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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Oct 21. 2020

해피엔딩 프로젝트

셋넷 영화이야기 31 : 전통의 힘


마음이 예쁘면 꿈도 예쁘죠 예쁜 꿈 꾸며 나비같이 날아~


명수가 사라졌다. 한 곳에 머물지 못하고 떠다니곤 했는데 이번에도 중요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종적을 감췄다. 자격미달이었지만 격려하는 차원에서 외부 장학금을 어렵사리 마련하여 주었더니 장학금을 받은 다음 날 봄날 아지랑이처럼 흔적을 지웠다. 10년 넘게 느껴온 배신감과 서운함인데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청소년 시절 탈북과 도피와 낯선 곳으로의 이주로 생겨난 마음속 상처들은 집요하게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착잡한 마음 위로받고 싶은 심정으로 영화를 본다. <해피엔딩 프로젝트>는 죽음과 세상과 가족에 속박당하지 않고 생의 마지막 시간들을 꾸리는 캐나다 노부부의 실제 이야기다. 61년을 함께해온 부부는 가꿔온 사랑을 담담하게 비워간다. 깊어가는 아내의 치매를 돌보기 위해 홀로 집을 세워가는 87세 노인의 집념이 거인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아내를 위해 시작한 집 짓기는 평생을 함께 해온 동네 친구들과 자식들에게 무모하게 여겨지고, 국가가 정한 건축법은 사사건건 노인의 발목을 잡는다. 집을 계속 지으려면 26건의 지적사항을 수용하라는 법원의 최후통첩을 받지만 굴하지 않는다. 2년에 걸쳐 집 짓기를 완성하고 생애 마지막이 될 법정투쟁에 나선다. 


'당신은 야구를 아는가?' 법정에 서게 된 89세 거인은 재판장에게 묻는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갔을 때 미국 야구의 전설 베이브 루스에게 받은 사인볼을 회상하며 미국 야구가 지켜온 거룩한 전통을 이야기한다. 야구의 규칙과 방식들은 변해왔지만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온 전통은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자신의 아버지는 500척이 넘는 배를 만든 나무의 장인이었고 장인의 전통을 이어받아 한 땀 한 땀 지은 자신의 집은 변화된 세상에서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노부부는 그 집에서 91세까지 살다 생을 마무리했다.     


사라진 명수 때문에 속상해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자원교사가 편지를 보내왔다. '나를 괴롭히고 갈구고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지요. 뻔한 거짓말을 하고 화를 내고 속이려 하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주문을 욉니다. 저 사람도 나처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 거짓말하고 화내고 남을 못살게 구는 것은 내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겁니다. 타인도 마찬가지죠.' 나와 셋넷을 어지럽혔던 명수의 뻔한 거짓말과 일탈 행동들은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모면하고자 몸부림쳤던 것이라 생각하며 꽃잎처럼 놓아 보낸다. 


해피엔딩 프로젝트는 영화 속 노부부의 삶처럼 오래 무탈하게 살아서 도달하는 평온한 상태만은 아닐 것이다. 늙고 병들어갈지라도 자신의 행복을 돈이나 가족이나 국가의 제도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지켜온 전통의 힘으로 마무리하는 위대한 프로젝트가 인생의 해피엔딩임을 깨닫게 해 준다. 괴롭힘 당하고 좌절하게 했던 수많은 시련과 고난들로 단단해진 위대한 전통의 힘으로 각자의 삶을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나를 지탱해온 오래된 전통의 힘을 기억하며 셋넷이 지켜온 믿음으로 헝클어진 일상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관계가 끊어지고 소통이 단절되는 힘겨운 나날들이다. 사람들 마음이 거칠어지고 믿기 힘든 험한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 주문을 외우자. '저 사람도 나처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 제목 사진 : 2020년 5월 남원셋넷학교에서 셋넷가족 봄밤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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