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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Dec 24. 2020

일 포스티노

셋넷 영화이야기 40 : 일상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것이다.(네루다)


이태리 남부 아름다운 섬, 시리도록 투명한 원색의 바다에서 무표정한 어부들이 가난한 그물을 거둬들인다. 배만 타면 어지럽고 육체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어부의 아들 마리오는 섬에서 몇 안 되는 글을 깨우친 사람이다. 건조한 삶이 반복되던 어느 날 칠레의 사회주의 시인 네루다가 임시 망명 거처로 허용된 이 섬에 찾아든다. 전 세계에서 시인에게 보내오는 우편물을 처리하기 위해 마리오가 임시 우편배달부가 된다.      


투명한 바다와 빼빼 마른 자전거, 허름한 복장과 반듯한 제복 모자, 낡은 배달 가방이 오래된 골목길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과 교차하면서 시인과 수줍음 많은 섬 청년의 우정이 동화책처럼 펼쳐진다. 시인은 청년의 맑고 순수한 마음의 세계를 고동치는 시의 바다로 이끈다. 마리오가 선술집 주인의 조카딸과 결혼하던 날, 시인은 칠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는다. 시인이 떠난 섬마을은 다시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마리오에게 온 편지에는 섬 집에 남아있는 시인의 짐들을 빨리 보내달라는 비서의 건조한 요청이 담겨 있다.

 

시인의 녹음기에 담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마리오는 시인에게 보내기 위해 섬의 파도소리와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녹음한다.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시인 때문에 어설프게 사회주의자가 된 마리오는 시를 품고 대중집회에 참석한다. 그가 시를 낭독하기 위해 단상으로 가던 중 진압 경찰의 몽둥이에 쓰러지고, 그의 시가 쓰인 종이가 군중들에게 밟힌다.     


세월이 지나 선술집에 다시 찾아든 시인은 마리오가 죽기 직전 자신에게 선물하려던 섬의 아름다운 소리들에 젖는다. 마리오와 시의 메타포에 대해 이야기하던 바닷가에서 그가 남긴 마지막 시를 듣는다. 마리오의 시에는 삶에 찌들고 지친 사람들의 어지러운 발자국과 아름다운 바닷속에서 퍼 올리는 아버지의 슬픈 그물 소리가 담겨있다. 그는 척박한 현실과 삶의 고결함, 사랑의 아름다움을 하나로 연결시킨 삶의 배달부였다. 그가 그려낸 일상의 아름다움은 소박한 꿈조차 품을 수 없는 삶의 고단함을 위로하고, 소중한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배신하는 세상의 욕심을 정화시킨다. 


해가 지날수록 차분해지는 성탄의 밤이다. 네루다와 마리오가 건져 올린 슬픈 시를 들으며 세상과의 소통에 서툴러 부끄럽게만 여겼던 여린 마음과, 보잘것없다고 함부로 대했던 일상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되돌아본다. 



* 제목 사진 : 2017 셋넷 평화원정대 인도 국제교류활동 후 남인도 여행(퐁디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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