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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Mar 25. 2021

중경삼림

셋넷 영화이야기 53: 정체성


우리의 꿈과 사랑엔 유통기한이 없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난다는 것은 종교의식처럼 신성하다. 수치스러워 감추고 싶은 또 다른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타인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에 지친 여자와 삶에 허기진 남자가 빈 술잔처럼 모텔로 향한다. 여자가 깨어나길 기다리며 남자는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네 접시의 샐러드를 먹어 치운 뒤, 여자의 구두를 벗겨 자신의 넥타이로 깨끗이 닦아 놓고 비 퍼붓는 새벽길을 나선다. 오늘 파인애플을 좋아하던 자신이 내일은 무엇을 사랑하게 될지 모르는 남자는 막막한 심정으로 새벽길을 가로지른다.      

 

그 시간 홍콩 여자에게 금발의 가발을 씌우고 일방적인 성폭력을 가한 금발의 외국인 남자가 뒷골목에서 흐느적댄다. 깨끗해진 구두를 신고 바라보던 여자는 분열된 홍콩의 분노를 토해내듯 남자에게 총알을 박는다. 여자는 흐릿해진 홍콩의 빗길을 나서며 금발 가발을 벗어 버린다. 그녀는 그녀의 ‘감정 배후에 있는 두 겹의 욕망, 두 명의 여자’(푸르른 틈새, 권여선)를 감추어 주었던 가발을 버린다. 금발의 꿈으로 분열되었던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검은 선글라스는 끝내 버리지 못한다. 공허한 자신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던 걸까.

     

떠나간 애인을 기다리며 날마다 테이크아웃 음식을 먹는 또 다른 남자가 있다. 거리 음식점에서 팝송(캘리포니아 드림)을 시끄럽게 틀어놓고 그를 훔쳐보던 여자는 남자의 집에 우연히 숨어든다. 여자는 남자가 독백으로만 기억하는 스튜어디스 애인을 동경하면서 남자의 집을 새 것들로 몰래 꾸민다. 금붕어를 사다 넣고, 양치질 컵을 바꾸고, 헤진 수건을 갈아 치운다. 하지만 떠나간 임을 기다리던 남자는 신선한 정어리 통조림을 먹으면서도 현재의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남자의 기다림은 구체적이지 않다. 무기력한 과거의 기억을 반복할 뿐이다. 남자의 기다림은 블랙커피처럼, 콜라처럼, 거리의 피자 한 조각처럼 습관적으로 소비되며 잊힌다.     


남자는 자신에게 신선한 음식을 주고 집을 치장해주었던 그녀가 사랑의 실체였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그녀가 사다 놓은 옷을 입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캘리포니아 카페로 향하지만 그녀는 떠난 뒤였다. 그녀가 전한 종이에는 직접 그린 비행기 티켓이 빗물에 번져 목적지를 알아볼 수 없다. 홍콩의 만남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약속처럼 불안하고 불확실하다. 서울의 사랑은 일회용 캔 안에 채워진 방부제 꿈들처럼 유통되지 않는다. 평양의 꿈은 깡통 뚜껑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유통기간처럼 가엽다. “그거 사지 마세요. 기한이 지났어요.” “그런 걸 왜 팔아요?” “글쎄 말이에요. 기한이 지난 것들 때문에 골치 아파요.” 


문득 내게 따뜻한 식탁을 차리고 헐겁지 않은 옷을 염려하는 그녀가 사랑의 실체임을 알아차린다. 우리가 함께 가슴 벅차게 그렸던 티켓의 목적지는 선명하지만.. 아직도 그 꿈터가 남아있을까, 거기에 우리가 함께 도달할 수 있을까. 우리들의 꿈과 사랑은 유통 기한이 지난 것들일까, 아직 남은 것들일까. 



* 제목 그림 : 남. 북(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엮은 평화교육 17년 이야기 <윗마을 학생과 아랫동네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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