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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Feb 20. 2020

가버나움

셋넷 영화이야기 2 : 모멸감

가버나움 도시들이 지상에 존재하는 이유


아이는 제 나이를 알지 못한다. 출생신고도 안 했고 존재에 대한 기록이 없기에 부모조차 아이의 나이를 알지 못한다. 아이의 치아 상태를 본 의사가 유치가 다 빠졌기 때문에 열두 살 정도일 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12살로 추정되는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버려진 담배를 나눠 피고, 다 허물어진 건물에서 어른들이 벌이는 전쟁 흉내를 내며 총싸움 놀이를 한다. 아이를 낳는 것 외에 무기력한 부모를 대신해서 동네 구멍가게에서 심부름하면서 자주 물건을 훔치고, 불법으로 제조된 이상한 주스를 길거리에서 팔면서 동생들을 건사한다. 또래 아이들이 학교 가는 시간에 아이는 무거운 물통이나 가스통을 배달한다. 


엄마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며 남편을 닦달한다. 학교에 가면 먹을 것과 옷들을 주기 때문에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다. 아이가 부모를 고발한다. 이런 세상에 자신을 태어나게 했다는 죄목으로. 엄마 뱃속에 있는 동생을 자기처럼 비참하게 살게 할 수 없다면서 낳지 말게 해달라고 법에 호소한다. 부모는 초경을 시작한 아이를 팔고 태연하게 섹스를 하고 다시 임신한다. 신께서 한 아이를 보내고 또 한 아이를 주셨다며 감사한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밀입국한 젊은 여자는 젖먹이 아이를 화장실에 숨겨놓고 불안한 임시직 청소 일을 한다. 그녀의 불법체류를 연장하기 위해 위조서류를 만드는 남자는 선심 쓰듯 비용을 깎아주며 아이를 자기에게 팔라고 은근하게 제안한다. 아이를 이런 상황에서 키울 수 없으니까 더 좋은 부모와 환경 속에서 자라게 해줘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유혹한다.   

   

부모를 고발한 아이가 태어난 동네는 오래전부터 미움과 증오를 내세운 싸움으로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죽고 정답던 도시는 파괴되었다. 끔찍한 인간성 파괴와 생존 공동체 와해는 종교에서 비롯되었다. 폐허와 같은 도시에서 아이는 부모를 진지하게 고발하고 부모는 함부로 아이를 팔아먹는다.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복되게 하고 용서하며 사랑하게 한다는 종교가 뻔뻔스럽게 벌려놓은 참상이다.   

   

12살 된 작고 여린 아이가 여동생을 임신시켜 죽게 만든 구멍가게 남자를 칼로 찌른다. 생명이 저버려진 생존 경계의 끝 절벽 같은 도시에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참회의 기도를 하고 느낌도 감동도 없는 용서의 선언을 버젓이 반복한다. 이 천년이 지난 가버나움 도시의 민낯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빌어먹을 종교들로 인해 피 흘리고 신음하는 가버나움들이 너무 많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아픔과 상처들은 영문 모르게 태어난 아이들 몫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요? ‘너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치솟을 셈이냐? 지옥에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을 소돔에서 행했더라면, 그는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마태 11:23)’     


‘정상적’이란 무엇인가? 어린아이 눈동자 속의 건강한 웃음인가, 어른들의 죽어버린 시선인가. 연극 <에쿠우스>에서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가 독백한다. 우리는 주저 없이 전자를 선택하겠지만 현실과 제도는 후자를 강요하고 지배한다. 날마다 아이들의 싱그러운 웃음은 권위를 부여한 교리와 독선적인 어른들의 시선에 의해 일그러지고 파괴된다. 뒤늦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서류를 만들기 위해 사진을 찍는 12살로 추정되는 아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는다. 저주받은 도시 가버나움이 지옥이 아니라 아직 세상 속에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이유다.   

   


* 제목 사진.. 2019 한반도 평화원정대 7 미얀마 문화봉사활동

*2020 한반도 평화원정대 8 국제활동(태국~라오스 국경)으로 지난주 목요일 글을 올리지 못했네요. 셋넷졸업생의 탈출 루트를 거슬러 오르며 자유를 향한 기억을 소환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평화연습 길놀이였습니다. 2015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시작한 한반도 평화원정대 국제활동 시즌 1을 마무리합니다. 동시대 아시아 청년들과 '함께 나눌 평화'를 체험하고 연습했던 길 위에서, 거부할 수 없는 서로의 차이들을 느끼며 힘겨웠습니다. 우리가 만난 평화는 아름다웠지만 평화를 채웠던 다름들은 낯설고 고단했습니다. 아름다움이 우릴 구원할거라는 여인의 간절한 바람으로 평화원정대 시즌 2를 준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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