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넷 여행 이야기 44 : 셋넷예술단 8차 평화원정대
매사이
한낮 열기도 지쳤는지 태국 라오스 국경마을 매사이의 해질 무렵은 제법 신선하다. 메콩강가 바람처럼 일정도 순조롭다. 셋넷 졸업생 보미의 탈출 루트를 거슬러 오르며 아픈 기억을 소환한다. 라오스 국경에서 메콩강을 건너면 태국 첫 도시가 매사이다. 방콕에서 출발하여 매사이를 향해 처음 사랑을 기억하는 연어의 심정으로 거슬러 오른다. 보미는 어제 치앙마이 숙소에서 폭력으로 얼룩졌던 어릴 적 가정사를 담담하게 들려줬다. 어릴 적 슬픈 기억과 상처는 선택할 수 없었고 지워지지 않는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아픔은 집요하다. 스스로 떠난 여행길에서 자신을 위로하며 괜찮다고 다정하게 안아주면 좋겠다.
메콩강가
나를 사랑해야 내가 존재한다. 내가 나를 미워하고 창피하게 여긴다면 누가 나를 존중할까. 틱낫한 스님은 호흡의 사이에서 존재를 보았지만 셋넷은 소통의 방식으로 존재의 숨결을 느낀다. 소통하지 못하면 존재가 아니다. 그림자처럼 허깨비로 사는 거다. 내를 건너 숲으로 가듯 소통은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를 만나고 알아차리는 생명의 징검다리다. 부끄럽고 자랑스러운 나를 만나고, 연약하고 이기적인 나를 보며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내 안의 나와 용기 있게 소통할 때 지난날들의 미련과 회환에서 자유롭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세상 눈치 보지 않는 내가 참된 나다. 나는 나다.
치앙라이 소수민족 lisu족 마을
녹슨 철망과 함께 자란 분단 반도 19세들의 소망은 무엇이었을까. 강원도에서 나고 자란 문막 소녀는 교복을 이쁘게 입고 서울 지하철에서 우아하게 책을 읽고 싶어 했다. 서울 아이는 가슴으로 뿜어낸 랩으로 빛나는 무대에 서고 싶었다고 회상한다. 철망 너머 열아홉 소녀는 편하게 자고 싶었단다. 어둠 저편에서 희미한 차 소리라도 들리면 온몸을 조여야 했고 도망칠 궁리를 해야 했단다. 오늘 밤 하루만이라도 공포 없이 잠들기를 소망했다는 기억으로 오두막은 숙연해진다.
동시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는 한반도 젊은이들의 꿈과 사랑은 어색하게 만나는 듯싶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들이다. 누군가의 간절한 하룻밤이 문막과 서울에서는 지루하고 갑갑한 잠자리로 반복된다. 이들이 소망하는 마음의 평화는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위태롭고 희미하다. 이제 막 피어나는 고라니들이 살얼음으로 경계 희미해진 봄날 강가에 무사히 다다를 수 있을까. 이국의 땅에서 훈훈한 여행자들로 공감의 모닥불을 지피는 오늘 밤 저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