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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ul 25. 2019

사랑하라, 부디 놓지 마라
.. 탈남(脫南)한 셋넷들

길 위의 학교... 셋넷학교 이야기 (11)

셋넷에서 공동체와 배움을 체험하고 세상으로 나간 망채들의 인연은 졸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게 만만한 세상이 아니기에, 위로와 지지와 조언이 때때로 필요하다. 검정고시 시험이 있는 날이면 졸업생들은 어김없이 소환된다. 아침부터 시험장에 나와 후배들을 응원하고 시험을 마친 뒤에는 학교에서 후배들을 위한 파티를 준비하고 자치적으로 진행한다. 재학생 생일잔치가 있을 때마다 잊지 않고 초대하고, 국내외 캠프에도 우선적으로 참여하도록 기회를 활짝 열어놓는다. 매년 공연과 졸업식에도 주인으로 참여하여 행사를 돕고, 옛 기억을 되살리며 새 힘과 기운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졸업생 대부분 기꺼이 와서 밤새 기쁨과 위로를 나누곤 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몇몇 망채들이 보이지 않아 근황을 물어보면 대답이 황당했다. "그 친구요? 한국 떴어요." 


2008 낯선 나라에서 만난 아이들

2007년 들어와 그 유령 같은 숫자와 황당한 대답들이 점점 늘어나서 어이가 없기도 했고, 한편으론 화도 났다. 영어공부 때문에 고향 가고 싶다던 애들이고, 어쩌다 패밀리 식당에 가서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면 너무 달다며 밥 달라고 채근하던 애들이 아닌가. 죄를 짓거나 사고 치고 야반도주하는 것도 아닌데, 작별의 정이라도 나눠야 하는 사이가 아니던가 몹시 서운하기도 했다. 그래서 무작정 애들을 만나러 떠났다. 당시 다큐멘터리 감독이던 오원환샘(현 군산대 교수)과 졸업생 하늘이와 함께 대책 없이 유럽으로 갔다. 막상 도착하니 막막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몇몇 망채들을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울릉도 독도로 가는 배 위에서 각자의 소망으로 만든 새와 나비들을 하늘 높이 날리며 행복의 나라를 향한 간절함을 기도했다.  

     

7월 30일 

지우(가명)를 기차역에서 만났다. 며칠 전 헤어졌던 사이처럼 반갑게 껴안았다. 녀석의 웃음은 차분하고 넘치지 않는 감정으로 넉넉했지만,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음과 촛불처럼 불안하기만 한 이방인의 정처 없음을 언뜻언뜻 흘렸다. 작년 셋넷 여행에서 히말라야 4,600미터를 같이 넘었는데 오랜만에 본 녀석 뒷모습은 허전했다. 탈북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신분조회를 한국에 요청한 이 곳 정부 조치 때문에, 부모에게도 알리지 않고 감행한 이 무모함이 어쩌면 허무한 해프닝으로 끝날 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그림자를 감추지 못했다.    

 

여기 와 보니 한국이 정말 살맛 나는 곳이라고 절감하지만, 그래도 인간 개개인에 대한 소중함을 일상 속에서 지켜주는 이 나라가 인상 깊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무심한 듯 흘리는 얘기를 들으며, 녀석이 마냥 쫓기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기특함이랄까 안도감 같은 게 느껴졌다. 녀석이 같은 처지 고향 친구들이 머무는 임시거주공간을 빌려 마련해준 소박한 만찬은 그래서 참 따뜻했다. 서울에서 준비해 간 마른 김을 건네고,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산 빨간색 말보로 담배를 찔러줬다. 녀석들이 모진 풍파에 맞서 호기롭게 버티다 부러지고 마는 미련한 나무가 되지 말고, 바람의 애틋함으로 스러지는 풀잎의 질긴 생명력을 기억하기를...   

  

7월 31일 

어떤 식으로든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왔다는 지우 얘기에 공감했지만, 늘 한국 사람이 되기 위해 긴장해야만 했던 남한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어 무작정 튀어나왔다는 경수(가명) 얘기에는 가슴이 저렸다. 말이 통하지 않고, 먹는 게 설고, 사는 방식이 생소한 머나먼 나라보다 같은 민족이라는 허울 좋은 틀 속에서 감당해야 했던 마음의 상처와 소통의 감옥이 더 지독했다면, 우린 과연 탈북자들에게 대체 무슨 일들을 했던 것일까? 남한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고 와서 현실적으로 좌절했던 것처럼, 멋진 이층 집을 주고 돈을 많이 벌게 해 준다는 브로커의 헛된 유혹이 이들을 지상에서 구원해줄 수 있을까?


