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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Aug 26. 2021

홀로 걸으라

셋넷 여행 이야기13 : 손말라


 26일 손말라     

인도 중부지역 낙푸르 인근 손말라 마을은 인도인들조차 접촉하기를 꺼리는 불가촉천민이 모여 사는 곳이다. 정부로부터 토지를 임대받아 농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작은 마을이다. 인도는 물이 귀한 나라다. 6월부터 8월 사이에 찾아오는 지역 계절풍 몬순시기에 집중되는 비를 모아 두었다가 일 년 동안 사용한다고 한다. 손말라 마을에는 저수지가 두 개 있는데, 저수지 하나의 둑이 무너져 있었다.     

 

우리가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주된 봉사활동은 무너진 둑을 보수하는 일이었다. 낮 기온이 50도에 오를 정도로 더워서 새벽 4시부터 오전 11시까지 작업해야만 했다. 쉼과 낮잠을 청한 뒤 더위가 가라앉는 오후 4시부터는 머물던 마을학교에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미대생들이 지저분한 학교 담에 이쁜 그림도 그려주었다. 


손말라 주민들은 타지인들의 왕래가 전혀 없고 낯선 이방인의 방문이 처음이었던지, 멀찌감치 떨어져서 경계와 호기심으로 우릴 관찰했다. 그들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둑 보수작업을 지켜만 보다가 마을 저수지를 만드는 작업에 공감했는지 하나둘씩 참여했다. 원시적인 작업도구뿐이었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인원이 60여 명으로 늘어나자 둑쌓기 작업을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다. 주민들과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일을 마치고 모두가 자랑스러웠지만, 노동에 익숙했던 북한 출신 셋넷들과 이런 일을 처음 해본 남한 서울지역 대학생들 간에 일의 분량과 방식으로 갈등을 빚고 대립했다. 셋넷들은 일은 제대로 못하고 말만 앞세우는 남한 젊은이들이 못마땅했다. 처음 접하는 노동과 살인적인 더위에 지친 남한 대학생들은 조건과 환경에 연연하지 않는 이방인 또래 친구들의 배려 없음에 분통을 터뜨렸다. 


둑은 완성되었지만 이후 여행은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 우아하게 생각했던 '다름'은 훨씬 불편했고, 만만하게 여겼던 '차이'는 여전히 낯설었다.         


  손말라 사람들

아직 빛조차 깨어나지 않은 새벽

이 집 저 집 끼룩끼룩 펌프질 소리 딸꾹질한다.

물동이이고 싸리 두른 여인들 

아주 오랜 세월로부터 쉬지도 않고 걸어온다.

허물어지는 울타리 틈새 호기심 가득 찬 눈동자들

삽 들고 둑 만들러 가는 손님 노동자들 훔쳐보는데

뉘 집 부지런한 버펄로 기지개 피우며 늘어지게 하품한다. 



* 내 글이 닿지 못한 손말라 마을 풍경과 사람들, 힘겨웠던 둑쌓기 작업 모습은 셋넷 광혁이가 정성껏 영상에 담았다. 마을 아이들과 행복하게 놀던 현지의 해맑은 얼굴과 빈둥대던 동네 청년들을 독려하며 작업하던 은지의 그을린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셋넷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현지는 방송인이 되었고, 은지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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