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다운 선생 영수가 글을 보냈다. 변화되고 싶고 바꾸려 하는 마음이나 태도를 어쩌지 못해 그는 물들어가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살아보니, 나와 엮고 엮인 인연들은 변화되지도 바뀌지도 않았다. 그들도 나처럼 고집 세고 자기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각자가 만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격렬하게 만났고 뜨겁게 함께했다. 여럿이 쌓아 올린 변화의 신화에 빠져 지칠 때까지 도전했지만, 더운 여름날 강가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처럼 한 시절 잘 놀지 않았나 싶다. 돌아보니, 쉼 없이 알아채고 그때마다 정직하게 고백하며 부끄럽게 성찰하는 게 우리가 다다를 수 있는 삶 속 히말라야베이스캠프다.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태어난 성품과 성정을 어쩌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데 '물들어간다'는 영수의 표현이 참 좋다. 변화라는 신념으로 분열된 삶을 살고 바뀌겠다고 몸부림치다 지쳐가는 인생보다 어쩌다 물들고, 어느새 물이 빠지고, 다시 다른 삶의 풍경에 풍덩 빠져 살포시 물드는 삶이 솔직 담백하지 않을까. 다만 살아가는 인생길의 달무리에서 나를 사로잡아 물들일 아름다운 것들이 있어야겠지. 셋넷의 시간과 사람과 기억에 흠뻑 물들었으니 나는 고맙고 행복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