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찾기 2

by 박상영

스위스 교육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고수다. 그는 고즈넉한 산사이거나 성스러운 상징들로 질식할 교회에서 폼 잡고 명상하지 않는다. 나처럼 숙취와 스트레스로 지친 영혼들이 습관처럼 드나드는 한국의 공중목욕탕에서 삶의 진리를 깨친다. ‘공중목욕탕은 얼마나 경이로운 학교인가! 이곳에 사회적 지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육체에 대한 멸시, 타인의 시선까지 모두 증발해 버린다.’ 태어나면서 뇌성마비 장애였고 청소년 시절까지 사회적 저주로 고통받았던 그는 약자를 위한 축가(<약자의 찬가, 새물결>)를 드높인다. ‘사람이 연약하다고 해서 반드시 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약한 면은 있다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인간의 연약함은 우정을 낳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충주셋넷에서 우정을 쌓고 풍요로운 삶을 설계하는 졸업생들아! 너희들의 연약함으로 쫄지 말지어다!)


약자이기에 피할 수 없었던 시련과 좌절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인 그는, 평범하고 하찮은 만남과 인연에서 행복 찾기를 멈추지 않는다. 누구나 감추고 싶고 성공으로 가는 길에 짐이 될 법한 연약함을 일상에서 마주하는 그의 태도는 놀랍도록 강하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냥 손 놓고 있는 태도가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길이란 무소불위 절대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하사되는 감동의 기성품이 아니다.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들어지는 오직 한 벌 수제품이다. 다만 불확실할 뿐,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라는 졸리앙의 믿음은 쉼 없이 길을 찾아온 나의 믿음이다.


지상의 누구와도 복제될 수 없는 ‘나의 길 찾기’ 작업은 부모나 스승이나 학원이나 국가가 찍어내듯 만들고 조립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없었던 사회적 지위 따위와, 국경과 문화를 무시한 정신과 육체에 대한 멸시와, 쓰잘데 없는 타인들의 시선으로 상처받고 멍든 연약함이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자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 노력과 성실로도 어쩌지 못하는 사회적 지위 때문에 선함과 악함이 결정되고 마는 운명론을 거부하는 내적 결단이 길 찾기의 성스러움이다. 깊고 아득한 역사를 통해 축적된 과거와 미래라는 양면을 타인의 멸시와 시선으로 타협하지 않는 것이 길 찾기의 위대함이다. ‘타인이란 언제나 자기와 다르고 놀랍고 경이로운 존재다.’(졸리앙)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지치지 말고 전진하는 것이 저마다의 길 찾기 인생이다.


길을 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길을 가는 사람만이 닿을 수 있지

걸어가렴, 어느 날 그대 마음에 난 길 위로

그대 꿈꾸던 세상의 음악 울릴테니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이제부터 걸어갈 길 사이에

겨울나무처럼 그대는 고단하게 서 있지만

길은 끝나지 않았어, 끝이라고 생각될 때

그때가 바로, 다시 시작해야 할 때인 걸

- 백창우,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