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by 박상영

주인공 형사가 피의자라고 의심되는 중국인 여자에게 말한다. ‘품위는 자부심에서 나온다.’(영화 <헤어질 결심>) 방안을 가득 채운 살인 욕망 죽음의 증거 사진들에 사로잡힌 형사의 품위는, 통역기를 통해야만 소통이 가능한 기이한 여인의 살인 욕망 죽음이라는 모호한 유혹으로 속절없이 무너진다. 안개 같은 사랑 앞에서 자부심과 품위는 길을 잃고 헤어질 결심을 한다.


품위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 성원들이 각각의 지위나 위치에 따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되는 품성과 교양의 정도’로 지극히 사회적 관념이다.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의 그물망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에게 품위는 피할 수 없다. 야비한 권력욕망과 게임의 규칙을 짓밟는 탐욕으로 오염된 대한민국이 품위가 존중받는 사회일까.


품성의 사전적 의미는 ‘품격과 성질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이라는 뜻도 있다. 품성은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기질이기에 부단한 자기 성찰과 수련이 필요한 본능적인 욕구다. 품성을 가꾸어 품게 되는 품위는 교육의 정도나 부富의 질량으로 유지하거나 등급을 정할 수 있는 사회적 계급 같은 가치가 아니다.


교양의 사전적 의미는 ‘지식, 정서, 도덕 등을 바탕으로 길러진 고상하고 원만한 품성’이다. 생득적 기질의 타고난 품성을 고양시킬 방도와 여지가 생긴 셈이다. 문제는 어떤 지식 정서 도덕이냐는 것이다. 이 시대의 지식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배움이기에 고상한 도덕이나 원만한 정서와 상종하지 않는다. 인생을 낭비하는 짓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인생길에서 자부심과 품위는 늘 위태롭다. 품위가 밥 먹여주나, 자부심 때문에 왕따 당하고 손해만 보는 가여운 내 인생 어쩌지. 치열한 경쟁과 무한 욕심으로 유혹하는 안개 같은 삶에서 자부심과 품위는 헤어질 결심을 하고 만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려는 나만의 자부심으로 뒤척이는 오늘도 잠 못 이루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