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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May 14. 2020

디태치먼트(DETACHMENT)

셋넷 영화이야기 9 : 교사


우리 무뎌지지 말자. 무뎌지면 지는 거야.     


나는 교사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삶이 내게로 왔고, 어쩌다 보니 교사가 되었다. 영화 디태치먼트는 그런 교사들 이야기다. 어쩌다 가르치는 이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교실 이야기다. 어떤 이들은 교사라는 업에 대해 험한 욕을 해대고, 어떤 이들은 스스로 거룩함에 젖어든다. 주인공은 ‘한 달짜리 임시교사’다. 비록 정규직 교사는 아니지만, 세상의 모든 교사는 믿음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생의 한 과정을 통과하는 불완전한 아이들을 인도하며 그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가이드가 교사라고 믿는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은 교실의 아이들은 이런 교사들을 용납하지 않고 비웃을 뿐이다. 사람 가면을 빌려 쓰고 살아가는 야만적인 부모들이 아이들 상처를 함부로 덧나게 하고, 따뜻한 체온으로 치료받지 못한 채 피 흘리는 아이들은 학교에 갇힌 채 재빨리, 때때로 서서히 미쳐간다. 위로받지 못한 상처들로 이유 없이 서로를 미워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교사들은 재빨리, 때때로 서서히 외면한다. 제발 자기 얘기를 들어달라는 아이들의 애타는 눈빛을 재빨리, 때때로 서서히 기억하지 않는다.


변화될 것을 믿고 교실을 지켰던 주인공 임시교사는 결국 자신의 믿음은 실패라고 영화 마지막에 쓸쓸하게 고백한다. 그 실패는 아이들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 아픈 기억 때문임을 돌아본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엄마는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고, 그 흉터와 옹이에 갇혀서 주인공은 세상을 무관심으로 비워버린다. 텅 빈 버스, 텅 빈 거리, 텅 비어 가는 교실에서 세상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흉터라고 부르지 마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마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     

옹이라고 부르지 마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 옹이, 류시화     


인디언들은 누구나 자신들 일생을 인도하는 ‘길잡이 늑대’가 있다고 한다. 셋넷학교 길잡이 교사인 나의 믿음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비록 나의 교실은 비어있고 제각기 감성의 온도들로 장마당처럼 시끌벅적거렸던 아이들이 떠난 자리는 넓고 깊게 남았지만, 우린 모두 흉터라 부르는 눈물의 상처들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는 왜 배우는가. 죽도록 일하다가 죽을 우리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무뎌지는 것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 배우는 것이라고 주인공 임시교사는 답한다. 그래, 무뎌지면 안 된다. 무뎌지면 지는 거다. 비록 우리 사랑이 불확실하고 믿음이 혼란스러울지라도, 스스로에게 무뎌지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교사는 궁극적으로 아이들 마음의 밭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감수성을 늘 보살펴야 한다.  


나는 흉터와 옹이로 무장한 세상과 매일매일 맞서는 셋넷 친구들에게 길잡이 늑대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일터와 가족에게서 위로받지 못했던 상처들이 품고 있는, 위대했던 지난날들을 다정하게 돌보며 어느 날엔가 행복할 그대들 삶에 건투를 빌어주리라. 열정이 지나쳐 옹이가 되어버렸을, 불확실한 사랑과 혼돈의 믿음을 그대들과 나누며, 그렇게 바쁘게 빈틈없이 살 필요가 없다고 유쾌하게 잔을 건네리라. 해피 버스데이 투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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