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

by 박상영

영화 ‘25시’는 갓 구워낸 식빵 같은 가족과 함께 순박하게 살아가던 평범한 농부가 감당해야 했던 어처구니없는 시간이다. 그는 전쟁에 휩싸여 어리둥절한 삶들을 연명하다 가족과 해후하는 암담한 인생을 겪는다. 인간의 욕심과 광기로 태풍처럼 끈질기게 되살아나는 ‘전쟁’은 인간의 소박한 꿈과 행복을 주저 없이 파괴한다. 지구별의 전쟁들은 인류의 평화를 위한다는 뻔뻔스러운 변명과 역사의 정의를 바로세운 다는 자기기만으로 억지를 부리며 참회하지 않는다. 루마니아 시골 농부인 주인공은 애매모호하게 불순한 자로 분류되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다. 다시 영문도 모른 채 유태인이 되었다가 또다시 어리둥절 순수 아리안족으로 돌변하는 비극적 운명으로 끌려다니느라 낯선 세상을 떠돈다. 남편과 생이별한 채 늙어가던 아내는 히틀러의 군대를 몰아내고 들이닥친 러시아 해방군인의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를 품고 살아간다. 연합군의 군사 재판에서 겨우 자유로워진 주인공이 10년 만에 고향 기차역에서 다시 만난 늙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의 표정은 무심하고 무기력하다. 이 장면을 우연히 보게 된 기자가 폭격에 무너진 건물 잔해처럼 남겨진 가족의 만남을 사진에 담는다. 기자의 반복되는 사진 포즈 주문에 주인공의 일그러지는 얼굴이 점점 크게 클로즈업된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24시 너머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한 맺힘으로 얼룩진 25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 표정이 그의 웃음에 담겨있다. ‘눈물 가득한 씁쓸한 웃음’, 25시는 이유도 모른 채 자기 삶의 온전한 뿌리를 잃어버리고 상처 가득한 채 떠도는 세상 모든 난민의 슬픈 시간이다. 영문도 모른 채 고향과 가족과 조국을 떠나야만 했던 셋넷들의 웃음에 스며있는 잊혀지지 않는 시간이 25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