지우 경수와 동거하는 고향 여자 친구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비상구를 쓸쓸하게 찾고 있었다. 이들은 한국을 거쳐 온 탈북난민에 대하여 신분조회를 하고 있다는 암울한 상황에 갇혀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 “잠수 타야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요. 한두 번 해본 짓도 아니고, 마지막 상황까지 할 수 있는 행동은 다 해 볼 거예요. 영어 하나만이라도 얻어갈 겁니다.” 평화 있으라! 부디 평화 있으라!


* 지우와 경수와 여친들은 그해 늦가을 모두 한국으로 쫓겨 돌아왔다.    

 

8월 2일 

낯선 땅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경호(가명)를 얼싸안는다. 모자를 푹 눌러썼지만 흐려지는 눈동자를 감추지는 못한다. 셋넷 시절 늘 명랑하고 씩씩한 녀석답게 이 아득한 땅에서도 전혀 꿇리는 기색이 없다. 이곳에는 30명 남짓한 북한 사람들이 흩어져 있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중국인, 아프리카 흑인, 파키스탄인들처럼 서로 왕래가 없어서, 조선사람들만 세력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여기 삶이 더없이 좋고 한국에 대한 미련은 없단다.     


이곳에서 만난 고향 여자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는 집에 가 보니 신혼부부 집처럼 아기자기하고 풋풋하다. 침대가 있는 방과 거실, 욕실, 부엌을 살피는데 녀석이 들려주는 음악이 뜻밖에도 고향노래들이다. 한국에서는 고향노래가 듣고 싶어도 눈치가 보였지만 맘 편하게 듣고, 보고 싶은 북한영화들도 본단다. 셋넷에서도 유난히 컴퓨터에 대한 집착과 전문성을 보여주었던 녀석의 끼가 여기서도 여전히 꿈틀거리며 나름대로 맹렬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미 7,8개월 전에 난민 비자를 받고 지금은 이 나라 정부에서 제공한 직업학교에서 자동차 정비와 미용을 배우고 있단다. 비자 신청 대기 상태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지우와 경수의 어둔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편안하고 여유롭다.    

   

8월 3일 

주말이 되자 자동차들이 차지했던 직선의 거리가 노래하고, 춤추고, 화려한 난장으로 출렁이며 마구 휘어진다. 활기 넘치는 거리를 거닐며, 경호는 정착금을 주고 집을 주었던 한국이 싫어서 떠나온 건 결코 아니라고 애써 부정한다. 다만 힘겨웠단다. 하고픈 일들이 있었지만 무조건 학력을 먼저 요구하는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었고, 다들 공부에 갇혀 있었지만 도무지 집중할 수 없어서 주변부 일자리들을 찾아 그때그때 잠깐씩 기웃거리면서 방황만 했단다. 하는 일마다 불안했고, 선택한 자리마다 겉돌다가 정처 없는 심정으로 떠났단다.   

  

경계를 넘는다는 게 결코 만만하지 않았고 그만큼 두려웠지만 기왕이면 학력이나 인맥에 얽히지 않는 조건과 환경에서 다시 뭔가를 시작하고 싶었단다. 그래서 떠나왔다고,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욱 완강한 고향 사투리를 써가며 떠도는 구름처럼 얘기한다. 그래도 지금 선택이 참 좋고, 행복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보겠단다. 뭘 해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고 무심하게 대해주고, 자기 생각과 태도를 눈치 보지 않게 외면해주는 이 곳 사람들이, 말이 통하지 않는 그만큼 편안하더란다. 그래서 다행이고 이곳에서 외롭게 만난 여친과 잘 살아보고 싶단다. 그뿐이란다. 


* 2018년 여름, 다시 만난 경호는 지역 유명 한국식당 수석 요리사가 되어 주방에서 유럽 여러 나라 출신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사귀던 고향여친과 사내아이 둘을 낳아 행복하게 산다.    

