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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Aug 08. 2019

셋넷의 하루 또 하루...

길 위의 학교... 셋넷학교 이야기 (12)


하루, 아침 조회시간은 신나게 마음 설거지하는 시간

셋넷은 하루를 열기 전 모여서 노래한다. 대략 30분이지만 흥이 나면 1시간도 넘겨 노래한다. 그래서 1교시 수업은 대체로 상근교사들이 맡도록 배치한다. 서울 셋넷 시절은 기숙사를 운영하지 않아서 오후 5시 수업을 마치면 모두들 학교를 떠나지만, 이런저런 사연들로 마구 헝클어진 채 다음날 아침 나타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홀로 온 아이들은 사무치는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밤을 뒤척이고,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은 바뀐 세상의 혼란과 무질서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북한 부모와의 문화 충돌 때문에 밤새 전투를 벌인다. 자본주의 불빛에 넋을 놓은 아이들은 방탕한 친구들의 유혹과 함께 밤새 놀다가 지치고 허전한 표정으로 학교에 온다.  

   

내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하루 임무는, 이들이 겪은 지난밤들을 말끔히 털고 오늘 하루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도록' 분위기를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기타를 잡고 그냥 노래하는 게 아니라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아이들에게도 전염시킨다. 음악시간이 아니다. 각자 몸 안에 서걱대는 이런저런 느낌들을 마구 쏟아내고 충돌시키면서 거침없이 자신의 몸 밖으로 나와 떠다니도록 느낌의 해방구를 열어준다. 그러자면 내가 먼저 살짝 미쳐야 했고, 열린 느낌의 길 따라 아침마다 해원(解冤) 굿판을 신명 나게 한판 벌인다. 



아이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노래들을 신나게 부르다 보면 정해진 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너덜너덜해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마음들로는 그 어떤 배움도 담을 수 없고, 그 어떤 하루를 시작한 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설거지를 미루면 부엌이 난장판이 되고, 결국 음식 아닌 꿀꿀이죽을 먹으며 삶을 연명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 하물며 마음 설거지를 미룬다면, 필경 병이 나거나 인간이 아니라 서서히 괴물이 되고 말 것이 자명하기에 셋넷의 아침은 온갖 노래들로 흥건히 물든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교가인 뭉게구름을 시작으로 제2 교가 아침이슬, 제3 교가 사노라면, 사랑으로, 반달, 내가 찾는 아이, 개똥벌레, 행복의 나라로, 바위섬, 아름다운 사람, 여행을 떠나요, 오 자유, 이 세상 어딘가에, 행복을 주는 사람... 어릴 적 고향에서 부르던 노래들 산너머 들 너머, 종다리, 고향 하늘, 목란꽃... 셋넷 망채들에게 매일 아침 사랑받는 노래들이다. 노래 사이사이 아이들 마음 설거지를 도와줄 시들을 돌아가며 낭독한다. 담쟁이(도종환), 빛-꽃망울(정현종), 숨을 들이쉬며(틱낱한), 솔숲에서(이시영), 바람이 가는 방향(김지하), 봄(이성부), 꿈(김용택), 마음의 오지(이문재), 기러기(메리 올리버), 춤추라(알프레드 수자), 결핍(안준철), 거룩한 저녁 나무(황지우)... 함께 즐거이 전염시키는 마음 설거지로 활짝 연 아침은, 맑은 느낌으로 새로운 배움을 선사한다. 그렇게 매일 아침, 형편없이 구겨졌던 지난밤들 축축한 어둠과 갈라진 기억들을 지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또 하루, 한 번뿐인 인생인데... 샤갈과 함께 춤을

셋넷 아이들 모두에게 미술전시회 체험은 처음이다. 샤갈이라는 단어를 얘기했을 때, 아이들은 샤넬? 하면서 향기로운 화장품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들을 짓는다. 사실 샤갈이라는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랴. 다만, 이러한 체험 기회가 학교 차원에서 마련되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제정신으로 샤갈이나 피카소 전시회에 가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과 하등 상관없는 다른 세상의 풍경이라고 단정 짓고 외면하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즐겨 찾는 영화관이나 노래방보다 샤갈 전시회가 고상하거나 고급 예술이라서 샤갈전을 찾지 않는다. 세상의 많은 교사들과 어머니들이 이런 생각들로 샤갈과 아이들을 억지로 만나게 하고 있지만, 셋넷은 다만 아이들 삶과 경험 영역이 어떤 식으로든 확장되기를 바란다. 무지함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낯설기 때문에 편협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편식은 그 사람 건강을 해친다. 하물며, 지금 이 시대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문화 편식현상은 그 자체로 생의 비극이다.    

