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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Mar 16. 2022

2018 캄보디아

셋넷 여행 이야기 43 : 셋넷예술단 5차 평화원정대


캄보디아 프놈펜 보안 감옥 S-21

탐욕 때문에 들통난 거창한 세계 평화가 한 줌의 반성도 없이 사람들의 소박한 평화를 무력화시킨다.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악의 평범성'(한나 아렌트)과 어찌 맞서야 할까. 증오의 역사, 피의 기억, 고문의 흔적들로 점철된 뚜엥슬랭 박물관의 낡은 침묵이 깊은 슬픔과 땅의 원한을 치유할 수 있을까. 개인의 삶을 식민화시키는 거짓 위로와 시대의 무능함을 참을 수 없다. 어디에나 있는 잘못들을 내 안의 용서로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어디에도 없을 참회와 고백을 일상에서 견딜 수 있어야 하기에 초라해진 지상의 평화 연습은 계속되어야 한다.     


앙코르 왓트

셋넷 여행 살림을 도맡았던 미숙 샘이 일정 마지막 저녁식사에 나오지 못했다. 10년 넘게 매년 이어온 셋넷 여행 중 처음 있는 일이다. 연로하신 엄마가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다급한 메시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화를 연습하러 먼 곳으로 여행 온 원정대 젊은이들은 미숙 샘의 부재를 알지 못했고 기억하지 않았다. 평범한 하루처럼 시끄럽게 밥을 먹고 실없는 소리들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먼 나라의 숨은 슬픔에 공감하고 비극에 심각해하는 저들이건만, 함께 여행하는 가까운 이의 구체적인 아픔과 짙은 외로움은 살피지 못한다. 평화 감수성의 이중성을 어찌해야 하나.     

 

방콕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해야 하는 곳으로의 귀환길

원정대 대학생들과 여행하며 매번 긴장하고 조심스러웠다. 칭찬과 자기주장에 익숙한 저들에게 평화 공연과 봉사활동을 위한 논쟁이 비난과 꼰대질로 왜곡되곤 해서 난감했다. 평화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소한 불편과 하찮은 양보조차 견디기 힘들어했다. '애정을 베푸는 일 못지않게 거절과 상실의 경험을 주는 것도 중요한 의무'라면서, '아이들이 맞이할 냉혹한 이 세상이, 그 차가움을 견디려고 누군가를 뜨겁게 미워하는 방식을 택하게 되는 곳'이 될 것임을 김애란(소설 <가리는 손>)은 알고 있었다. 불편하고 불안한 소통을 감추기 위해 애매한 감정들로 정직한 관계를 외면해야만 하는지..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나는 자꾸 조갈이 난다. 오늘은 또 누구와 술을 먹고 누구에게 설을 풀 것인가. 그 누구는 점점 줄어들고 나는 점점 초조해진다. 그래도 나란 인간은 결코 이 판에서 먼저 일어나자는 말을 할 수가 없다.’(소설가 권여선)



* 왠지 모를 억울한 심정이 주인 허락 없이 온몸을 적시니 눅눅한 일상은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해 뜨고 바람 불어와 뽀송뽀송한 오후 언제 일런지. 억울한 마음은 '독약을 내가 마시고 상대방이 죽기를 기다리는 그런 심정'(캐리 피셔)이라는데 거참.. 2022년 3월 9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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