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넷 여행 이야기 45 : 길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지로 오가는 지루한 시간과 공간에서 잠들지 못하고 매번 뒤척인다. 천국인가 싶은 구름바다를 떠다니다 보석 같은 이야기꾼들을 만나 위로받는다.
윤회.. 은희경
'사람의 여섯 가지 감각이 여섯 가지 번뇌를 일으킨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어 그것들을 곱해서 나오게 된 숫자가 백팔 번뇌의 108이라 한다. 여섯 가지 번뇌는 좋음, 나쁨, 즐거움, 괴로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음이다. 나와 당신의 삶이 온전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를 알 듯싶다.'(소설가 은희경) 생물체가 인간으로 환생하려면 8천4백만 번의 윤회를 거듭해야 하고, 인간이 해탈에 이르려면 다시 8천4백만 번의 윤회를 거쳐야 한다는데. 어휴 그냥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자유.. 아도르노
'해방된 사회는 인간의 여러 가능성을 실현한다든가 풍부한 인생에 있지 않다. 해방된 사회는 무엇인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병에 집단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무서운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아도르노가 비수를 던진다. 어쩌면 더 이상 ~으로부터 라든가, ~을 향한 따위 등등은 우리들 삶을 온전하게 지탱해주지 못할 거다. 내면 깊숙이 은밀하게 흐르는 존재의 지하수는 그냥 흐른다, 그냥 흐르게 내버려 둬야 해. 해방된 사회는 해방된 인간에서 비롯되고, 해방된 인간은 해방된 몸을 통해 비로소 시작일 테니까.
언어.. 김승희
'어디에서 포효할 것인가? 어느 장소, 어느 공간, 어느 야성의 등성이에서? 우리에게는 대부분 표준말을 써야 할 장소밖에 허락된 곳이 없지 않은가?'(김승희. 호랑이 젖꼭지) 강요된 표준말 앞에서 내 영혼의 떨림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소리는 썩고 만다. 내가 표효하는 방언이 나의 표준말이다. 허락된 곳이 없다고 주눅 들지 말자. 표효라는 단어에 짓눌릴 필요 없다. 표준말에는 백두산 호랑이밖에는 없겠지만 방언에는 고양이, 개, 원숭이, 금붕어, 소라, 골뱅이, 닭똥집, 곰장어 등등 무궁무진하다. 살맛 나지 않는가.
전설.. 정현종
'누구의 어린 시절이든 어린 시절은 전설이며 우리에게 각자의 어린 시절이 있다는 점에서 우린 모두 전설적인 존재들'이라고 사막 같은 세상에서 여우처럼 정현종 시인이 전한다. 바람결에 메시지가 실려온다. ‘당신과 나는 전설적인 신비와 깊은 우물을 품고 있는 존재들이야.’ 그러니 쫄지 말고 오늘 하루 꼴리는 대로 신명 나게 살아보자. 전설이 살아가는 일상의 풍경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용서.. 류시화
하늘 호수로 여행 떠난 류시화가 인도에서 썰을 푼다. ‘노 프라블럼,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시게.' 스스로 불안한 생각을 만들어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마라. 까이꺼 인생 뭐 별거 있나. 호흡 다듬고 나지막이 속삭인다, 노 프라블럼! 내 가슴을 뛰쳐나온 소리는 연기처럼 맥없이 흩어진다. 프라블럼들로 어지러운 상처투성이 자신조차 용서하지 못하고, 어슬렁 바람결에도 휘어버리는 풀잎처럼 스러진다. 술로도 소독이 되질 않으니 어쩌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