 

가까운 미래로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 평화시대는, 지속적 문화 편식으로 인해 기형적으로 성장한 왜소한 아이들이 살아남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섬세하다. 다름과 차이들을 네트워크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은 유연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자기 안에 낯선 것들을 여러 갈래로 품고 있는 풍성한 영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세계시민들의 유목사회가 이미 시작되었다. 셋넷이 수많은 여행을 떠났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우연들을 통해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 낯선 사물들과 소통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다.


샤갈은 자신이 태어난 조건과 자신이 속했던 문화와 종교를 당당하게 즐겼고 자유롭게 표출한다. 셋넷 아이들이 샤갈 그림을 어떻게 이해할까 하는 문제는 별 관심 없다. 다만, 샤갈의 자유로움과 자기다움을 닮아서 탈북자들로 살아온 배경과 이방인의 정체성을 좀 더 사랑하면 좋겠다. 한 번뿐인 인생, 그것도 언제 어떻게 끝날지 모를 삶을, 남 눈치 보며 주눅 들어 두려움으로 채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또 다른 하루,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망채들과 함께 영화 두 편을 연속해서 보았다. 두 편 모두 재미없는 영화 랭킹을 다투는 지라 세상의 외면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 삶이 재미로만 구분되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사랑과 성공과 승리로 장식되는 삶은 허위이며 위선이다. 재미와 환상에 도취되고자 영화관을 찾는 이들은 현실의 슬픔과 희망 없음을 잠시라도 외면하려는 것이다. 셋넷은 아프더라도 우리네 삶을 있는 그대로 보고자 했고, 절망하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를 찬찬히 가식 없이 살피고 싶었다. 가끔 입이 찢어질 듯 하품도 하면서 말이다.  

   

탈북자들이 남한이라는 중층적인 문화지체 공간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 '무산일기'(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였지만, 망채들은 현실로 착각하면서 분노를 터뜨렸다. 하긴 웬만한 다큐보다 훨씬 더 다큐답기는 했다.)와, 한국 현대사의 크나큰 비극이었던 광주 민주항쟁으로 상처 입고 아파하는 역사 속 사람들 이야기를 담은 '오월愛'. 두 편 영화는 만든 이들이나 보는 이들에게 한없이 불편한 영상이다.   

  

두 편 영화를 이념적인 시각에서 해석하면서 시대착오적 선동을 일삼는 오래된 근본주의자들이 있다. 그들이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낡은 편견의 레퍼토리에 휩쓸릴 생각은 없다. 재미로만 세상을 치장하고 그래서 한없이 가벼워진 세상에서, 그럼에도 지리멸렬한 삶이지만 생에 대한 존엄과 진정성이 스며들어 있는 세상의 한 조각을 꾸밈없는 날것으로 보고싶을 뿐이다. 비록 가진 것 없고 비빌 언덕 없어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으로 버티는 안쓰러운 생이지만, 가슴만이라도 따뜻하게 살아있어 괴물은 되지말자는 간절함이다.  


일상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헛된 신화를 지속적으로 유포한다. 사람들은 무한경쟁의 속도전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빠져들어 이유도 모른 채 낙오하고 열심히 살았음에도 탈락하고 만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욕망을 정교화하기 전에, 서로의 아픔을 보듬고 서로를 향한 배려의 시선을 다시 기억해야 '사람의 마을'들을 지켜낼 수 있다. 상처 입은 사람만이 상처 입은 사람을 위로할 수 있다.  

