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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Feb 27. 2020

한공주

셋넷 영화이야기 3 : 분리와 배제

아무도 믿지 마라, 나쁜 세상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에 가뒀다. 공포와 혼란의 도시에 갇혀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에서 전세기를 보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들이 조국으로 돌아와 격리 수용될 도시와 시설이 있는 마을에서 집단항의와 농성이 일어났고, 진정과 해명을 위해 갔던 장관과 차관이 물과 계란으로 봉변을 당했다.(결국 무마되긴 했다.) 그들이 대체 뭘 잘못했지? 어디로 가야하는가. 그들이 위로받을 집은 어디인가.     


여고생 ‘한공주’는 짐승조차 외면할 남고생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함께 당한 친구는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고, 온전한 피해자 공주는 다니던 학교에서 졸지에 바이러스가 되고 말았다. 여우처럼 현명한 교장은 그녀를 자기 선배교장에게로 옮겨 숨기고 수세식 화장실 물 내리듯 없던 일로 외면했다. 공주를 지도하던 교사들이 처음 보는 불결한 벌레를 보듯이 보자, 그녀는 한없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잘못한 거 없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잘못도 없는 공주는, 좋아하는 노래와 새 학교에서 만난 우정의 온기로 새로 시작할지도 모를 힘을 조금씩 얻는다. 하지만 공주를 집단 폭행한 짐승 같은 놈들의 부모짐승들이 수업 중인 교실로 찾아가고, 전학 간 학교에서의 짧은 평화마저 깨진다. 새 학교에서도 묻지도 따져보지도 않는 더러운 바이러스가 되고 말았고, 당분간 집에서 근신하라는 교장의 통보로 마지막 피난처였던 학교에서도 쫓겨난다.    

  

‘없는 것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 간 것이 문제고, 죽은 애들을 볼모로 돈 장사를 하는 더러운 부모들 때문에 사회가 분열된다.’ 즐겁게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수장된 아이들과 부모는, 사과는 커녕 위로조차 받지 못한 채 바이러스가 되어 아직도 세상을 떠돈다. 미처 꽃이 펴보지도 못한 채 영문도 모르고 죽은 아이들과 애통해하는 부모들이 대체 뭘 잘못했지? 어디로 가야하는가. 그들이 위로받을 집은 어디인가.   

  

어쩌면 피해자가 아니고 피의자일 지도 모른다는 수군거림으로 다시 차가운 거리로 내몰린 공주는 애원하듯 말한다. “사람들은 나보고 미안하다는데, 왜 나는 도망가야 하죠?” 실내수영장에서 몸부림치며 25미터 건너편까지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아무런 잘못 없이 신종 바이러스가 되어버린 그녀는 무작정 살고 싶었고, 허우적거리는 물속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늘 그녀는 숨 가쁘게 물장구만 치고 그 자리를 맴돌 뿐이다. 한공주는 대체 뭘 잘못했지? 어디로 가야하는가. 그녀가 위로받을 집은 어디인가.    

 

공주는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과 친구들과 함께 편의점에서 알바하며 오순도순 살고 싶었다. 모나지 않게 자라나 평범한 꽃이 되고 싶었다. 그게 잘못인가.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건가.

서울은 오늘도 아무 일 없이 평안하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잔잔한 강물이 흐르는 서울의 어느 다리에 주인 없는 가방 하나가 덩그러니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세상으로 내몰리면서도 안간힘으로 끌고 다녔던 볼품 없는 가방이, 공주가 기댈 수 있었던 마지막 집이다. 

‘공주야, 아무도 믿지 마라. 참 나쁜 세상에 살게 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 제목 사진 : 셋넷 8차 한반도평화원정대 일정 중 치앙라이에서 만난 사육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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