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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an 23. 2020

그린 북

셋넷 영화이야기 1 : 편견


편견 넘어 우정의 세상으로 나아갈지니, 그대 행복하여라!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연주자와 운전수가 8주간의 여행을 떠난다. 운전수는 클럽에서 골치 아픈 취객들을 주먹으로 처리하는 일을 하는 이탈리아계 이주민이다. 클럽 수리로 잠시 쉬던 중 돈이 아쉬워 마지못해 운전대를 잡지만, 자기 방식과 스타일을 고집하는 고집불통이다. 연주자는 운 좋게 만난 전문가의 권유로 당시 음악 선진국 소련으로 유학하고 천재적인 음악성과 발군의 연주로 미국 북부지역에서 부와 명성을 얻은 흑인 피아니스트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왕처럼 치장하고 뉴욕 카네기홀 건물 높은 방에서 친구도 없이 고독하게 산다. 

      

남부 여러 주에서 천재적인 연주 소문을 듣고 그를 초청하는 이벤트에 둘은 위험천만한 순회공연을 떠난다. 두 사람이 떠나는 날 소속 음반사 매니저가 운전수에게 책 한 권을 건넨다. ‘그린 북, 흑인들을 위한 여행지침서' 흑인들이 미국을 여행할 때 반드시 챙겨야 하는 필수 준비물이다. 흑인들은 지정된 숙소와 식당에서만 자고 먹을 수 있다. 서울에 공중전화가 등장한 1962년, 자유와 평등의 땅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다.     


투어 도중 숙소를 잡고 근처 바에 들어갔던 연주자는 백인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하지만 누구도 관심 두지 않았다. 절차 없이 백인 경찰들에게 벌거벗겨진 채 수갑을 차고 있어야 했고, 흑인에게만 적용되는 야간 통금시간에 차를 타고 이동했다는 것 때문에 항변도 못한 채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어야 했다. 초대받은 남부 대저택에서 연주 중간 휴식시간에 화장실에 가려했지만 흑인은 밖에서 볼 일을 봐야 한다는 집주인의 거절로 20분이나 떨어져 있던 숙소로 차를 타고 다녀와야 했다. 유명 레스토랑에서 제공한 연주자 대기실은 허접한 창고였고, 흑인 입장 불가라는 오랜 전통 때문에 식사를 거부당했다. 이 모든 일들이 아주 먼 옛날이 아니라 내가 태어났던 1962년 미국 땅에서 한 인간 집단이 다른 인간들에게 가했던 일들이다.  

    

가해자인 미국 백인들 조상은 유럽 사회 주류계층에게서 차별받다 쫓겨난 깨어있는 주변인들이었다. 그들은 약속의 땅에 도착해서 원주민 아메리카 인디언을 말살하고 노예로 팔려온 흑인과 유럽 주변국 이주민들을 차별하고 박해했다. 자신들을 차별하고 박해했던 유럽 주류 사람들을 흉내 내며 뼛속 깊이 그리워했다. 인간의 권리를 가장 잘 대변한다는 선언문으로 꼽히는 미국 독립선언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에게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같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수여받았다.’ 이 선언서는 1776년 작성되었지만 미국 백인들이 생각했던 인간은 로마시대 시민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트럼프 시대 미국이란 여전히 백인 아닌 주변 인종들이 ‘그린 북’을 품고 있어야 안전하다.


흑인 연주자가 세상의 편견에 맞서려고 목숨을 걸 정도로 위험한 남부지역 순회공연을 자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고집불통 운전수는 마음을 열고 돕는다. 두 사람은 흑인을 차별하는 식당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거부하고 흑인들이 즐기는 혼잡하고 자유분방한 건너편 식당에 간다. 

재즈를 연주하던 뮤지션들이 잠시 쉬는시간에 백인 운전수가 흑인 연주자에게 연주해보라며 용기를 북돋는다. 작고 시끄러운 술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조심스레 연주하자 술 마시고 떠들던 흑인들이 의외로 열렬히 환호한다. 마침내 자신조차 분리시켰던 자기 안의 편견을 넘어서서 연주하고 운전수는 따뜻하게 바라본다. 우정과 용기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세상의 모든 편견에 맞서는 용기와 우정이 세상을 조금씩 따뜻하게 한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건 천재성이 아니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용기가 필요해.’  



* 제목 사진.. 2018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 기념 '레지스탕스 영화제' 셋넷예술단 개막공연

* 북한출신 청소년 셋넷학교 두 번째 이야기는, ‘셋넷의 뜻으로 읽는 영화 이야기’입니다. 셋넷이 채웠던 배움의 뜻과 내용으로 영화를 담아봅니다. 셋넷 영화 이야기는 영화 밖 이야기나 감독과 배우와 제작에 대한 썰이 없습니다. 어떤 영화 철학과 어디 영화제 수상도 관심 없습니다. 영화와 셋넷 일상에서 마주한 사람들 이야기를 정직하게 빚어내서 고단한 일상이 촉촉해지기를 바라는 일상의 명상수업입니다.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다시 사랑하는 새날들이 되면 좋겠네요. 2020 격주 목요일 우리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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