내 삶이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건 크나큰 우연이며 뜻밖의 사건이다. 그처럼 우리들 앞에 펼쳐질 생은 그 자체로 신비롭고 황홀한 사건이 될 것이다. 박탈감과 편견으로 서로를 적대시하는 괴물이 아닌 인간의 마음과 시선으로 다가올 삶들을 맞이하기를 바라면서, 재미없는 영화 속으로 아이들을 기어이 이끈다.  


셋넷의 하루하루는 감수성 기르는 훈련과 연습

셋넷에서 한 순간도 놓지 않는 마음 설거지, 봉사와 우정나누기 여행, 다름과 차이를 훈련하기 위한 창작극 워크숍과 순회공연은 끝 모를 탐욕으로 파멸해가는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머물기 위한 셋넷의 몸부림이다. 수업을 가장해서라도 인간됨을 기억하고 닮아보려는 명랑한 일상의 훈련이자 연습이다. 

'소외'라는 단어를 통해 주류(主流)로 살거나 비주류로 삶을 여행하는 이분법은 셋넷에서 별 의미가 없다. 내 안에 주류와 비주류가 함께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사회에서 탈북자들은 비주류이고 그래서 셋넷들도 당연히 비주류다. 하지만, 같은 탈북 청소년들 집단에서 셋넷들은 분명 주류의 삶을 살고 있다. 그 주류는 무산일기의 주인공처럼 주눅 들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홀로 떠도는 수많은 탈북 청소년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기억하고 기꺼이 품어 안아야 할 주류여야 한다. 영화 오월愛에 등장하는 수많은 상처 받은 이들에게 셋넷들은, 같은 비주류로서 소외를 나누는 배려의 연대들로 사는 고단한 삶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하는 치열한 삶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셋넷들은 또다시 재미없는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갈 것이다.    



그리고어느 5월의 하루

대부분 대안학교들이 그렇듯 셋넷에도 운동장은 고사하고 줄넘기할 조그마한 공간조차 없는데, 짧은 시간 배워야 할 것들과 채워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영어단어수학공식컴퓨터진로탐색, 사회 역사 등등... ‘세상에서 제일 늦게 도착한 여행자들'(조병준의 시구)에게 체육이나 몸을 위하는 시간은 늘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온종일 학교에 갇혀 머리를 쥐어짜야만 했던 망채들이 그래서 안쓰러웠다고향에서는 들로 산으로 쏘다녔고사람과 세상을 만나기 위해 당연히 먼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생존해야만 했다그런데...

    

영등포보건소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한 명을 제외한 망채들이 건강상태에 심각한 경고를 받았다대부분 성인병에 해당했다이들을 에워싸던 산과 흙 대신에 빌딩과 시멘트가 준 우울한 선물이고마을버스와 지하철이 편안하게 모셔다 준 미련한 대가였다. 기름진 음식들의 유혹과 파도처럼 쉼 없이 닥쳐오는 스트레스로 때 아닌 배가 나오고 허리 곡선이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이들 삶이 허둥대며 뒤뚱거리기 시작했고허기진 욕망과 상대적 박탈감으로 꿈꾸던 행복이 서서히 병들어가고 있었다그래서...

    

시작했다. 학교 근처 헬스장에서 등교 한 시간 전에 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만났다. 땀에 범벅이 된 서로의 평등한 얼굴과 몸을 보는 순간은 경이로웠다. 러닝머신에서 난생처음 비틀거리는데 옆 자리에 상큼 발랄한 경희가 냉큼 올라와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컴퓨터와 게임으로 뒤얽힌 방이 아니라, 잊혀져가는 몸들을 되살리는 방에서 방방 뛰고 있는 셋넷들 가난한 젊음에 축복 있으라!          


* '괴물은 되지 말자.'는 홍상수 감독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대사다.

* 제목 사진 - 서울 당산동 셋넷학교 내부 구조를 표로 만들어 방문자를 위해 입구에 붙였다. 수준별 수업을 위한 네 개의 교실(봄날, 여름밤, 가을 하늘, 겨울 숲), 전체 모임과 문화활동을 위한 문화공간, 미디어 편집실, 작은 쉼터와 음식 조리공간.. 창고였던 70여 평 공간을 리모델링했고 내부 학습기자재와 생활도구들은 후원자들의 손때 묻은 기억들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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