 

8월 6일

만나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거부하던 민근(가명)이가 돌연 태도를 바꿔 집으로 초대한다. 내일이면 떠나야 하는 일정이라 이 먼 곳까지 와서 녀석을 못 보면 어쩌나 아쉬워하던 중에, 녀석이 극적으로 마음을 연다. 한국사람을 만난다는 게 어떤 식으로든 자기 처지를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을 것이다. 임신한 아내와 탈남을 감행한 민근이 가족이 함께 올망졸망 살고 있는 집은 생각보다 넉넉하다. 가족과 아이를 우선 배려하는 이 곳 문화가 내어준 공간에서 온 가족이 방긋방긋 웃고 있다.     


여기는 사무직보다 배관공이나 버스기사, 자동차 정비공이 더 돈을 많이 번단다. 한국에서는 뭘 하려 해도 늘 학력이 앞서서 훼방을 놓았지만, 이곳에서는 그런 하찮은 꼬리표에 아무도 개의치 않아서 참 좋단다. 날 위해 마련한 독한 보드카에 기분 좋게 취하며, 녀석이 감당해야 했던 막막함의 정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품고 있던 것들을 몽땅 털어 경호와 민근이에게 건넨다. 낡고 고단한 여행자는 곧 가난해졌지만, 온몸이 금세 기쁨으로 축축해진다. 잘 살라고 주절거리고, 행복하라고 눈시울을 붉히며 곤한 의식을 놓아버린다.


* 2018년 여름, 다시 만난 민근이는 한국식당 요리사가 되었고 두 아이 아빠로 열심히 살고 있다.   

  

2013 캐나다에서 깨달은 우리 사회의 시선

얼마 전 캐나다에서 제가 만난 탈남한 친구들은 서울 소재 명문대학을 다니다가 간 친구들이었습니다. 한 친구는 스시집에서 롤을 말고 있었고, 하나는 한국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있었고, 또 하나는 그중에서 잘 되어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애들은 상당히 좋아 보였습니다. 몸은 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여기서는 북한 출신이라고 해서 북한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탈북자라고 하면 북한 문제 전문가를 대하듯, 평양 근처에도 안 가봤는데 기쁨조도 물어보고 김일성이니 김정일 이런 거 묻잖아요. 일단 그런 게 없어서 좋았답니다. 실제로 어떤 애는 남한에 있을 때,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 전에 네이버에서 검색하고 가기도 했었답니다. 두 번째는 편 가르기가 없답니다. 넌 누구 편이냐, 남한이냐 북한이냐. 세 번째는 남북 관계가 좋았다가 안 좋아지면 간첩처럼 보기도 하는 눈초리들... 일방적 시선에서의 자유로움이 있어서, 지금 몸은 고달프지만 마음은 편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미쳐 자각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시선 때문에 잘 정착하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다는 것을 고민하면서,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 윤상석(당시 무지개청소년센터 부소장, 2013 셋넷 대화모임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탈북 청소년 지역정착 직업교육’ 대화 중에서)


2018년 여름, 다시 만난 셋넷들은 가족이라는 단단한 나무를 심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었다. 2세들과 온 하루 즐겁게 놀았다.  


2018 여름, 유럽에서 다시 만난 아이들

11년 만이었다. 같은 기억의 장소에서 다시 만난 망채들은 한결 여유로웠고 더 이상 청소년들이 아니었다. 난민 꼬리표를 띠고 비록 외부자의 신분이지만 속한 나라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뿌리를 내렸다. 가족을 세우고 자기를 닮은 아이들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삶을 촘촘하게 엮고 있었다. 

낯선 나라 아이들과 우정을 맺고 새로운 정체성을 담아내는 2세들의 눈빛은 맑고 몸의 기운들이 거침이 없었다. 그 아이들에게 모국의 노래와 놀이를 전하고 오카리나 리듬을 심어주며 온 하루를 즐겁게 만난 뒤, 가까운 바다로 나가 밤을 지새웠다. 민들레 홀씨처럼 고향과 가족을 떠났던 셋넷들이, 고난을 뚫고 가지를 내어 작은 숲을 이룬 삶의 감동이 새벽 바다를 물들이는 아침 햇살처럼 온몸을 적셨다.


