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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영 Feb 25. 2021

국제시장

셋넷 영화이야기 49 : 이별


우린 모두 연결되어 있다.


불멸의 전사였던 아버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6.25 전쟁을 겪고 고향인 함경남도 홍원에 다시는 가 볼 수 없었다. 분단으로 남겨진 배고픈 형제들 때문에 하고 싶었던 공학도의 삶을 접고 군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 영화 <국제시장>은 함경남도 함흥 부둣가에서 전쟁 때문에 생이별하고 가족들이 흩어지는 울부짖음으로 시작한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어린 가장이 된 주인공의 예기치 않던 삶은 부산의 시장 바닥으로 이어지고 하고 싶던 공부조차 동생들 몫으로 양보해야 했다.     

 

그가 고작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뜻밖에도 독일 광부의 길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너무도 멀고 끔찍했다. 아득한 나라의 땅 속을 파헤치며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두더지가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탄광사고를 당한 뒤 목숨을 부지하고 귀국하지만 순탄할 것만 같았던 평범한 생활은 한 여름밤 꿈처럼 지나간다. 가족을 지키겠다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위해 머나먼 월남 죽음의 전쟁에 뛰어든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을 떠나며 고개 숙인 남편을 부여잡고 부인은 절규한다. ‘당신 인생인데, 왜 거기에 당신은 없느냐고.’ 때마침 국기 하강식이 시작되고 남편은 기계처럼 일어나 국기를 향해 거룩한 예의를 갖춘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낯선 노인네의 섬뜩한 시선에 마지못해 일어서는 아내의 모습 어디에도 소망과 신념을 지닌 개인은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국가조직의 하잘 것 없는 부속품의 권리는 순종뿐이었다.     


온 가족이 모여 오순도순 온기를 지피고 있을 때, 이제는 늙어버린 흥남 부둣가 어린 주인공 아버지는 홀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아버지,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느라 정말 열심히 살아왔네요. 그런데 너무 힘이 들어요.” 아버지는 깊은 동굴 같았던 마음속 울음을 터뜨린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국민을 옥죄는 태극기와 국가는 개인이 선택하는 삶을 용납하지 않는다. 흔해 빠진 사랑과 가슴 저미는 이별 따위 없이도 참으로 슬픈 시절이 아닌가. 오직 삶과 죽음의 생존 길을 한 줌 눈물조차 감추고 떠나야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사랑과 이별 풍경이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를 운명의 길을 무작정 가야만 했던 아버지들은 고독하고 메마른 그림자들이었다.      


영화가 주는 어색한 시간이동 장치들과 거북한 우화적 연출에도 불구하고 영화 내내 눈물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몇 해 전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 한 채 갑자기 떠나신 아버지의 삶이 영화 곳곳에서 겹쳤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왜 당신 인생임에도 마지막 떠나실 때까지 당신의 자리 한 뼘이 없었을까? 

 

아버지가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네 살이었던 나는 서울 약수동 시장을 아장아장 누비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알았을까? 하등 상관도 없는 남의 나라 싸움에 왜 자신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를. 맹호부대 전투 중대장으로 참가한 아버지는 삶과 죽음을 바삐 오갔다. 그때마다 엄마는 철부지 어린 자식 둘을 품고 함께 죽고 행방불명이 되는 삶을 반복했다. 다행히 사지가 멀쩡한 상태로 가족에게로 돌아올 수 있어서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 


마지막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 몸속에는 녹슬지도 않은 머나먼 이국땅 사자(死者)의 파편 조각들이 어지러이 기생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침묵 속에서 평생 묻어두었던 삶을 내가 산다. 그렇게 세상의 아버지들과 자식들이 연결되어 있다. 매 순간 스스로의 선택으로 나를 나답게 살도록 여건과 역량을 만들어주신 아버지가 그립다.



* 제목 사진 : 2021 남원 셋넷학교 눈 오는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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