(가명)가 ‘탈남(脫南)’한 까닭

지나는 2004년 봄 똘배학교 시절 만났고, 거리로 쫓겨나 낙산공원 비탈길 반지하에서 셋넷학교를 시작하면서 인연이 깊어졌다. 18살 지나는 나이에 비해 너무 작았고 여렸고 약했다. 조그만 소리에도 놀랐고 심심한 자극에도 눈물을 글썽였는데, 탈북과정에서 네 번이나 붙잡혔다 풀려났던 몸과 마음의 구겨진 기억 때문이란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기나긴 여정/박상영 촬영 연출, 셋넷 영상작품 1, 2005) 아주 가끔 놀라게 했는데, 멀쩡하게 놀다가도 이유 없이 혼절하곤 해서 둘러업고 황급히 병원을 가야만 했다. 그랬던 지나가 웃음을 되찾고 친구들과 어울려 농담하고 장난치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서 교사들을 감동시켰다.   

  

지나는 빠르게 치유되었고 자기 미래를 구체적으로 탐색해 나갔다. 성격상 내성적이고 꼼꼼했던 지나에게 한복 디자이너 길을 알려주었고, 영향력 있는 멘토를 소개해 주었더니 너무도 기뻐했다. 아직은 사람과 어울리는 일이 부담스러웠던 차에 자신만의 조그만 방에서 예쁜 옷들을 만들어 내는 직업이 편안하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나는 2006년 3월, 옷 만들기를 포기하고 숙명여대 외국인 특별전형으로 입학했다. 목숨 걸고 남한에 온 만큼 집안에도 대학 나온 자식이 꼭 있어야 한다고 강경하게 요구하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지나는 대학에서 공부하기에는 기초학습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고, 부모 강권으로 선택한 무모한 진학 탓에 낙엽처럼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1학년을 마친 뒤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살기 좋은 나라로 데려온 아버지에 대한 은혜와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원치 않았던 길로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던 지나는, 지금 한국에 없다.     


2011년 셋넷 창작극 4 ‘이제, 그 풍경을 사랑하려 하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퍼포먼스로 표현했다. 


내 고향은 강원도랍니다. 

탈북 청소년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어색해하고 곤란해하는 것이 호칭 문제다. 뭐라 불러야 마땅한가? 탈북자? 북한이탈자? 북한 출신? 새터민? ‘탈’자가 들어간 명칭은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탈북자들이 상당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여러 명칭들로 호칭되다가 통일부 공식 공모를 통해 새터민으로 통일이 되었다. (통일부 공식문서에는 북한이탈주민, 북한이탈 청소년으로 표기된다.) 하지만 탈북 청소년들은 원주민과 분리시키는 느낌을 주는 이 명칭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문제는 호칭이 아니다. 셋넷학교나 기타 탈북 청소년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다 대학을 진학할 경우, 거의 대부분 탈북자 신분을 숨긴다. 중국 연길에서 유학을 왔다거나 사투리 발음이 비슷한 강원도를 고향이라고 대충 얼버무린다. 그러다가 학점이 나쁘거나 힘겨운 상황에 처할 경우, 탈북자 신분을 십분 활용하여 도움을 받는 슬픈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결국 정체성 문제인데, 탈북 청소년들은 아직 서툴고 불안하기만 하다. 1차적으로 정체성 문제는 자신들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만, 정체성이 형성되는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할 때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아직도 탈북자라면 간첩으로 단정 짓거나 이상한 동물 보듯이 바라보며, 무례한 태도들을 서슴지 않고 드러내는 몰상식한 남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내 또래 세대들이 초등학교 시절 열심히 그렸던 반공 포스터에는 피를 뚝뚝 흘리는 온갖 기괴한 괴물들이 난무했다. 남과 북이 체제경쟁에 열을 올리며 지속적으로 주입시켰던 잘못된 반공교육 부작용은 한반도 평화와 공존으로 가는 길을 험난하게 한다.    

 

최신형 핸드폰으로 무장한 아이들  

북한 생활이나 탈북과정 중에 셋넷 아이들에게 저축이라는 개념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그날 '꽃제비' (조중 국경지역 북조선 청소년 거지를 지칭하는 단어) 생활로 생존하면서 이리저리 떠돌다 한동안 어렵사리 끌어 모은 돈을, 집으로 가져가다가 국경경비대에게 몽땅 털리고 고문을 받으며 아이들은 절약과 저축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를 온몸으로 실감했다고 한다. 

그러던 아이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큰돈(한국 정부에서 제공하는 정착금)이 생겼고 여기저기 광고에서는 현란한 문구와 선정적인 몸짓으로 소비를 조장한다. 아이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자신들 분에 넘치는 고가 물건들을 홀리듯 사버리는 것이다. 최신형 핸드폰을 들고 과시하는 아이들에게 실망하고 외면하기 전에, 아이들이 그동안 처했던 환경과 극한 조건들을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탈북자에 대해 미디어를 통해 과장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입력된 정보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품고 있던 편견들을 기꺼이 인정하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마음과 태도가 중요하다. 