그들은 경계에 서 있었다. 그들은 항상 살아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다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므로, 시시때때로 운명이 바뀐다는 뜻이므로...(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공존의 삶을 축복하는 뒤늦은 메시지

셋넷 아이들은 외로웠고 허겁지겁 사랑의 이름으로 동거하곤 했지만, 그러한 만남과 사랑이 주는 경솔함과 가난함 때문에 무책임한 헤어짐을 반복하는 모습들을 안타깝게 지켜보았다. 삶의 온기와 안식에 목말라했지만 진지하고 성스러움으로 결합되기를 바라면서 여럿의 축복으로 기억될 공존의식을 선사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고향으로 가는 도라산 기차역 한 칸을 몰래 점령하여 깜짝 결혼의식을 거행하기도 했고, 어느 가을날 후원자들의 축하 퍼포먼스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축하해주는 야외 결혼잔치로 치악산 기슭이 시끌벅적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셋넷 아이들은 곧잘 주례를 부탁했는데, 그때마다 완강하게 거절하곤 했다. 주례라는 존재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고, 관습적으로 의당 해야만 하는 주례 역할이라면 자격을 상실한 결혼 실패자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결혼을 축하하는 하객들을 대표해서, 공존의 삶을 기억하는 증인 자격으로 축복해주며 마음의 선물을 메시지로 건네주곤 했다. 

먼 나라 낯선 곳에서 결혼식조차 생략한 채 살아남기 위해 사랑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가족의 그물망들을 엮어낸 셋넷 망채들에게 축복의 마음 편지를 띄운다.


2019년 봄, 창원에서 착실하게 일하다 늦깎이 공존의 삶을 결심한 민이 결혼식에서 하객을 대표하여 기꺼이 축복해주었다. 


부디 하나 되지 마세요. 하나가 되려고 애쓰지 말아요.

태초부터 두 사람은 하나가 아니었고 두 개의 별이었지요.

그저 평범한 별들이었는데, 이제 두 별이 연결되려 하네요. 아무리 하찮은 별일지라도 서로 연결되면 쌍둥이도 되고 황소도 되기 때문에 신비로운 거지요. 이제 두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기에 더없이 신성하고 고귀합니다.

그러니 부디 하나 되지 말아요.

두 별이 정답게 지속적으로 연결되려면 군림과 지배가 아니라, 존경과 우정이 꼭 필요해요.

다시 별 볼 일 없는 흔하디 흔한 별들이 되지 않으려면 진심을 다해 서로를 존중하고 평등하고 따뜻한 우정을 쌓으세요. 그거면 충분해요. 나머지는 하늘과 바람의 뜻에 맡기고 그저 살며 사랑하면 되지요.

다만 그 사랑 안에는

기쁨과 슬픔과 미움과 위로와 실망과 감동이 있다는 걸 기억하세요.

이제 두 사람이 따로또같이 만들어가는 행복한 길을 떠날 일상의 시간...

잊지 말아요. 서로를 향한 조건 없는 존경과 참된 우정을.     



* 이 글을 쓰기 한 달 전쯤 반가운 카톡을 받았다.

'샘 잘 지내셨어요? 마지막 학기 시험기간이어서 소식 못 전했어요. 저 어제 졸업식 했어요. 새벽시간이라는 걸 알지만, 알려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카톡 드려요.' 셋넷 졸업생 중 처음으로 외국 대학 졸업생이 탄생했다. 독학으로 중고교 과정을 (한국처럼) 검정고시로 통과한 뒤, 북유럽 대학에 당당하게 입학해서 완주를 한 것이다. 경제행정학 분야를 선택해서 회계 및 세무를 전공하고 관련 분야에서 일하려고 벌써 면접 대기 중이란다. 

한국에 와서 여대에 특례로 들어가 1년 만에 그만두고 사라졌던 그 여린 아이가, 이제 갈라진 한반도를 훌쩍 뛰어넘어 세상의 모든 아침을 열기 위해 나의 새벽을 깨우고 있었다. 너의 삶과 용기에 영광 있으라!


* 제목 사진 - 2014년 개교 10주년 기념공연 주제(동지섣달 꽃 본 듯이)를 형상화한 무대 현수막이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 시간과 춥고 헐벗은 섣달의 공간에서도 생명 가득한 꽃을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망채들의 삶과 운명을 떠올리며 기획하고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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