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밥공동체

by 박상영

셋넷 학생들이나 북조선 이주민들이 남한 정착 초기 겪었던 일 중 인상 깊었던 기억은 밥에 관한 것이다. ‘다음에 만나면 밥 한 번 먹자.’ 우리에겐 익숙한 일상의 말이다. 꽤 친분 있지만 간만에 만나는 인간관계에서 편하게 건네면서도 부담 가질 필요가 없는 인사말이다. 이방인들은 이 형식적인 인사말을 가슴에 새기고 밥 먹자는 전화를 하염없이 기다렸단다. 기다림에 지쳐 잘 사는 남조선 동무들의 야박한 인심에 서운해하고, 짓밟힌 자존심 때문에 한동안 괘씸했었다는 기억을 어느 정도 정착한 뒤에야 차분하게 전했다. 어디 밥 한 끼 먹을 곳이 없어서 그랬을까, 어지럽고 산만한 대도시가 아니라 눈 맞추는 밥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정과 온기를 기다렸던게지. 내 어릴 적 안부를 묻는 인사말이 ‘식사하셨습니까’ ‘진지는 잡수셨나요’였다. 가난과 전쟁의 시대를 견뎌온 부모 세대에게는 간절하고 절실한 문안인사였을 것이다. 대학 시절 매일 만나는 과친구에게도 다짜고짜 ‘밥 먹었니’하며 서둘러 밥집을 찾아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건지, 현실적인 계산 때문인지 빈말이라도 밥 먹자는 인사를 건네지 않는다. 컴퓨터를 거쳐 AI 혁명으로 온 나라가 벌집처럼 난리인데, 그렇게 효율적인 과학문명의 선물로 펑펑 남아도는 인간의 시간에 도대체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타율적이고 습관적인 학교 너머 삶의 공동체를 꿈꾸고 품었던 <셋넷교육공동체>의 위대한 실험은 끝났다. 아쉽고 서운하지만 내 역량과 운발이 거기까지임을 인정하면서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서울에서 원주로 이어졌던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한> 학교에 기꺼이 동참했던 북조선 청소년들은 어엿한 중견 직장인이 되어 가열한 삶을 살고 있다.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바삐들 결혼하고 올망졸망 가족들을 꾸렸다. 저들이 ‘스승 같기도 하고 부모 같기도 한 선생님’이라고 불러준 것을 잊을 수 없다. 갈 수 없는 나라에 사는 머나먼 부모가 내 나이와 엇비슷했기에 낯선 곳에서 사로잡힌 감정표현이었을 것이다. 흑수저조차 되지 못하는 탈북 이방인에게 생존의 무덤이 될 서울을 떠나 소도시에서 자족적인 삶의 뿌리를 내리자며 강원도 원주로 학교를 옮겼을 때 큰 아이는 길고 깊게 아비를 원망했다. 스승과 부모 같다는 말에 사로잡혀 가족과 불타는 삶까지 아낌없이 던졌지만 ‘간만에 만나는 꽤 친분 있는 인간관계에서 편하게 건네는 부담 없는 인사말’이었던 것을 이제서야 깨닫게 된다. 일 주일이 넘는 지루한 추석명절 기간 고작 밥 한끼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건만 전화조차 없었던 제자들에게 이 가을이 다 지나도록 서운하고 흩어진 자존심으로 괘씸했다. 이제 순순히 내려놓는다. 밥 한 끼 먹을 이가 없어서 그랬을까, 어지럽고 산만한 세상이지만 밥상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끌벅적 공동체의 정과 온기를 그리워했던게지.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힘겨운 시절인지, 현실적인 계산인지 밥 한 번 나누자는 정다운 인사조차 건네지 않는 무심한 세상에서 허송세월(김훈)로 바쁘다. ‘저 떨어지는 낙엽처럼 그렇게 살아버린 내 인생’을 돌아보느라 늦가을 낙엽처럼 뒤척인다. 그나저나 내 마음 속 셋넷들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