아이들은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자본주의를 준비하고 배운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자본주의 속으로 던져진 존재들이다. 이들에게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경제개념들과 마인드를 천천히 심어주는 애정 어린 시선이 필요하다. 몇 번의 경제교육 특강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기다림과 배려로 이들 적응과 정착을 바라보고 지켜주어야 한다.  


2006년 가을 내 안의 어둠들을 마주하며 마음 설거지 치유를 위해 떠난 여행, 해남에서 마당극 공연을 마친 뒤 땅끝에서.


‘놀러 가는데 대체 물을 왜 사 먹습네까?’  

셋넷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현장체험학습을 다닌다. 공부할 시기를 놓치고, 대부분 10대 후반에 남한에 들어온 탈북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지역 현장에서 직접 만나고 느끼고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향후 현실 정착을 위해 필요한 실제 지식과 정보들을 얻는 것이 효과적 방법이라 믿기 때문이다. 현장체험을 다니다 보면 반복되는 현상이 있다. 아이들의 이상한 말투에 관심을 보이다가 고향이 북한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꼭 묻는 질문이 있다. ‘남한이 좋으니, 북한이 좋으니?’     

아이들은 남한이 좋은 것도 있고 북한이 좋은 것도 있다고 별 고민 없이 대답한다. 질문을 던졌던 남한 사람들은 모두 의외의 대답이라며 실망한 얼굴빛을 감추지 않는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못 살던 북한에서 남한에 왔는데 당연히 남한이 더 좋은 것 아닌가? 이 녀석들이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나 보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들이 품고 있었던 편견과 오만함의 실체를 볼 수 있었다. 고향에서는 한참을 놀다가 목이 마르면 마을 앞 개울물을 그냥 떠서 먹었다는 것이다. 그 물이 달고 맛있었다고 입을 모으면서 서울은 숨 쉬기가 힘들 정도로 공기가 나쁘다고 눈살을 찌푸린다. 


우린 자동차 기름보다 비싼 물을 사 먹고 있다. 비로소 탈북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고향의 실체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오래된 반공주의 회로판을 걷어 내야만 온전하게 남과 북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오만과 편견은 평등하고 따뜻한 소통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헬로! 미스터 잉글리시 샘 

영어를 가르치던 자원교사가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고는 사라졌다. 영어과목은 탈북 청소년 모두에게 고통과 좌절을 주는 과목이다. 오죽하면 남한에 온 것을 후회할 정도일까. 그런 까닭에 아이들이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교사들과는 각별한 관계를 맺는 것 같다. 사고를 쳤던 교사도 예외는 아니었고 나이도 비슷해서 교사가 아닌 친구처럼 대했던 모양이다. 학교를 마친 뒤 인근 식당에서 자연스레 식사도 했을 것이고, 편안하게 어울리면서 고마운 영어교사의 호기심에, 자신들 고향 얘기며 탈북 얘기들을 별 경계심 없이 털어놓았을 것이다. 

젊은 영어자원교사는 이들로부터 들은 얘기들을 제 멋대로 워싱턴포스트지 인터넷판에 기고했다. 기고문에 실명으로 등장하는 당사자들이나, 정작 아무것도 몰랐던 학교 측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일을 낸 것이다. 문제는 기사 중심에 실명으로 거론되었던 탈북 청소년 부모가 모두 북한에 생존해있었고, 자신은 몰래 남한에 들어와 있었기에 탈북 사실이 북한에 밝혀지면 부모 신변이 위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한에 와 있는 탈북자들의 탈북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형이며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네버엔딩 스토리다. 남한에 와 있는 탈북자 대부분 이산가족의 슬픔 속에서 날마다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만 풍요로운 세상인 양, 물질 넘쳐나는 대한민국 생활을 누리면서도 외로워하고 힘겨워하는 그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글 제목은 시인 조병준 책 제목에서 몰래 가져왔다. 병준이 형은 NGO 시절 만났는데 한없이 따뜻하고 착해서 늘 부끄럽게 한다. 그가 쓰는 글이나 시도 그를 닮아서 순하고 맑다. 그의 시집 제목 ‘나는 세상을 떠도는 집’도 2012 셋넷 창작극 5 공연 제목으로 무단 도용했다. 형, 용서해 줄 거지? 

 

* 제목 사진 - 2011년 셋넷 창작극 4 ‘이제, 그 풍경을 사랑하려 하네’ 인형극 장면, 광주 5.18 기념문화센터 

     

   

     

 

작가의 이전글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