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상영 Oct 29. 2020

일대종사

셋넷 영화이야기 32 : 운명


어둠은 깊어가는데 등불은 보이지 않고 


어쩌면 전쟁은 사람들을 평등하게 한다. 태어날 때 주어진 조건으로 평탄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전쟁이라는 돌발 상황 때문에 예기치 못했던 운명으로 바뀌게 된다. 전쟁이 파괴하는 삶들은 사람들 내면에 잠들어있던 모습들을 낱낱이 드러낸다. 원하지 않는 이방인들과 생존으로 뒤섞이면서 존경은 조롱으로 변하고 명예는 탐욕으로 변신한다. 한 시절을 풍미했던 무술 고수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을 그린 영화가 일대종사다.  

     

한 시대에 나올까 말까 하다는 시대의 스승(일대종사)들이 광활한 중국 대륙 여기저기에서 등불을 밝히고 제자들을 모은다. 자신이 숨겨온 도술을 이어갈 새로운 등불을 찾아가는 정의로운 승부가 과장되지 않게 전개된다. 그 와중에 뜻하지 않은 전쟁에 휘말리며 스승의 믿음을 저버리는 제자의 패륜이 자행되고, 패륜을 용서하지 않는 복수의 대결이 단아하게 펼쳐진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상처가 남긴 더러운 삶의 규범은 유구하니 피와 배신이 난립한다. 등불은 위태롭고 믿음이 흩어져가니 세상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린다. 후회하지 않는 인생이란 얼마나 건조할까. 한 시대를 지켜왔던 명예는 새로운 시대를 죽음으로 열망하지만 명예는 부질없고 참된 삶을 지키려는 고수의 평범한 삶이 있을 뿐이다. 운명은 피할 수 없고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회한은 깊어간다. 퇴락한 무림의 거리가 비에 젖고 일대종사를 그리워하는 시대의 등불은 어두워간다.      


삶의 조건들이 온통 헝클어지고 엉뚱한 운명들로 흩어졌던 한반도의 전쟁이 멈춘 지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배신과 속임수를 삶의 수단으로 즐기는 패륜들이 그치지 않는다. 믿음으로 산다면 정녕 보답이 오는가. 한반도의 정신을 지켜왔던 선비들의 맑은 기운은 보이지 않고 탐욕과 증오로 혼탁해진 백성들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등불을 밝히면 착한 사람들이 모이는가. 도무지 일대종사를 찾을 수 없는 한반도에서 후회가 없는 삶은 가능할까.      


‘믿음이 있으면 보답이 따르고 등불이 있으면 사람이 모인다.(영화 일대종사)’ 보답을 바라지 않는 믿음을 심어줄 일대종사는 어디에 있는가. 위선으로 사람을 모으는 거짓 등불들이 미쳐 날뛰는 시대의 절망을 보듬어줄 일대종사는 어디에 있는가. 



* 제목 사진 : 2011 창작극 공연 이제그 풍경을 사랑하려 하네!’(광주 5.18 기념문화센터)

작가의 이전글 해피엔딩 프로젝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