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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Jul 09. 2020

뮤지컬 빨래

셋넷 영화이야기 16 : 차별  


'목마를 때 소금을 주고, 배부를 때 빵을 주는' 어떤 나라의 사랑


하늘 아래 달동네 여기저기 빨랫줄이 걸린다. 서울에서 삶의 마지막 승부를 걸고 가족과 고향을 떠나온 이방인들은 울분을 삭이며 빨래를 한다. 슬픔을 짜낸 옷들과 근심을 털어낸 일상의 조각들이 바람의 위로를 받으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뮤지컬 ‘빨래’는 차별받는 사람들의 빨래하는 삶을 노래한다.       


5년 전 강릉에서 올라온 스물여덟 살 아가씨(나영)에게 서울이 선사한 선물은 쪽방과 성추행, 수시로 쏟아지는 무시다. 그녀의 쪽방 건너편 건물 옥상에 살고 있는 몽골청년(솔룸부, 무지개라는 뜻이다.)은 불법체류자다. 그가 대~한민국에서 꿈꾸던 무지개에 걸린 것은, 온갖 욕설과 폭력과 밀린 봉급이자 끝내 받지 못한 불합리한 노동의 대가다.     

 

물세와 전기세와 화장실세까지 나눠내야 하는 고달픈 한 지붕 여러 가족 달동네는 하루도 조용히 지나갈 날이 없다. 가진 것 없고 불안하기만 한 서툰 꿈들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이들은, 틈만 나면 서로를 향해 자신의 좌절과 설움을 칼날처럼 들이댄다. 비탈길 골목 변두리 인생들은 자신들의 비참해진 인생을 지탱해 줄 만만한 대상이 필요하고,  동해바다 바람 타고 온 나영이 들과 광활한 대륙의 바람에 떠밀려온 솔룸부 들이 분풀이 대상이 된다. 그럴 때면 그들은 무심하게 빨래를 하고, 하늘 빛깔 빨래를 널며 초라한 사랑을 나눈다. 

     

서울의 대형서점에서 15년간 노예처럼 일했던 달동네 여점원은, 자신의 미래를 믿고 맡겼던 사장에게서 절차 없는 신속한 해고를 당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술집에서의 고성방가뿐이다. 부당하게 차별받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지 말아야 했고 동료의 억울함을 애써 외면하면서 삶을 연명해야만 했다.    

 

서울의 사랑이란, '목마를 때 소금을 주고 배부를 때 빵을 주는'것이라고 시인(정호승)은 탄식한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온 낯선 사람들은 서울이 흘려주는 소금을 핥고, 빵부스러기를 주어먹으며 오늘도 빨래를 한다. 그들이 빨고 짜고 털어낸 세탁물들이 하늘 가까운 빨래 줄에서 흔들거릴 때, 어디선가 바람이 다가와 위로한다. 그 바람은 강릉에서 불어오고, 몽골 초원에서 불어오고, 두만 강가에서 불어온다.   

   

바람이 불어올 때면, 온갖 차별로 얼룩진 영혼을 빨고 또 빨아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그림자 사랑을 나눈다. 너무 자주 빨아 너덜너덜해진 빨래를 널면서 뜬구름 같은 웃음으로 서로의 삶을 어루만진다. 세상 모든 슬픔을 어루만진다. 그대에게도 바람이 부는가. 이미 당도한 바람을 외면하고, 대체 그대는 무얼 하고 있는가. 



*제목 사진 : 2008년 창작극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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